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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래드, 조지프

The Rescue (구난) 콘래드 (Conrad)

by 길철현 2016. 4. 12.

*The Rescue. 1920 [160412]

[핵심어 : Tom Lingard. 말레이 삼부작. 작품의 중단. 모험과 사랑. 구원]

(작년 5월 30일에 이 작품을 읽기 시작했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 대로, 그 당시 정황을 적어보자면 이 작품 자체를 읽는 데에도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고, 또 읽고 난 다음에는 무력감에 시달렸던 듯하다. 전체적으로 이 작품에 대한 인상은 좋은 쪽은 아니었다.)


아직 논문의 정확한 주제를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 그것은 아마도 콘래드의 작품을 한 번 통독하고 난 다음, 다른 논문들을 찾아 있는 과정에서 떠오르지 않을까 하는데 - 오늘도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지만, “말레이 3부작”을 중심으로 논문을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Almayer's Folly와 An Outcast of the Island를 재독하고 나서 집어든 책이 이 책이었다.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콘래드는 An Outcast를 마치고, 이 작품에 집중하다가, 이 작품을 중단하고 Lord Jim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Thomas Moser는 당시의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All the evidence indicates that, after an initial burst of enthusiasm, when the time came for Conrad to create the gentleman and lady, he became acutely uncomfortable.


The sympathetic treatment of love between a white man and woman is not congenial to Conrad's creativity.

(Critical Assessments Vol 3 556)


콘래드는 이 작품을 완성시키려고 여러 번 시도를 하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가고(기억이 다소 불분명하다) 처음 시도로부터 20년이 지나서야 겨우 완성을 보게 된다.


‘말레이 3부작’ 중에서 가장 나중에 씌어졌지만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다른 두 작품들보다 20년 이상 앞선 때로 이 동남아시아 바다의 제왕(?)으로 군림하던 Tom Lingard 본인 - 전작들에서는 조연으로 등장했는데 - 의 젊은 시절이다. 이 작품을 태작으로 보는 측에서는 지나치게 긴 창작 기간으로 인해 일관성이 떨어지고(배종언 77) ‘등장인물의 형상화나 문장 또한 진부하다’(Moser 557) 등을 지적하고 있다.


개인적인 느낌은 초반부의 흥미진진하던 모험 이야기가 - Hassim과 Immada를 둘러싼 - 유부녀인 Edith Travers와 링가드의 관계를 그려나가는 지점에서 콘래드가 굉장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한다. 바다의 제왕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고독한 사나이인 링가드는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사이에 이디스에게 매혹되고 마는데, 이 두 사람의 관계를 그려내는데에는 아무래도 콘래드가 미숙하지 않았던가 한다. 정신적인 교감이라고 하기에도 그렇고, 또 육체적이고 성적인 이끌림이라고 하기에도 그렇게, 지나치게 낭만적이고 이상적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그리고, 결국에는 이 관계 때문에, 또 이디스가 하심의 반지를 링가드에게 전해주지 않아서 엄청난 파국을 몰고 오게 된다.


제목부터 이 작품은 콘래드의 중심 주제 중의 하나인 [구원]의 문제를 들고 나오는데 - 그가 구원해야 할 대상은 원주민 족장이었던 하심과 그의 여동생 이마다와, 그리고 이디스가 타고 있는 얕은 물에 갇혀서 나오지 못하고 있는 요트이다 - 안 그래도 복잡한 이 지역을 둘러싼 정세가, 이디스로 향하는 링가드의 감정으로 인해 더욱 더 뒤엉키게 되고, 급기야는 배를 폭파시키는 파국을 맞게 되는 것이다.


이디스로 향하는 링가드의 감정에서는 오이디푸스적인 욕망을 읽어낼 수 있는 부분들이 많이 있지만, 그것들이 작품의 전개와 잘 맞물리기보다는 지나치게 낭만적이고 직접적인 서술들로 전면화하면서 이 작품이 힘을 잃지 않았나, 또 콘래드가 이 작품의 전개에서 겪은 어려움은 자신의 오이디푸스적인 욕망이 이 작품에 투영되는 것에서 오는 두려움 같은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들을 해본다. 또 하나 지적할 점은 두 사람의 관계를 진행시키기 위해서인지 이디스의 남편을 지나치게 평면적으로 희화화해서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남편의 이런 점을 그의 친구인 D'Alcacer가 어느 정도는 보완해주는 면도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