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eography and Some Explorers [3독]
[감상]
콘래드가 죽기 몇 개월 전 [National Geographic]에 발표한 이 글은 그의 작품 [어둠의 심연]을 이해하는데 상당히 도움일 될 뿐만 아니라, 그가 유럽의 제국주의적 팽창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엿볼 수 있어서 매우 중요한 글이다. 이 글이 "지리(학)적 지식을 증대하고 확산하는 것"("to increase and diffuse geographic knowledge." - wikipedia, National Geographic Society 항목)을 목적으로 하는 잡지에 발표되었기 때문에 - 당시의 자세한 정황에 대해서는 좀 더 조사를 해보아야 하겠으나, 콘래드가 원고 청탁을 받고 썼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 콘래드는 우선 지리학의 성격을 규명하는데서 출발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하보다는 지리를 선호한다는 이야기, 그러면서도 지리적 형상에 대한 정확한 정보(exact configuration)를 갖는 것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우리가 특히 흥미를 갖는 것은 그 와중에 인간이 펼쳐보이는 노력의 드라마라는 지적을 하고 있다.
(102) The earth is a stage, and though it may be an advantage, even to the right comprehension of the play, to know its exact configuration, it is the drama of human endeavour that will be the thing, with a ruling passion expressed by outward action marching perhaps blindly to success or failure, which themselves are often undistinquishable from each other at first.
지리학 역시도 다른 과학(학문) 분야와 마찬가지로 - 화학이 연금술을 단계를 거친 것이나 천문학이 점성술의 단계를 거친 것 - "fabulous geography의 단계를 거쳐 좀 더 과학적인 18.19세기의 "militant geography"의 단계에 이르게 되었으며, 그럼에도 지리학은 "인간의 두려움이나 탐욕 위에 번성하려고 애쓰지 않았다는 점"에서 "과학들 중에서도 비난받을 여지가 가장 적은 학문"이라는 주장도 하고 있다.
(102) Geography had its phase of circumstantially extravagant speculation which had nothing to do with the pursuit of truth, but has given us a curious glimpse of the medieval mind playing in its ponderous, childish way with the problems of our earth's shape, its size, its character, its products, its inhabitants. Cartography was almost as pictorial then as are some modern newspapers. It crowded its maps with pictures of strange pageants(볼거리), strange trees, strange beasts, drawn with amazing precision in the midst of theoretically conceived continents. It delineated imaginary kingdom of Monomotapa and of Prester John, the regions infested by lions or haunted by unicorns, inhabited by men with reversed lions, or eyes in the middle of their breasts.
콘래드의 이러한 언급은 외계를 파악하는 인간의 지적인 능력이 비체계적이고 상상적인 것에서 좀 더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것으로 발전한다는 생각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전체적인 맥락에서는 좀 벗어나는 이야기이지만 "imaginary kingdom of Monomotapa"에 대한 언급에 대해서는 몇 가지 지적할 것이 있다. 자료를 좀 더 찾아보아야 하겠지만( Kindom of Mutapa. Alexander Wilmot의 Monomotapa (Rhodesia): Its Monuments, and Its History from the Most Ancient Times to the Present Century라는 책도 있다. 1896년에 나옴)
(여기까지 쓰고 [짐바브웨를 아시나요?]를 쓰느라고 약 십 일 정도 이 뒷부분을 정리하지 못했다. 앞 단락에서 계속 이어나가보도록 하자.)
fabulous geography 단계에서 지도제작자들이 사실적인 측량에 기초하기 보다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허구적인 내용을 집어넣었다는 지적에는 충분히 공감이 가지만, Monomotapa 왕국과 Prester John 왕국 둘 다를 "상상의 왕국"으로 동일하게 취급하고 있는 점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Prester John은 중세부터 유럽 인들이 동방에 있는 기독교 국가의 수장으로 생각했던 전설적인 인물이라는 점에서 사실이라기보다는 상상의 산물, 혹은 사실이 상상과 뒤섞여 허구적으로 변형된 인물이라면, Monomotapa 왕국의 경우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짐바브웨 북부, 모잠비크의 북서부, 잠비아의 남동부에 걸쳐서 실제했던 왕국이다. 그 세력이 줄어들어 들어 영토가 현저하게 줄어들긴 했지만 1917년까지 독립한 국가로 존립하고 있었는데 콘래드는 왜 이와 같은 말을 했을까? 이 왕국에 대한 이야기가 1896년 Alexander Wilmot이 Monomotap(Rhodesia)라는 제목으로 콘래드가 자신의 초기 작품을 발표했던 T. Fisher Unwin 출판사에서 출판을 하고, 그 서문을 해거드가 쓰기도 했는데 콘래드가 이러한 상황을 전혀 몰랐다는 것이 의아하다. (이러한 오류가 갖는 의미를 좀 더 잘 추적해야 한다.) [아프리카와 관련된 것을 허구로 치부? 무슨 까닭] [콘래드는 이 시점까지도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에 왕국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던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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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탐험가와 그들의 탐험에 대한 콘래드가 죽기 직전에 가졌던 생각이므로 최종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어둠]과 관련해서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먼저 지리적 탐사 혹은 탐험이 갖는 이중성이다. 콘래드는 지리적 발견이 인간의 지식의 확장이라는 측면,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나 호기심이라는 순수성을 강조하고 그런 인물들을 나열한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달하고, 그 뒤를 이어 정복자들과 탐험가들이 북남미 대륙을 정복하고 탐사함으로써, fabulous 지리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고 콘래드는 말한다. 이 시기의 탐험가들에 대해 콘래드는 그렇게 높이 평가하고 있지는 않다.
(103) Columbus remains a pathetic figure, not a sufferer in the cause of geography, but a victim of the imperfections of jealous human hearts, accepting his fate with resignation.
(103) if the discovery of America was the occasion of the greatest outburst of reckless cruelty and greed known to history.
- El Dorado를 찾아나선 것 (Cortes and Pizarro)
이 부분에서 콘래드는 지리적 발견이 북남미 원주민들에게 "무분별한 잔인성과 탐욕이 최대로 분출되는 예"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아프리카의 탐험과 그에 이은 식민지화가 가져온 결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말을 콘래드는 했다. 특히 [어둠]에서 소장의 삼촌이 이끄는 무역상들의 이름을 "El Dorado"라고 부른 것에는 실제로 이 당시 엘도라도를 찾아 떠났던 인물들에 대한 비판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이 부분 좀 더 생각을 이어나가야 한다. For nothing is more certain than that there will never be enough gold to go around, as the Conquistadores found out experience. 103)
이 다음에 이어지는 I suppose 이하 부분을 보면 이런 내용을 알 수 있음. 황금을 찾아나선 이들은 "지리학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with out giving a single thought to the science of geogrpahy)라는 부분에 특히 이런 점이 드러난다.
반면에 Abel Tasman, James Cook 등은 지리학에 상당히 기여한 인물로 높이 평가하고, 특히 북극해 지역을 탐사하다 죽은 John Franklin에 대해서는 "극 지역에 대한 우리의 지식을 엄청나게 확장시킨 인물"(108)로 극찬을 한다. 이 인물은 [어둠]에서도 바깥화자가 Francis Drake와 함께 언급하고 있는데, 콘래드는 여기서 드레이크는 언급하지 않는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세계 일주를 한 인물이기는 하지만 그는 지리적 발견자라기보다는 오히려 해적 행위를 통해 영국의 부를 증대시킨 인물로 더욱 유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108) The voyages of the early explorers were prompted by an acquisitive spirit, the idea of lucre in some form, the desire of trade or the desire of loot, disgused in more or less fine words.
이에 반해, 제임스 쿡의 3번의 향해는 유일한 목적이 진리를 찾는 것.
Geography is a science of facts, and they devoted themselves to the discovery of facts in the configuration and features of the main continents. (이 부분들에 대해서도 좀 더 생각해 볼 것.)
(108) The persistent efforts extending over ten years to ascertain his fate advanced greatly our knowledge of the polar regions.
지리에 대한 어린 시절의 관심에 대한 이야기에 이어서 콘래드는 아프리카 탐험에 앞장선 인물들을 이야기 한다. Mungo Park, James Bruce, Richard Francis Burton, John Hanning Speke, Heinrich Barth, David Livingstone 등등
(111) It must not be supposed that I gave up my interest in the polar regions. My heart and my warm participation swung from the frigid to the rorrid zone, fascinated by the problems of each, no doubt, but more yet by the men who, like masters of a great art, worked each according to his temperament to complete the picture of the earth.
David Livingstone (나일 강 원류를 찾으려고 고국에 돌아가지 않음.)
- That passion had changed him in his last days from a great explorer into a restless wanderer refusing to go home any more.
[본국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했다는 부분에서 커츠와 어떤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리빙스턴은 커츠처럼 아프리카의 "어두운 힘"에 사로잡힌 것인가?]
이 다음 부분은 콘래드 자신의 경험담이다. 어린 시절부터 콩고 강을 탐험해 보는 것이 꿈이었고 그래서 [어둠]과, [personal rexordl]에 이어 이 글에서도 언급하고 있는데, 그가 느낀 것은 환멸이다.
A great melancholy descended on me. Yes: this was the very spot. But there was no shadowy friend to stand by my side in the night of the enormous wilderness, no great haunting memory, but only the unholy recollection of a prosaic newspaper stunt and the distasteful knowledge of the vilest scramble for loot that ever disfigured the history of human conscience and geographical exploration. What an end to the idealized realities of a boy's daydreams!
[어둠]은 어찌보면 이때 느낀 환멸감을 커츠라는 인물을 통해 형상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신문이 이야기하는 화려한 미사여구와 달리 지옥도를 연상시키는 식민지의 현실을 마주한 느낌, 그것을 이야기할 누구도 없다는 사실이 주는 고독감 등등을 이 부분에서 사실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곧장 콘래드는 자신이 유일하게 선장을 맡았던 배 Ottago를 몰고 위험할 수도 있는 해협을 지났던 이야기를 한다. (이 경험은 [The Shadow Line]에 소설 형식으로 자세하게 이야기 된다. 물론 해협을 지난 이야기가 아니라 선장을 맡고 선원들이 병이 들어 어려웠던 경험이지만.)
(116) Thus the sea had been to me a hallowed ground, thanks to those books of travel and discovery which had peopled it for me with unforgettable shades of the masters in the calling which in a humble way was to be mine, too -- men great in their endeavor and in hard-won successes of militant geography: men who went forth, each according to his lights, and with varied motives, laudable or sinful, but each bearing in his breast a spark of the sacred fire.
마지막 부분에서 콘래드는 스페인의 정복자들이 아니라, militant geography 시기의 탐험가들을 인정하고 수긍한다. 이 점에 대해 에드워드 사이드는 콘래드의 태도를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
Similarly Conrad and Camus are not merely representative of so relatively weightless a thing as "Western consciousness" but rather of Western dominance in the non-European world. Conrad makes this abstract point with unerring power in his essay "Geography -" where he celebrates British exploration of the Arctic and then concludes with an example of his own "militant geogrphy", the way, he says, by "putting my finger on a spot in the very middle of the then white heart of Africa, I declared that some day I would go there." -- [Said Culture]
사이드의 이러한 비판에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힘들지만, 인간의 지적 호기심과 그것으로 인해 획득된 지식이라는 것이 자신이나 자국의 이익을 위해 사용된다는 이중성(중첩성)을 생각할 때 그 둘을 분리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콘래드의 '순수한 진실의 추구 운운하는 부분'은 이 시점에서 다시 한 번 곱씹어 보아야 할 문제이다.
[발췌]
(102) The earth is a stage, and though it may be an advantage, even to the right comprehension of the play, to know its exact configuration, it is the drama of human endeavour that will be the thing, with a ruling passion expressed by outward action marching perhaps blindly to success or failure, which themselves are often undistinquishable from each other at first.
[외부 세계를 향한 지적 호기심은 인류의 공통된 것이라고 할 때, 그 지적 호기심으로 유발된 탐험이나 모험이 그곳에 거주하는 원주민이나 동식물의 생태에 대한 존중과 함께 진행되지 않을 때, 충돌과 학살과 생태계의 파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는 것. 인간의 역사라는 것이 끊임없는 투쟁의 연속이었고, 서로 다른 문명의 만남이라는 것도 한 문명이 다른 문명을 압살하는 형식이었다는 점은 그러한 파국의 전조가 된 탐험을 순수한 지적 호기심이라는 측면에서 보기 어렵게 만든다. 이러한 사정이 가장 잘 드러나는 예는 콜럼부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이후로 유럽인들이 신대륙의 원주민들을 거의 전멸시킨 것이 될 것이다. 이러한 예는 인간이 겉으로 표명하는 이상이나 이념과 실제 현실과의 엄청난 괴리를 단적으로 증명한다고 할 수 있으리라.]
이런 점에서 콘래드의 탐험에 대한 옹호?는 그 이면에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사이드의 다음과 같은 지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Similarly Conrad and Camus are not merely representative of so relatively weightless a thing as "Western consciousness" but rather of Western dominance in the non-European world. Conrad makes this abstract point with unerring power in his essay "Geography -" where he celebrates British exploration of the Arctic and then concludes with an example of his own "militant geogrphy", the way, he says, by "putting my finger on a spot in the very middle of the then white heart of Africa, I declared that some day I would go there." -- [Said Culture]
(이 부분에 대해서 계속 생각을 굴린다면 몇 가지 이야기를 더 할 수 있을 듯하다.)
(102) It delineated imaginary kingdom of Monomotapa and of Prester John . . .
[이 부분은 단순히 상상만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Monomotapa는 Great Zimbavwe 왕들의 칭호이며, 이들은 실제로 번성한 왕국이었다. 이 왕국의 멸망은 포르투갈과 아랍의 침략으로 인한 것이라고 위키피디아는 보고 있다. Prester John의 전설은 인도나 몽골, 페르시아 등과 연관이 되나. 포르투갈 인들에 의해서는 에티오피아 왕국의 왕들과 연결이 된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좀 더 조사가 필요하다.]
(104) The discovery of the New World marks the end of the fabulous geography,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발보아가 파나마 지협을 지나 태평양을 보게 된 것.]
(105) Geography militant, which had succeeded the geography fabulous, did not seem able to accept the idea that there was much more water than land on the globe.
(108) he[Cook] seems to belong to the single-minded explorers of the nineteenth century, the late fathers of militant geography whose only object was the search for truth. Geography is a science of facts, and they devoted themselves to the discovery of facts in the configurations and features of the main continents.
유일한 목적이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부분은 상당히 걸리는 부분이다. 하지만 탐험가[탐사자]들의 노력으로 공백으로 남아있던 지역들에 대해서 사람들이 지식을 갖게 된 측면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런데, 그 지식이 그 지역을 식민지화하는데 이용되고, 스탠리의 경우에서처럼 그러한 식민지화에 앞장 섰다는 사실에 대해 콘래드는 둔감하다. 이 부분이 주된 비판의 대상이다.
(108) It was the century of landsmen investigators. In saying this I do not forget the polar explorers whose aims were certainly as pure as the air of those high latitudes where not a few of them laid down their lives for the advancement of geography.
(112) That passion[Searching for the sources of the Nile] had changed him [Livingstone] in his last days from a great explorer into a restless wanderer refusing to go home any more.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리빙스턴이 영국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한 것은 커츠의 운명과 비슷한 면이 없는 것도 아니다.]
(113)
[Oxford](134-35)
- J. A. Hammerton : a general preface for [Countries of the World, 1]
- The Romance of Travel (1924. 2)
- National Geographic Magazine(1924. 3)
- a nostalgic evocation of his youthful attraction to the heroic legends surrounding famous explorer-adventures and of the influence of 'the romance of travel ' in his own evolution.
- militant geography/ imperial conquest
- 이 다음 부분에 나오는 호손의 언급이 갖는 함의를 집중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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