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안일한 지표로 살아가기에는 너무 복잡한 것인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우리의 삶은 우리가 구체적으로 인식하든 하지 않든 간에 그러한 몇 가지 지표들에 의해 이어지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인간은, 아니 나는, 자신에게 주어진, 혹은 습득한 언어를 가지고 삶을 궁리해 본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경제적 안정과 성적 욕구의 충족이 이루어지면 삶에 큰 불만이 없는가? (인간의 모든 행위는 지극히 동물적이면서도, 또 동물의 차원과는 다른 인간 문화의 영역에 놓여져 있는가?) 갑자기 김우창의 말을 삶의 지표로 삼아 온 것은 아닌가 한다. 그것은 평소에 내가 생각해 왔던 것을 보다 더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에?
나는 그 말을 김우창 선생님이 문광훈과 나눈 대담을 책으로 엮은 [세 개의 동그라미]에서 읽은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지금은 찾을 수가 없다. 대충 흐린 기억을 좇아 옮기보면, "우리의 삶은 외적인 요청과 내적인 요청으로 크게 나누어볼 수 있고, 일단은 외적으로 요구되는 것, 즉 기본적인 물적인 토대를 마련해야 하고, 그 다음에는 우리 내면에서 들리는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한 동안 책 읽기를 게을리한 것이 채찍이 되어 나를 노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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