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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여는 말

160726 (왜 나는?)

by 길철현 2016. 7. 26.


인간 개개인의 욕망의 크기는 현실의 차이만큼 큰 것일까? 여러 사람들을 붙들고 물어보지 않아서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으나, 나의 경우를 놓고 볼 때, 현재의 내 모습이 내가 꿈꾸었던 것(욕망)과 차이가 크다고 해서, 내 욕망이 줄어든 것은 아닌 듯하다. 아니 싫더라도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욕망도 현실의 압박에 의해 어느 정도는 짜부라 들었다는 것이 좀 더 솔직한 표현인지 모르겠다.


우리가 흔히 말하 듯 삶의 목표 중의 하나를 '자아 성취'라고 한다면, 지금까지의 삶의 경로를 볼 때 나는 내가 품었던 꿈에 별로 가까워지지 못했다. 그렇게 되고만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 또 바꿔 말해보자면 자신이 품었던 꿈을 성취하는 사람은 어쩌면 극소수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결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리라. 자신이 진정 결혼하고 싶은 대상과 결혼하는 경우가 많을 것인가? 대부분 현실의 가능성과 적당히 타협하는 것 아니겠는가? 타협을 모르는 사람을 우리는 이상주의자라고 하는가? 아니면 꿈을 쫓는 낭만주의자라고 하는가? - 이 시점에서 겸허하게 자기 반성을 해보자면 내 안이 너무 시끄러웠기 때문이라는 것이 하나의 대답이 될 듯하다.


그럼, 지금은 좀 잠잠해졌는가? 그렇다고 말하고 싶지만 확신이 서지는 않는다. 


그럼, 이 시점에서 나는 어떤 꿈(욕망)을 향해 나아갈 것인가? 일단은 정말 늦은 나이이기는 하지만 박사 논문이라는 과제를 완수해야 한다. 석사 논문을 쓸 때의 그 험난함을 생각해 볼 때, 회피하고 싶은 마음도 많지만 그래도 해나가야 한다. 탁구는 즐겁고(몸은 힘들고) 나름대로의 목표도 뚜렷하지만 취미를 벗어날 때는 공허가 뒤따를 것이다.


먹고 사는 문제에 최소한?의 여유나마 있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할 여유가 있는 것인가? 그런 여유도 없이 쫓기는 삶이라면 삶은 정말?


다시 나의 욕망으로 돌아와 본다면,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본다면, '이 세상을 향해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몇 마디라도 뱉어낼 수 있기를, 공허한 넋두리가 아니라, 생생한 체험인.' 어려운 문제이고, 비끌어 매 못질을 한다는 것 자체가 오히려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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