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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여는 말

160801 (책 읽기)

by 길철현 2016. 8. 1.



나에게 있어서 책을 읽는 것이 재화의 획득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벌이가 시원찮기는 해도 강사나 과외의 바탕이 되어 온 것은 책을 통해 얻은 지식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물론 인터넷 시대에 지식의 통로는 많은 부분 책이 아니라 인터넷이 담당하게 되었다. 원하는 정보를 찾기 위해 이 책 저 책을 뒤적이던 과거의 모습은 이제,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이 사이트 저 사이트를 방문하는 것으로 거의 대체되었다. (책을 둘 공간이 부족해져서 나는 작년 년말부터 올해 초에 많은 책을 처분했는데, 처분의 일순위가 된 것이 각종 사전류였다. 웬만한 정보들은 인터넷에 더 자세하게 사진이나 동영상 등의 정보와 함께 올라와 있기 때문에 수십 년 동안 모아왔던 수백 권의 사전들이 이제는 더 이상 쓸모 없게 되고 말았다. 헌책방에서도 사전류는 구입을 하지 않아, 폐지 값만 받고 고물상에 넘겨야 했다.)


책을 읽는 것이 단지 정보를 획득하기 위한 것은 아닐 수 있다(물론 이 말은 정보라는 말을 어떤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책이라는 것이 이 삶을 이해하게 해주고, 또 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지를 가르쳐 줄 것이라는 어쩌면 근거가 없을 지도 모르는, 그렇지만 우리가 그렇게 믿고 있는 믿음 때문에, 어느 정도 교양을 쌓은 사람들은 책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이기 된다.


나의 경우, 박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일단은 논문의 대상인 조지프 콘래드의 작품과 그 밖의 글들을 다는 아니더라도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읽어야 한다(국내의 영문학 박사 논문이 큰 보장을 해주지는 못한다고 할 때, 나의 논문 준비 작업은 미래에 대한 불안한 투자이다). 부지런히 읽어나가야 하지만, 탁구 때문에, 그리고 요즈음에 꽤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 블로그 활동 때문에, 지지부진한 것이 현실이다. 또 박사 논문을 정신분석적 입장에서 쓸 것이므로, 프로이트도 계속 읽어나가야 한다. 이것 역시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욕망은 니체며, 칸트며, 헤겔이며,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이며(언어철학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긴 하다), 서양 철학 전반을 꿰뚫고 싶지만 그간에 읽은 책은 정말 쥐꼬리도 안 되고, 또 그 쥐꼬리만큼 읽은 책들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채 그냥 삼킨 그런 느낌이다. 프로이트는 석사 논문을 쓸 때 좀 집중적으로 읽었고, 기본적인 개념들은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으나, 그것마저도 심도 있게 안다고 하기는 어렵다. 이 난감한 현실의 돌파구는 무엇인가? 왜 이렇게 되고 말았는가?


아니, 그보다 근원적인 질문은 나의 지적인 능력과, 나의 지적인 허영 사이의 갭을 잘 이해하는 것이고, 내가 이 삶에서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똑바로 보는 것이리라. 아무런 빛도 없는 듯한 삶이 길고 긴 터널 끝에 갑자기 빛으로 가득 찬 곳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 요즈음이지만, 그렇다고 현실이 별로 달라진 것은 없다. 변화가 있다면 삶을 보는 나의 태도나 관점이리라(그것이 7년이라는 오랜 시간의 정신분석적 상담의 결과인지, 아니면 그냥 착각이나 환상인지는 좀 더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으리라). 


지난 나의 삶이 책과 함께 해 온 시간이었으므로 아무리 생각에 생각을 더해도 책에서 벗어나는 삶은 내 지난 삶을 송두리째 부인하지 않는 한 있기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앞서 말한 것처럼, 내 지적 능력의 한계를 어떻게 신장해 나갈 것인가가 문제일 터인데, 이 시점에서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은 '쉽게 좌절하지 않는 것' 그리고, '단 번에 타인의 생각을 읽어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것' 정도일 것이다. 그것은 최인훈이 말했듯이 애정과 시간으로 요약될 수도 있을 것인데, 애정이 아니라 증오라도, 산을 오르고 또 오르는 마음 - 정말 안 되면 때려치면 되는 것 아닌가? - 그 마음일 텐데, 현실의 나는 실천은 가뭄의 콩처럼 하고 생각은 수퍼맨인 듯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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