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밥은 먹고 사나?'하는 말이 있었다. 이 말에 닮긴 뜻은 아마도 최소한의 물적인 조건의 확보일 것이다. 식의주, 라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의 충족. 그 다음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은 성적 욕구의 충족과 자신의 영속을 위한 자식을 낳아 기르는 것이리라.
인간이 자식을 원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본능인데, 나에겐 그 욕망이 그렇게 강하지 않다. 그것은 아마도 이 삶이 나에게 가져다 준 정신적인 고통이나, 또 삶의 부조리성에 대한 자각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정신분석적으로 간략하게 말해 보자면, 오이디푸스 시기의 정신적 상처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으리라.
자식을 낳아 기르는 일은 요즈음 우리나라의 현실에 비추어 보면, 상당히 돈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고, 그 때문에 우리나라는 현재 전세계적으로 출산율이 가장 낮은 나라 중의 하나이다. '둘만 나아 잘 기르자'라는 70년대의 표어는 이제, 한 명도 잘 낳지 않는 현실 앞에서 다른 많은 변화들과 마찬가지로 격세지감이라는 말을 절로 떠올리게 한다.
예전의 기준에 비추어 본다면 우리 경제의 성장과 함께 - 물론 현재 우리 경제는 세계 경제의 침체와 함께 저성장의 덫에 빠져 있긴 하지만 - 대체로 '밥은 먹고 산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먹고 사는 문제에 매달리며 일생을 보내는 듯하다. 아니, 이것은 정확한 이야기는 아니다. 대다수라고 할 수는 없어도 경제 성장과 함께 분명 사람들의 여가 활동의 비중도 높아졌고, 요즈음에는 국내 여행보다도 외국 여행을 나가는 사람들이 더 많은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럽이나 미국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노동에 투자하고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번 겨울 영국 여행에서 느낀 것 중 하나는 24시간 문을 열어두는 우리의 모텔과 달리 영국의 시골 모텔의 경우 11시가 되기도 전에 문을 닫아 버린다는 것. 그것이 예약 문화와 관련이 있는지의 여부는 잘 모르겠으나, 손님의 편익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우리의 문화와, 노동자의 권익을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의 차이라고 해야 할까? 뭐, 그런 거창한 이야기는 아니더라도 24시간 영업하는 식당이 즐비한 우리의 문화와, 저녁 8시가 되기 전에 대체로 문을 닫는 문화는, 우리가 아직도 얼마나 노동에 치여 사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인간이 일을 하는 것은 분명 먹고 살기 위해서 일 것이다. 자신이 하는 일 자체를 좋아해서 - 이를 테면 예술가들 - 정해진 시간을 넘어서서 일을 하는 것이야 논외로 한다고 할 때, 인생의 상당 부분을 일에 치여 사는 삶이 '좋은 삶'이라고 할 수는 없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공부에 매달리는 초중고등 학생들처럼, 경쟁에서 더 나은 성과를 거두기 위해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사람들. 또 그와는 반대로 정말로 기본적인 생계 문제 때문에, 일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예전에 텔레비전에서 본 사례인데, 떡볶이와 오뎅을 파는 이 분은 일을 하면서도 계속 졸았는데, 알고 보니 빚 때문에 투잡을 해야 했던 그래서 잘 시간이 없기 때문에 일 하면서 졸아야 했던 안타까운).
살아남는다는 것, 좀비들을 피해 정신없이 내달려야만 하는 [부산행]에서처럼, 우리들은 정신없이 내달리고만 있는 것은 아닌가? 살아간다는 것,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들은 또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꿈을 마음 한 구석에 품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결혼을 못/안 해서 사회의 큰 흐름에서 좀 벗어나 있는가? 어머님의 경제적인 뒷받침의 덕으로 경제 활동 대신 소비 활동에 주력하며 이나마 버티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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