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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이야기/고흐 시편

과수원 -- 김원호

by 길철현 2022. 3. 7.

「果樹園」 / 金源浩

1
빈센트 반 고호의 <과수원>을 아시는지요.
도깨비도 무서워할 고목뿐인 올리브 숲이었지요.
불타다 남은 자리보다 더 쓸쓸한 곳이었지요.
어쩌면 내가 이런 숲을 생각하는지
나 자신 올리브숲의 도깨비가 되고 싶은 모양입니다.

2
벌레먹은 가지를 하나씩 따 줄 때마다
나는 나 자신인 것을 잊어버리고
물익은 과일이 달린 과수원의 나무가 되고.
나도 가지에 벌레 먹은 과수원의 나무라고 생각합니다.
하니, 고목뿐인 이 숲이 도깨비보다 덜 무서워지는군요.

3
똑, 똑, 가지꺾는 소리뿐
이 과수원은 너무도 조용합니다.
혹시 이런 곳에서 몸에 배인 병이나 씻어버리며
도깨비가 될 때까지 살고 싶지는 않으십니까.
산골보다는 더 조용한 것이 얼마나 마음에 드는지.

4
잔잔하고 푸른 먼 이오니아바다처럼
쓸쓸한 여름날 같은 하늘도 보입니다.
조용한 원색 속에서 생활을 하며
향기 푸른 과일밭에서 일을 하시면
어느새 병도 깨끗이 나으실 것입니다.

5
푸른 달밤에 과일이 익을 때
과수원 옆에 초막을 짓고 지내시면
단물 고인 과일나무가 되시겠읍니다.
그러나 사람이 보고 싶을 땐 언제라도 돌아 가시지요.
그래도 우리 이 과수원에서 도깨비가 될 때까지 살고 싶지는 않으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