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Looper가 안 돼 반복 재생을 못하고 있었는데,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더니, 유투브에서 그냥 '연속재생'을 누르면 된다고 해, 사이먼과 가펑클의 'Scarborough Fair'를 무한 반복으로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글이 잘 씌어질 것도 같다.)
버릇대로 벽에 걸린 시계로 가닿은 눈은 잠시 의아해 했다. 12시 반. 어젯밤에 세 시 경에 잠이 들었으니 9시간 이상을 잔 것이다. (이렇게 글을 쓴다면 쉽사리 끝을 맺을 수 없을 걸.) 12시가 넘은 시각이었는데도 더위 바람이 아니라 서늘한 기운이 방충문을 치고 열어둔 문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무리 이번 여름이 뜨겁다고 해도 결국에는 꼬리를 보이는 구나, 하는 생각. 꿈에서 K는 신관장과 탁구를 치고, 또 뒤늦게 온 병규 씨와 다시 탁구를 치러 가고(탁구를 빼고 나면 남는 것이 뭘까? 이 꿈은 며칠 전 탁구 모임에서 우연찮게 세 사람이 늦게까지 남아 대리기사가 온 것의 변조이구나), 그 다음에는 술집에서 여자 주인과, 또 어떤 여인과 어떤 남자. 그리고 먹어도 먹어도 줄어들지 않는 고기.
한가한 시간. 잠시 뉴스를 시청하던 K는 점심을 먹으러 길을 나섰다. 어디로, 월계동을 출발하여, 창동을 지나, 동부간선도로로. 타이어 가게에 쌓인 타이어들. 5만원 대 싼 것과 15만원 대의 것. 타이어를 교체할 때가 되지 않았나. 동부간선도로는 시도 때도 없이 막히고. 그 끝에서 의정부 IC로. 구리로 갈까 아니면 송추 쪽으로. 송추 방향으로 달리다가, 그쪽으로 갔을 때 별로 좋았던 기억이 없다는 걸 깨닫고는 급히 호원IC로 빠져 나온다. (그 전에) 눈에 들어오는 왼쪽의 인수봉이며, 만장봉이며, 원도봉이며, 또 멀리 수락산과 불곡산. 부근에 이렇게 좋은 산들이 있다는 것도 큰 복이야. 몇 킬로 달리지 않았는데도 엄연히 통행료는 내어야 한다.
(시간이 된다면 좀 더 자세하게 적어보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이 글감이 되려면 좀 더 세밀해야 하고, 또 뭔가 알맹이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의정부를 지날 때, 언제 라디오를 틀었던가? 강석과 김혜영. 수십 년은 되지 않았나? 소소한 사기꾼 이야기. 서울역에서 어떤 사람이 어떤 사람에게 경주(경주가 맞는가? 몇 시간 전인데도 기억이 벌써 흐릿하다)까지 가야 하는데, 지갑을 놓고 와서 4만 5천 원만 빌려주면 계좌로 부쳐주겠다고 사기를 쳤단다. 그런데, 이 사람이 이번에는 영등포 역에서 익산에 가야 한다고 또 사기를 쳤는데, 그 상대가 하필이면 서울역에서 사기를 쳤던 바로 그 사람. 그래서 딱 걸리고 말았다는데. 어떻게 그런 우연의 일치가. 직원 수를 조작하고, 정부의 보조금을 착복하고, 원생들 간식비를 자신의 집 장보는데 쓴 유치원 원장들. 지역 단체에서 후원한 장학금을 착복한 선생님들. 세상에 많고 많은. 그러고 싶어도 간이 적어서 그러지 못하는.
3번 국도. 양주 시청. 덕계. 양주 출입국 관리소. 왜 저것이 저기에 있지? 중요한 것은 어디에서 밥을 먹는가? 도로변에서 눈에 들어오는 식당들은 거의 다 순대국 집들. (마음 속으로는 이미 예전에 한 번 식사를 했던 동두천의 어느 먹자 골목으로 정해 두었는데. 그곳이 바로) 지행역 부근이었다. 지행역 부근은 앞쪽만 번화한 것이 아니라, 뒤쪽도 번화했다.
이번에는 상남자 사연이다. 술을 좋아하는 그의 애인. 그리고 마지막 부분은 역시 지저분하게 변 이야기로 이어지는데, 잡음이 점점 더 심해지면서 내용이 들리지 않는다.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 멀리 아파트에 주차를 하고, 번화한 거리를 걷다고 고깃집에 들어가 늦은 점심을 먹는다. 차돌된장찌개. 혼자 와서 미안합니다. 왜, 돈 내고 식사를 해야 하는데도 미안해야 하는가? 괜한 자의식인가? 혼밥 족의 서러움.
식사를 마치고 입가심으로 더위를 식힐 겸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 먹고, 유유히 지행역 뒷편의 번화가를 걷는다. 거의 어디나 비슷비슷한 구조를 가진 역 주변의 중심가들. 식당들과 술집, 그리고 마사지 샵, 모텔, 은행, 그 밖의 생활잡화점들. (집에서 멀지 않는 곳인데, 이곳을 처음 알았다는 것이 신기하다.) 탁구장도 두 군데나 있다. (굳이 걸어 올라가본다. 한 곳에는 회원이 몇 명 있었는데, 한 곳은 아직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아직도 더운 열기. 고도 비만의 아줌마. (사실 이 아주머니는 며칠 전 집 근처에서 본 것인데, 이곳을 걷고 있다는 상상을 해본다. 어떻게 저 몸으로?) 거리를 걸으면서 느꼈던 인상들은 대부분 사라지고 만다. 하나 기억에 남는 것. 젊은 여자가 가게 테라스에 흰 페인트를 열심히 칠하고 있는 장면. 어머니를 따라 나온 머리를 짧게 자른 아이들. 또 아파트 입구에서 더운 날씨 때문인지 얼굴을 잔뜩 찌푸린 어린 여자아이. 세금과 관련된 공공기관.
살아간다는 것. 악착같이 살아남는다는 것. 갑자기 구역질이 난다. (찜질방에 들렀다가 냉탕에서 금지된 수영을 하다가 물을 먹어서 구역질을 해서 일까?) 곡성은 무엇을 말하는가? 누구의 짓인지 찾으려는 시도들. 상징계로의 진입은 우리에게 죽음을 직면하게 한다. 모든 것은 언젠가는 끝난다. 내일일 수도 있고, 몇십 년 뒤일 수도 있다. 그게 무슨 차이가 있는가? 왜 차이가 없는가?
She once was a true love of mine. She will be a true love of mine.
돌아오는 길, 공사로 어지럽고 막히는 동부간선도로 위에서, 빗방울이 한두 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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