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래드를 홀대하는 것에 대한 씁쓸함과, 그래도 그의 묘소를 찾았다는 안도감을 안고 캔터베리 대성당으로 향했다. 캔터베리 대성당은 캔터베리 시립 묘지를 향해 가는 길에서부터 저 멀리에 그 위풍당당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어서 걸어가기로 했다. 지나가는 분에게 길을 물으니 '다리를 지난 다음 공원을 지나 어쩌고' 하는데 그 다음부터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보이니까 그쪽 방향을 향해 가면 되는 것 아닌가 했으나 시내로 들어오자 다른 건물들에 가려 대성당은 보이지 않았다.
어떤 성문 앞에서 우회전을 해야 했는데, 그대로 직진해서 시 외곽으로 나가다가 다시 돌아왔다. (18미터에 달하는 이 성문은 14세기에 축조된 웨스트게이트 타워[Westgate Towers]로 도시의 성문으로는 영국에서 가장 큰 것이다. 캔터베리에는 중세에 축조된 일곱 개의 성문이 있었는데 이 성문만이 유일하게 남아 있다고 했다.)
대충 방향만 가늠하며 사람들이 많이 이동하는 쪽으로 나도 따라갔다. 어떤 거리(St. Peter's Street)로 들어서자 사람들로 넘쳐났다. 조금 걸어 들어가니 구호 기관인 옥스팜(Oxfam)에서 운영하는 헌 책방이 눈에 띄었고 별로 기대도 하지 않고 들어가 보았더니 '메수언'(Methuen) 출판사에서 1925년에 발행한 포켓판 콘래드 책이 몇 권 있었다. 그 중에서 단편집 [여섯 편의 단편들](A Set of Six)과 에세이집 [바다의 거울](The Mirror of the Sea)을 구입했다. 구하기 쉽지 않은 책들인데 뜻밖의 수확이었다.
근처에 온 것은 맞는 것 같은데 정확한 위치를 몰라 여기서도 좀 헤맸다. 그러면서, 이 도시의 유서 깊은 유적들을 만났다.
캔터베리 대성당을 찾기 어려웠던 이유 중의 하나는 들어가는 입구가 다른 건물들 사이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좁은 입구로 들어가자 내부는 엄청 넓었다.
캔터베리 대성당의 역사는 성 오거스틴 대주교가 597년 영국에 기독교를 본격적으로 전파한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이곳은 영국 교회의 본산으로 자리잡았다. 헨리 2세가 왕으로 있던 1170년 당시 대주교였던 토마스 베켓이 기사들에 의해 살해되고 그가 성인으로 추대된 다음, 이곳은 순례자들이 들르는 성소가 되었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14세기의 시인 초서가 쓴 [캔터베리 이야기]에 나오는 순례자들이 향하는 목적지도 바로 이곳이다.
캔터베리 대성당에 얽힌 이야기 중 아는 것만 대충 정리해 보았다. 런던 타워의 교회도 그렇고, 이곳 또한 현재까지 예배를 보고 있었다. 중국 학생들도 많이 눈에 띄었고, 교복을 입은 학생들도 있었다. 나는 성당의 내부와 외부를 지친 발을 이끌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날도 저물어 가고 해서 런던으로 돌아가기 위해 캔터베리 이스트 역으로 향했다. 성벽이 보여 캔터베리에 도착했을 때 본 것인가 했으나 아닌 듯하여 반대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실제로는 맞았던 듯하다). 인터넷은 연결이 잘 되지 않았고 얼마를 걸어가다가 길을 잘못 든 것을 깨닫고 지나가는 여자분에게 길을 물었다. 그 여자분은 나에게 길을 가르쳐주고는 쏜살같이 걷기 시작해 괜히 나를 무안하게 했다. 근처에 대학교라도 있는지 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남녀들이 많았다.
캔터베리 이스트 역에서 기차를 타고 오는데, 어떤 여자분이 페이버샴(Faversham)에서 갈아타야 한다고 말해 주었다. 그녀는 친절하게도 내리면서 다시 한 번 이야기를 해주었다. 피로가 몰려와 좀 자려고 했으나 자세가 너무 불편해 잘 수가 없었다. 머리를 푸른 빛이 도는 녹색으로 염색하고 겨울인데도 민소매 티를 입은 젊은 여자가 자전거를 가지고 기차에 올랐다.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타입.
빅토리아 역에서 패딩턴 역으로 온 다음 지나 다니면서 본 그리스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멀리 영국까지 왔으니 돈을 좀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전날 밖에서 이 식당의 메뉴를 들여다보는 나를 바라보던 젊고 통통한 여직원이 나를 맞아주었다. 손님은 나 외에는 한 명 뿐이었다. 샐러드와 수프, 그리고 주 메뉴로 그나마 익숙한 송어(trout)를 시켰는데 없어서 바다 농어(sea bass)로 주문했다. 거기다 화이트 와인도 한 잔 곁들였다. 빵과 당근, 올리브가 서비스 요리로 나왔는데, 올리브 류의 과일 하나는 너무 시어서 먹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농어는 상당히 부드러웠으나 그렇게 맛있지는 않았다. 서비스 포함하여 29.45파운드. 내가 50파운드 지폐를 내놓자 직원이 큰 소리로 고맙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팁을 그렇게 많이 줄 생각이 없었기에(영국에는 팁을 주는 문화도 없지만) 30파운드라고 말했다. '30파운드면 충분하지 않냐?'(30 pound would be enough)이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차마 그렇게는 말하지 못했다.
숙소로 돌아왔다가 첫날 길을 헤매면서 본 술집(pub)에 가서 한 잔하기로 했다. 밤이 되면서 기온이 많이 내려가 파카로 갈아 입었다. 그런데, 술집 밖에 있는 테이블에서는 젊은 남자가 반 팔 티에 반바지를 입고 혼자 맥주를 들이키고 있었다. 카운터에 앉자, 직원이 식사도 같이 하겠느냐고 물었는데, 한다고 했다가 잘못 말한 것을 깨닫고는 술만 마신다고 정정했다. '맥주와 와인이 있다'는 말에 내가 '좀 강한 것'(something strong)으로 달라고 하자, 그녀는 '맥주 중에 맛이 강한 것'을 가져왔다. 내가 '위스키는 없냐'라고 물으니, '반대편에 온갖 종류의 위스키가 있다'고 했다. 구석 자리에 앉아 혼자 위스키를 들이키니 외롭다는 생각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내 옆에서 혼자 식사를 하고 있는 나이 많은 여자분에게라도 말을 좀 걸고 싶었으나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런던에서의 네 번째 밤은 저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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