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이 누런 털로 덮이고 슬픈 눈에 코끝이 까맣게 생긴 녀석.
뒤꼍 개집에서 봄여름 가을 나고, 겨울에는 차고 한구석에서
뒷발로 귀를 털면서 나이를 먹었지.
늘그막엔 주인집 거실 바닥에서 코를 골며 낮잠을 자기도 했다.
놈은 이 세상에 태어나 열여덟 해를 혼자 살았다.
물론 극진하게 보살펴주는 주인 내외와 딸이 있지만, 한마디로 말하자면
사고무친의 외톨이 아니었나.
천둥 벼락 치면서 폭우가 쏟아지는 날에는 놈이 위층 서재까지 뛰어 올라와
주인의 책상 아래 몸을 숨기기도 했다. 겁이 났던 모양이다.
놈을 야단치고 밖으로 쫓아내는 악역을 맡은 바깥주인도 이럴 때는 못 본 척
그대로 내버려두는 수밖에 없었다.
가족에 버금가는 대우를 해준 셈이었다.
이렇게 정든 놈이 몸뚱이만 남겨놓고 세상 틈새로 사라져버린 다음,
나뭇잎 하나둘 허공을 맴돌며 떨어져 마당을 뒤덮는 가을밤이면,
사박사박사박 낙엽 밟는 작은 발자국 소리 . . . 놈이 아직 뒷마당에서
돌아다니는 것 아닐까.
우리가 자는 동안 밤새 소리 없이 눈이 내려, 세상이 온통 은세계로 바뀐
겨울 아침이면, 국화빵처럼 생긴 발자국이 뒤뜰 여기저기 남아 있는 때로 있다.
평생 살던 곳 떠나지 못하고, 놈은 아직도 우리 집 마당을 바장이고 있는가.
"그저께 보낸 메일". 문학과지성사. 8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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