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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

번지점프

by 길철현 2024. 11. 18.

 

죽고 싶다고

그냥 막 죽을 순 없는 노릇이라

죽음의 뒷그림자나 보려

번지점프에 도전했지요

두려움이 한계치를 넘어선 걸까요

직원의 안내에 따라 장비를 착용하고

엘리베이터는 한없이 올라가고 

마침내 점프 지점에 섰을 때에도

마음은 오히려 평소보다 평온했어요

뒷그림자이나마 죽음과 대면한다는 기대에

약간의 흥분감마저 있었지요

카운트가 채 끝나기도 전에

머리부터 바닥을 향하고

바닥과 충돌하여 납작만두가 되기 전의 

그 무한히 짧은 순간

 

내 모든 몸부림은 무소용

날개가 있든 없든 추락은 불가역

한 개 돌멩이와 마찬가지의 무능함

이 모든 것이 뼛속에 새겨질 때

희안하게도 난 진정한 자유

고개 들어 주위를 살펴볼 여유

그리고 죽어버린 죽음

 

 

 

 

 

 

 

 

 

20140523? 

 

 

 

 

 

 

번지 점프를 했어요. 무서웠지요. 아무리 안 무서운 척 해도. 뭐, 죽기밖에 더 하겠어. 이렇게 외쳐봐도. 하지만 상처 입은 내 마음. 부딪혀 보고 싶었지요. 가짜 죽음이라도. 유일하게 유일하게 허용되지 않는 경험을 경험해 보고 싶었던 것인가요? 살짝 눈을 감았지요. 떨어져 내리며 언제 눈을 떴는지 모르겠네요. 눈 아래 광경을 보았지만 별로 기억에는 남아 있지 않네요. 무엇보다 생생한 건 그 무엇도 내가 떨어져 내린다는 걸 막을 수는 없다는 사실이었지요. 수퍼맨도, 신도. 또 그 사실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도 분명했지요. 그러자, 무중력 같은 자유낙하가 주는 자유로움이 정말 밀물처럼 밀려들더군요.죽음 따윈 없어요. 모두 인간이 지어낸 이야기지요. 말이지요. 말은 어디에도 가지 못하고 말 안에서 맴돌 뿐이지요. 기호의 우리에 갇힌 우리는 우리의 기호에서 우리끼리 살아가는 것이지요. 답답하니까 도를 찾고 구원을 찾고 진리를 찾고 신을 찾을 따름이지요. 나의 생각또한 모두 오염된 것이네요. 자유라고 느낀 그것은 사실은 포우의 단편에 나오는 이야기 아닌가요.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려간 사내. 하룻 밤 사이에 머리가 하얗게 센 사내

 

 

 

 

 

 

 

 

 

 

 

 

 

죽고 싶다고

그냥 막 죽을 순 없어

죽음의 뒷모습이나 보려

번지에 도전했지요

두려움이 감당이 안 되었던 걸까요

장비를 착용하고

설명을 듣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점프대로 향하는 내내

마음은 오히려 평소보다 평온했어요

뒷모습이나마 죽음과 대면한다는 기대에

약간의 흥분감마저 있었지요

가이드의 하나둘셋 카운트가 끝나기도 전에 

내 몸은 거꾸로 바닥을 향하고 있었지요

바닥과 충돌하여 납작만두가 되기 전의 

그 짧은 순간

내 모든 몸부림이 무소용이라는 것

날개가 있든 없든

추락이라는 불가항력적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아무도 없다는 것

받아들이지 않아도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

확철대오처럼 다가왔지요

다시 한 번 마음은 평온하고 고요했고요

눈을 들어 주위를 살필 정도로 여유로웠지요

죽음이 두 손 두 발 다 들고 서있는 것도

찰나적으로 보이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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