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dyard Kipling - Kim, Penguin. 1901
(공책에 쓴 것을 약간 수정하면서 옮겨 적음)
영국 작가 중에서는 최초로 노벨상(1907년 - 노벨상은 1901년부터 시작)을 수상한 작가로 기억되는 키플링은 현재는 그 문학적 가치가 시들해지고 말았지만(그래도 [정글 북]은 아동용 동화로 아직도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당대에는 시와 소설 모두에서 영국 내에서는 - 외국에서의 인기는 잘 모르겠으나 - 굉장한 인기를 구가했다. 그에 대한 비판의 핵심에는 - 모두가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듯이 - 영국의 제국주의, 더 나아가서는 유럽의 제3세계에 대한 식민지배가 갖는 문제점을 제대로 진단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을 공공연히 혹은 은연 중에 옹호하고 있다는 점이다(imperialism, jingoism). 이런 점은 이 작품보다 더 일찍 출판된 조지프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과 비교해 보아도 여실하게 드러난다.
그의 이런 이념상의 문제 외에도, 그가 당시 영국 독자들의 일반적인 취향에 편승내지는 호응하여, 또 당대의 이국 취향--특히 그의 고향이자 그가 오래 살았던 인도를 배경으로 한--을 주무기로 하여 큰 인기를 끌긴 했으나, 그의 문학적인 시도에 별다른 실험성이나 새로운 방향성, 또 깊이 파고 들고자 하는 노력 등이 없는 것도 그의 큰 약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장편 중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도 그런 약점을 그대로 노정시키고 있다. 킴(Kim - 우리나라의 김이라는 성과 영문 표기가 같아 우리나라와 관련된 소설이 아닌가 하는 연상을 자꾸 불러 일으킨다)은 백인의 혈통을 타고 났으며, 그도 그것을 인지하고는 있으나, 인도 원주민들--그것도 시장이라는 공간 내의 하층민들 사이에서 자람으로써 (또 그 언어에 더 익숙해져 있다) 인도인이라는 생각도 있어서, 정체성에 어느 정도는 혼란을 느끼고 있는데, 시간이 흐를 수록 (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인간 관계인 라마 승[father-figure, 아버지를 대신하는 인물]과의 깊은 유대에도 불구하고) 백인 지배 계층의 이념을 보편적인 가치로 추종하는 면을 보인다.
이 과정에서 킴은 로맨스나 낭만적 작품의 주인공처럼 "탁월한 능력"을 지닌 "영웅적 인물"로 묘사되는 반면에, 다수의 인도인들은 무지하고 미신적인(특히 이 부분이 강조되고 있다) 인물로 폄하되고 있다. 물론 조규형이 지적하고 있듯이 "인도의 경치와 사회 문화적 제도, 다양한 언어와 종교 그리고 미신들, 우리의 청각과 시각 그리고 후각을 자극하는 장면들" ([탈식민 논의와 미학의 목소리]. 고려대 220) 등 다채로운 인도의 모습을 이전의 어떤 작품들보다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는 장점을 도외시 할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이긴 하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 작품은 킴이 아버지를 대신하는 인물인 라마 승을 "우연히" 만나 모험을 떠나면서, 킴은 자신의 직업, 즉 "첩보원"이라는 소명을 발견하게 되고 라마 승은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모험기이면서 소망 성취라는 이야기의 전통적인 구조를 따르고 있다. (프롭의 "구조주의 이론"에 맞춰 이 작품을 분석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더 나아가 이 작품에서 동화적이고 낭만적인 성격을 엿볼 수 있는 것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킴의 영웅적인 면모가 부각되는 것과 동시에 작품의 전개도 광대한 인도 대륙을 배경으로 함에도 불구하고 킴이 만나게 되거나 또 겪게 되는 사건들이 몇몇 인물(Mahbub, Colonel Creighton, Lunan, Hurree, 이름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수다스럽고 상당히 부유하면서도 미신으로 가득 차 있는 노부인)로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점은 사건의 전개나 그것에 대한 해석이 좀 더 깊이 있게 나아가지 못하고,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고 말게 한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인도의 실감나는 묘사, 킴이 정신적 성장을 이루는 것, 특히 병약해진 라마 승을 온 힘을 다해 모시고 그 와중에 자신이 입수한 기밀 문서도 끝까지 몸에 지니는 것 등에서 "청소년 성장 소설"로서 어느 정도의 성취는 거두었다고 할 수 있으며, 또 정신분석적인 측면에서도 흥미로운 면이 있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키플링은 원래 인도에서 태어나 여섯 살 무렵에 여동생과 함께 교육을 위해 영국으로 건너왔다. 이것은 많은 인도 주재 영국인들의 자녀들이 겪어야 했던 운명으로, 작가들 중에는 특히 윌리엄 메이크피스 새커리가 겪어야 했던 심리적 외상이 두드러진다. 새커리의 경우 아버지가 일찍 죽고 어머니가 그녀의 첫사랑과 재혼하는 바람에 그는 고아 아닌 고아가 된 상태에서 네 살 정도에 영국으로 보내졌다. 이 당시에는 어린 시절의 부모와의 이런 이별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정신적인 상처로 작용할 수 있는지를 잘 몰랐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 가지 덧붙인다면 [걸리버 여행기]로 잘 알려진 조나산 스위프트의 경우에도 아버지가 그가 태어나자 마자 죽었는데, 어머니가 그를 아일랜드에 두고 영국으로 돌아가 버렸다고 한다. 그의 잘 알려진 인간혐오증이나 염세적 세계관이 어릴 적의 외상과 갖는 연관성을 추적해 보는 작업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이러한 사실이 그의 작품과 갖는 상관 관계는 좀 더 심도있는 연구가 필요하겠으나, 정신분석적인 관점에서 볼 때 - 이 작품과 그의 다른 장편인 [용감한 선장들](Captains Courageous)에서 드러난 점을 토대로 볼 때(이 작품은 직접 읽지는 않았고 영화로 보았는데, 국내에는 [굿바이 마이 라이프]로 소개되었다), 이 어린 시절의 이별, 또 그로 인한 정신적인 상처가 "이상적이고 긍정적인, 바꿔 말해 자신의 정신적인 성숙을 도와주고 보호해 주는(물론 이 작품에서는 킴이 라마 승을 돕는 면도 많이 나오기는 한다) 아버지(혹은 아버지를 대신하는 인물 Father-Figure)로 형상화되고 있다. 그러한 관계를 통해 "정신적인 성숙"을 이룬 주인공은 이 작품에 묘사된 것처럼 아버지와 헤어지거나, [용감한 선장들]에서 처럼 아버지의 죽음을 목도하게 된다.
다시 한 번 요약해 본다면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제국주의를 은연 중에 옹호하는 취약점에도 불구하고, "청소년 성장소설"로 일정 정도의 문학적 성취를 이루었으나, 그것이 문학상의 좀 더 심도 있고, 좀 더 혁신적인 작업과는 거리가 먼 당대의 소설 문법을 답습한 정도의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보다 약 20년 뒤에 나온 E. M. 포스터의 [인도로 가는 길](1924)은 새로운 문학적 실험이나 문법을 도입하지는 않았지만, 영국과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의 관계의 핵심을 깊은 차원까지 파고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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