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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래드, 조지프

Lord Jim [로드 짐] Conrad, 콘래드

by 길철현 2016. 4. 10.


*Lord Jim. (150129)


17년 만에 다시 읽게 되었다. 당시에 그렇게 어렵게 읽었다는 느낌이 없는데, 요번에 다시 읽어보니까, 짐의 재판을 둘러싸고 짐이 말로에게 이야기하는 부분 등--그러니까 작품의 전반부는 상당히 난해한 편이다. 당시에 제대로 이해하면서 읽은 것 같지는 않다. 큰 줄거리를 따라가지 않았나 한다(작품을 다 읽었을 즈음에 찾은 지난번 독서 노트에는 챕터별 주요 내용이 정리가 되어 있고 또 작품에 대한 간단한 감상도 있는데 주로 형식과 내용의 불일치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일단 먼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콘래드에게는 빅토리아적인 요소(혹은 19세기 사실주의 *자연주의적인 프랑스 작가들, 모파상이나 플로베르의 영향이 많이 엿보인다)와 20세기 모더니즘적인 요소가 혼재해 있다는 점이다. (추가 - 이 점에 대해서는 Fredric Jameson이 Political Unconscious에서 자세히 논의) 콘래드가 개인의 내면 심리를 깊이 파고 들어가는 모습--그래서 사건은 계속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장면에 중지해 있거나, 그 사건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이 작품의 경우에는 짐의 낭만성과 이상성(그것은 아주 현실적인 인간, 혹은 생존에만 몸부림치는 인간이 아니라면 누구라도 그럴 것인데, 그래서 말로는 계속해서 one of us라는 말을 주문처럼 반복한다)이 현실이라는 시험대에서 깨어지고 마는, 짐이 배에서 보트로 뛰어내리는 사건을 중심으로 탐구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이 부분에서의 생생한 묘사나, 짐의 심리 상태는 콘래드의 정신적 상흔, 더 나아가서는 인간이 입기 마련인 상흔과 맞물려서 아주 강렬한 충격을 준다.


파투산에서의 짐의 운명은 콘래드의 세계관에서는 피할 수 없는 그런 것이긴 하지만, 이야기로서의 재미를 획득한 대가로 전반부의 치열한 고뇌는 없어 보인다. 이 부분은 콘래드가 19세기적 소설가로 돌아가는 그런 느낌이다.


전체적으로 이 작품은 [암흑의 핵심]을 연상시키는 면이 많다. 특히 오지인 파투산은 Kurtz가 머문 콩고 강의 깊숙한 아프리카 오지와 흡사하다. 짐이 파투산 사람들에게 보다 나은 삶을 주려고 애를 쓴 반면에, Kurtz는 가장 낮은 곳까지 타락하고 만다는 점에서 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긴 하지만. 그러나 타 문명에서 뭔가 새로운 의식을 심어준다거나, 또는 아주 야만의 상태라고 본다거나 하는 것은 제국주의적인 면모의 다른 이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치누아 아체베의 콘래드 비판은 반추되어야 할 것이다.

20살의 젊은이가 낯선 동양의 땅에서 적어도 수천 명의 사람들이 문명을 이루고 사는 곳에서 지도자의 위치에까지 오른다는 것 자체에 낭만적이고 이상적이며 오리엔탈리즘적인 면모가 숨어 있는 것 아닐까? 이 부분도 오래 고민해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