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 이야기/고흐 시편83 먹고 있는 반 고호를 먹고 있는 태양부인 -- 김혜순 끓고 있는 들판 범벅 보리밭 길을 몇 동강 썰어넣고 해바라기 씨를 끼얹으며 주걱으로 휘휘 저어놓은 주황빛 스튜 반 고호의 식사준비 가마솥처럼 펄펄 끓고 있는 그의 뇌수, 시간이 흐를수록 맹렬히 끓는 기억의 소용돌이 들판 범벅을 쑤고 있는 주걱을 든 손을 미친 듯 떨게 하는 두개골의 한없는 용솟음 반 고호의 머리 뚜껑을 열어놓고 국수를 삶고 있는 저 화려한 시대의 욕정 태양부인의 식사 준비 2022. 3. 8. 해바라기 환상 -- 권달웅 손을 떠난 바람이 피아노를 치고 있다. 하늘은 늘 밖에 있고 나는 기침하는 뜰 안에 있다. 가을해는 녹슨 수레바퀴를 굴리며 사라진다. 해바라기는 깊이 고개를 숙인다. 바람은 풀잎에 화인을 찍고 나는 눈을 떠도 눈을 떠도 타버린 얼굴이다. 등 굽은 어둠이 쏟아지고 있다. 2022. 3. 8. 고호에게 -- 권달웅 나무들의 귀가 들판 쪽으로 굽어 있었다. 생 레미 요양원 울타리 너머에는 밀밭을 흔들고 가는 바람의 모습이 보였다. 닫힌 창문을 통하여 바람이 지나갈 때면 누우런 밀밭이 불길처럼 타올랐다. 검푸른 측백나무가 연기처럼 치솟았다. 생 레미 요양원 울타리 안에는 둥지가 잘린 나무들이 석양을 받고 있었다. 2022. 3. 8. 고호의 편지 -- 김종원 빈센트 반 고호에게 있어 편지는 그림만큼 소중한 것. 끓어 오르는 유혹의 불길 안으로 익혀 삭이며 고향의 아우와 마주 앉은 그 씁쓸한 겨울 램프의 가슴앓이. 황금 여울 보리밭에서 추운 까마귀 만장처럼 날려 보낸 뒤 아픈 귀 중절모로 감추고 그가 마지막 남긴 것도 색칠한 서른 일곱 아까운 생애 가로 가로 지른 어머니의 편지였다. 2022. 3. 8. 이전 1 ··· 9 10 11 12 13 14 15 ··· 2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