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196 시에 대하여 나는 시를 쓸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대학교 1학년 문창반이라고 들어가니 모두 시만 쓰고 있었다 위가 큰 소설가를 꿈꾸던 나도 시류에 야합하여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이내 맞이한 시낭송회 선배가 고쳐 준 시를 무사히 낭독했나 했더니 합평회 때 분기탱천한 일인 시에 대해서 시자도 모르면서 시를 쓴다고 콘크리트 바닥에 그대로 대가리를 처박고 싶었지 절치부심 와신상담 굴하지 않고 시를 읽고 시를 생각하고 어느새 시로 담아내고 싶은 한마디 말이라도 생겼던가 안 써지는 시를 써나가려 했지 하지만 용기를 내어 투고를 하면 그 즉시 낙고라 시와 나는 인연이 아닌 것을 대머리에서 새 머리 나고 벙어리 말문이 터지고 봉사가 눈 뜨고 앉은뱅이가 서는 걸 기대하는 것이 차라리 나을 터 온 적도 없는 시야 가거라 멀리 멀.. 2024. 9. 13. 시우리 그 길에서 이 길의 주인은 풍경이다가을을 두드리는 비가젖은 논이며, 집이며, 나무와 먼 산을 다시 적시고낡은 우산을 뚫고 들어와 나를 적시고소리로 가득 찬 적막을 나는 걸어간다풍경이 주인인 이 길을 걸어간다슬픔은 지나갔어도슬픔의 기억은 떠날 줄 모르고우산을 뚫고 나를 적시는 비처럼나는 여전히 허우적거린다논두렁을 따라 난 이 좁은 길은어디쯤에서 끝이 나는가그래, 이 길이 끝나는 곳까지만 슬퍼하자끊어질 듯 끊어질 듯 길은 이어지고빗줄기는 자꾸만 굵어져 가고도랑물은 와랑와랑 울어 젖히는데난데없이 빗속을 떨치고 날아오르는 새 한 마리 빗속을 떨치고날아오르는 새한 마리 * 시우리는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20050831) .. 2024. 9. 11. 탁구의 길 15 - 상대방 탁구대에 넘기면 이긴다 상대방 탁구대에 넘기면 이긴다아니, 최소한 지지는 않는다이 단순하고 자명한 진리에는 하지만, 그러니까, 수십 편의 논문으로도수십만 번의 스윙으로 풀지 못한, 풀릴 수 없는수수께끼가 있다 상대방도 같은 생각이라는 것생각을 넘은 생각으로 상대방의 허를 찌를 때찔리는 척 허를 피하고상대방의 혈을 누를 때눌린 혈에서 새순이 돋아나듯꽃이 피어나듯새로운 자각이 들어설 때 (계속) 2024. 9. 11. 죽은 자는 말이 없고 비 오는 날 한강에 나가보았어젖는 데에는 이골이 날 때도 되었건만달려드는 비를 이겨내지 못하고차 안에서 잔뜩 몸을 웅크린 채분주히 왔다갔다를 반복하는 와이퍼 사이로물 위에 물이 떨어져 젖어드는 걸넋 놓고 바라보았지빗줄기 잠시 호흡을 늦추자어디선가 날아든 한 떼의 비둘기들젖은 깃털로 서둘러 하루를 쪼다가일제히 후두두 솟아오르더군저만치 홀로 버려진 채온몸으로 비를 받고 있는 산책로처럼죽은 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강물은 어딜 그리 바삐 흘러가는지차들은 물보라를 튀기며 또 어디로 가는지 (20000919) (20001009) 2024. 9. 10. 이전 1 ··· 9 10 11 12 13 14 15 ··· 4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