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 및 감상/문예창작반(문창반)31 [내재율 제3집] 김은정(86) -- 광경 광경 김은정(86) 진주빛 바랜 시멘트 담장마다누런 이불 하나씩 덮고 누운 오후이제는 가시 돗힌 화려함이여남은 게 꽃잎으로 흐트러진 너.지나는 모든 것 발걸음마저시계에 쫓기듯 서슴지 않고 왔다간 사라져제철엔 꽃호박이라도 붉게 타고무진장 쏟아져 내리고땅거미는 가장 슬픈 표정을 하고는제 그림자를 주워올린다. 2024. 11. 27. [내재율 제3집] 권혜경(86) -- 탄금대에서 탄금대에서 권혜경(86) 중원의 푸르름 아래펼쳐있는 흐름을 알고 있는가.12만의 귀가그 옛날 그곳에 있음에도대문산이 전해주던가실왕이 아닌 진흥왕을 위한탄금 소리가,슬퍼할 수 없는 곡조의 눈물인양금휴포에 삼켜진다.알고 있는가.하얗게 부서져 내리는 물새의 날개사이로천오백 년 한이뽀얀 물안개처럼 피어오름은,천둥소리에 끊긴열두 줄의 화신처럼그 어느 날 가실왕의 우륵비운의 탄주가에 닥쳐온고추 같은 설움은,한순간 꺼져가는 소나기처럼,귀를,눈을,매장한다. 2024. 11. 26. [내재율 제3집] 권혜경(86) -- 들꽃 들꽃 권혜경(86) 어둠이 산등성일 타고 내려올 무렵.겨울부터 지금까지 한이 서린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가저만치들려온다. 까맣게 그을린 초동의풀피리 같은 소리가 촌부(村婦)의 구릿빛 살갗을 닮은산언덕길 흙 위에누군가의 발자취가 남겨졌던가.누군가의 손길이 닿았던가.코끝을 간지르는 남풍에무심히 떨고 있는 빛바랜 무명 치마 같은 꽃잎.길섶에 무리지어 피어있는들꽃. 지천에 뒹구는 돌덩이, 흙덩이만큼그렇게 온 산을 메우고 있건마는, 오히려우리 누나 고운 미소 같은 꽃이여.누구나 탐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기에더욱이, 애절한아름다움이여. 고이 생명이 침전해 있는 동안모든 웃음과 울음 캐어 주는영원히 시들지 않는 샘처럼생명력이 충일해 있는 이 들꽃.사랑보다 미움이 많았던 일월들이괴롭히며얼마나 많.. 2024. 11. 25. [내재율 제3집] 권혜경(86) - 길 길 권혜경(86) 미풍이나의 뺨을 스치옵니다. 이제 막 움트는 어린 풀잎.투명한 이슬을 업은 채,영롱한 아침의 빛정갈한 아침의 정기를 비추옵니다. 길 옆에 아름드리 나무들옛날・옛적부터 이렇게서 있읍니다.머언 교회의 종소리유유히 아침을 깨뜨립니다. 그리고, 나 이제걷고있읍니다.어머니가 걷던할머니가 걷던하이얀 모시 적삼 길을. 2024. 11. 22. 이전 1 2 3 4 ··· 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