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 및 감상/문예창작반(문창반)31 [내재율 제3집] 홍순오(86) -- 가을에 가을에 홍순오(86) 활대 휘저으며음표 하나씩 툭툭 터뜨리고언덕 넘어가는 소리아직 열기로 남은 가슴만은 함께 보내지 말아야지. 온해[百日]는 길었지만북향 가라 가라애처로운 손짓에도모질게 남은 날기짓 어제는 왜이유없는 떨림으로 휘파람도 불며오지않을 사람을기다려야 했던가. 눈을 살짝 감으면글썽이는 눈물마저 몰고다니는 오후시려오기 전채곡채곡 쌓아두는 가을소리. *날기짓 - 날갯짓의 오기인 듯. 2024. 11. 21. [내재율 제3집] 홍순오(86) -- 거리에서 거리에서 홍순오(86) 지금쯤은흰 페인트로 덧칠된 이 도시를태양이 작열할 터인데.콩알만한 푸르름이 그리워어설픈 몸짓으로 거리에 서면빨강, 파랑 구별없이질주하는 온갖 차량들.두 사람 굳은 악수춘향전 한 대목으로 피어오르는 고속터미널.떨어져 있으면 눈물이고 이별일지라도오늘은 웃음이고 사랑이자.시월 플라타너스 잎처럼 떠다니는조각난 노트장누구 집 처녀가 밤새 써놓고 아침이면보내지 못한 사연일까내가 받아줄까.찡그리던 하늘은 마침내 폭탄을 내리뿌리고아직 미완으로 남은 책상 구석 고이 간직한시 한편을 채워 줄 시어 인양단 하나의 폭탄도 빼지않고 온몸으로 받아들이는방패하나 가지지 않은 여름 거리엔내일 아침이면 수평너머로 부터파닥파닥 흰 날개를 저으며 올 한줄 시를 기다리는사람 사람들. 2024. 11. 20. [내재율 제3집] 어머니 -- 홍순오(86) 호롱불 아래서 늘한 뜸 두 뜸 바늘을 뜨고 계셨다. 줄지어 빈 가슴으로 달려오는부엉이 울음소리한 줌 눈물을 지워 보내시고도 산맥 너머까지울려퍼질종매의 아픔을 하나도 빼지 않고알고 계셨다. 사람들은 빛을 찾아 헤매었지만어둠만 주섬주섬 주워들고 옷을 짓고 계셨다. 2024. 11. 17. [내재율 제3집] 발간사 -- 오규희 (85) 여름 내 비에 젖은 나뭇잎처럼 아스팔트에 붙어있던 세포들이 하나, 둘씩 고개들어 숨을 쉰다. 파릿한 새벽 공기가 가슴속에 파문을 만들어 온몸에 번져나가는 것은 가을을 바라는 우리 그리움의 걸신이 너무 간절했기 때문일까? 정수리를 쪼아대는 햇빛 아래서 우리의 무기력함이 너무 처절했기 때문일까. 지리한 그림자를 끌며 밀려가는 여름의 등 뒤에서 우리는 지치고 무거운 무릎을 애써 피며 일어나려고 발버둥쳤다. 비틀거림 속에서도 하늘을 우러르는 나무가 되려 했고 서로 모여 숲이 되기를 원했다. 응집력을 가지기보다는 콩알들이 되려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 안타까와 육체를 알콜로 마비시켜도 정신은 먼 하늘 위에서 마주치지 못하는 구름이 되었던 아픈 기억을 더듬게 되지만, 마음의 반은 뒤춤에 숨기고 반만을 드러내는 것이 어.. 2024. 11. 17. 이전 1 2 3 4 5 ··· 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