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청도, 울산, 창원, 통영, 그리고 거제 2박 3일 간의 나들이(210622-24)[둘째 날 1]

길철현 2021. 6. 27. 10:41

(문득 차도, 내비게이션도 없었고, 카메라도 들지 않고 했던 30년 전쯤의 여행들이 떠오른다. 수첩에 한 메모와 기억에만 의존해서 여행기를 적었던 때, 지금과 그 때의 차이.) 

 

전날 열두 시가 다 되어서 잠이 들었고, 그 전날도 충분히 자지 못했음에도, 마음이 들떠서일까, 아니면 베개가 다소 높았기 때문일까(숙박시설의 베개는 대체로 높은 경향이 있다. 숙면을 위해서는 베개를 가지고 다니는 것이 좋을 듯) 일찍 잠이 깨고 말았다. 좀 피곤하더라도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할 것 아닌가? 

 

잘 모르고 있었지만 1994년을 전후하여 우리나라의 행정구역에 개편이 있었는데, 이 당시 개편의 가장 큰 특징은 시와 군이 합쳐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어릴 적부터 시와 군은 분리된 것으로 배웠기 때문에 27년이나 지났음에도 아직도 이 행정구역 개편이 어색하다). 통영시도 통영군과 충무시가 합쳐져서 새롭게 탄생한 행정구역이다. 충무 김밥으로 유명한 충무시는 중학교 수학여행 때 처음 찾았다. 그 당시 해저터널과 한산도 제승당을 방문했던 기억이 난다. 그게 41년 전의 일이라니! 그리고, 2014년에 가족들과 함께 통영을 찾았을 때는 배탈 설사와 추위로 여행을 제대로 즐기지는 못했으나, 강구안의 한 식당에서 조카들이 회를 맛있게 먹은 것과, 거제도의 해금강, 외도를 찾은 기억이 난다. 2년 뒤에 다시 한 번 가족들과 통영을 찾아 미륵도의 케이블카를 타고 미륵봉에 올라 주변의 섬과 바다를 조망한 것도 떠오른다.

2016년 2월 9일 경

통영하면 또 떠오르는 것이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이다. 통영을 배경으로 남녀 관계를 코믹하게 풀어낸 흥미로운 작품이다. 여행을 떠날 때 목적지를 거제도로 삼았기 때문에 통영은 거쳐 가는 곳이 되고 말았고, 영화를 본 지도 오래 되어서 잘 기억이 나지 않아서, 이 참에 다시 한 번 보았다. 영화에서는 강구안이라는 항구를 중심으로 여러 가지 사건들이 벌어지는데 어쨌거나 기회가 닿는다면 통영을 다시 찾고, 영화 속 문소리의 집 앞에서 바다를 한 번 바라다 보고 싶다. 

 

글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이런저런 생각들을 적어 나가고 있는데 이제 그만 여행기 자체에 집중해야 할 듯하다. 

 

좀 더 자야한다는 생각을 누르고 무작정 차를 몰고 나아가다보니 도로 바닥에 [이순신 공원]을 안내하는 표지가 있어서 일단 공원으로 향했다. 차로 올라갈 수 있는 구간은 얼마되지 않아서 [통영 기상대] 옆에다 차를 주차해 두고 걸어올라가려다가 꽤 많이 걸어야 할 듯해서 돌아서 나오고 말았다(근처에 [청마문학관]이 있었지만 이 때가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라 아직 문을 열지 않았을 터였다. 그런데, 지도를 보니 유치환 생가도 바로 옆에 있다. 나는 거제의 둔덕면에서 [유치환기념관]과 생가를 보았기에 어찌된 연유인지 궁금증이 생겼는데 이 부분은 나중에 따로 기술하도록 하겠다).

통영기상대 부근에서 본 통영 앞바다

통영해안로를 따라 달리다가 바다가 보이자 화삼리 쯤에서 샛길로 들어섰다.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는데 저수지들이 눈에 들어왔다. 망망대해 바로 옆의 저수지는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하고 그래서 이름도 없었다. 저수지 매니아지만 나도 그냥 패스할 수밖에 없었다.

화삼리 골목길의 이 개는 짖지도 않고 지나가는 내 차를 무심하게 쳐다보기만 했다 

나는 용남해안로를 따라 바다를 보면서 계속 달렸는데, 동암항에 이르자 길이 좁아졌고, 굴 가공 공장들이 늘어서 있었다. 잘게 부순 굴 껍질이 산처럼 쌓인 광경은 나에게는 신기하게 다가왔다.

좀 더 나아가니 막다른 길이라 돌아나올 수밖에 없었다. 안내판에 [소설가 김용익 묘소가는 길]이라고 나와서 죽은 소설가 중에서 내가 모르는 사람이라면 유명 작가는 아니라고 생각을 했지만, 그래도 궁금해서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니 미국에서 주로 영어로 작품을 발표한 분이었다. 이번에 [하하하]를 보니까 [향토역사관]에도 이 분의 이름과 사진이 나와 있었다. 

통영에서 너무 지체하다가는 자칫 주 목적지인 거제도를 제대로 못 볼 수도 있다는 생각에 14번 국도를 타고 거제 방향으로 나아가다 보니까, 원평소류지가 눈에 들어왔다. 국도 바로 옆에 위치한 이 저수지는 못 주변에 풀이 무성하고, 못에도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무튀튀한 것이 덮고 있어서 볼품이 없었다.  

 

거제도에 들어가는 방편으로 나는 이전에 몇 번 이용한 신거제대교 대신에 거제대교를 타고 들어가 거기서 거제도 여행을 시작할 생각이었다. 서쪽 해안에서 출발해서 거제도를 한 바퀴 쭉 돌다가 관심이 가는 곳들을 찾아볼 예정이었다. 그런데 거제대교를 건너기 전 해간도라는 작은 섬이 다리로 연결이 된 것을 내비로 확인하고는 그 섬에도 다녀오기로 했다. 해간도는 물론이고 해간도로 가는 해안 도로에도 예쁜 펜션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어서 이곳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바다관광지 중의 하나라는 것을 실감했다. 이곳 뿐만 아니라 거제도에도 곳곳에 펜션들과 멋지게 지은 주택들이 있어서 그것들을 사진에 담느라 분주했다.

[거제도 행정구역도]

 

거제대교를 건넌 시각은 대략 8시 반, 배가 출출하기도 해서 편의점에 들어가 김밥, 샌드위치, 바나나 우유를 구입한 다음 덕포해안길이 끝나는 방파제에서 바다와 통영쪽을 바라보면서 끼니를 때웠다. 해안도로는 계속 이어지는 경우보다는 돌아나와야 하는 경우가 많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여유를 가지고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곳을 찾아볼 심산이었다. 해안도로에서 벗어나 1018번 지방도로를 타려고 했는데, 길쭉한 저수지 하나가 나에게 유혹의 손길을 보내고 있었다. 거제도까지 와서 저수지를 찾아다닐 것인가, 하는 생각도 없진 않았으나 맛뵈기로 일단 이곳은 찾아가보기로 했다. 소로를 따라 올라가는데 길 한복판에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경적을 울리자 농막에 있던 분이 나와서 차를 빼주었는데 그 길로는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모양이었다.

 

황록색의 물빛을 띤 광리소류지는 저주지 자체는 물론 주변 또한 깔끔하게 정리가 잘 되어 있어서 기분을 상쾌하게 했다. 거제도에서의 첫 저수지와의 만남은 산뜻했고, 이후 거의 모든 저수지들이 내 기분을 상쾌하게 했다. 거제도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 째로 큰 섬이자 해안의 관광지들로 유명한 데 비해 호수들은 알려져 있지 않은데 이 호수들도 좀 알릴 필요가 있을 듯했다. 그래서, '거제 호수 5선'이라는 제목으로 따로 글을 써볼 작정이다. 저수지가 이렇게 깨끗한 것은 관리를 적절하게 한 것과 바로 옆에 바다가 있어서 저수지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이리라(유료 낚시터가 깨끗한 것을 보면 관리의 중요성이 더욱 큰 듯하다).

 

이 섬이 고래섬인지는 불분명하다

 

학산리 쯤에서 본 통영 

흥미로운 이름을 지닌 마을들도 많은데 아사마을도 그런 곳 중의 하나리라(지난번 사량도에 갔을 때는 먹방마을을 만나기도 했다. 아사마을을 지나고 다음 날 아침에는 망치리에서 아침 식사를 했다). 이 마을 이름들도 다 그 유래가 있고 이야기가 있고 사연이 있으리라. 1018번 도로를 따라 계속 달리는데 둔덕면 사무소를 지나자 [청마 기념관]을 알리는 안내판이 나왔다. 약간 망설이다가 그래도 좋아하는 시인이라 한 번 둘러보기로 하고 차를 왼쪽으로 돌렸는데, 바위로 이루어진 봉우리들이 먼저 내 눈길을 끌었다. 내비를 보니 산방산이라고 나왔다. 전체가 온통 바위로 이루어진 제주도의 산방산이 절경이지만(하지만 오를 수가 없다) 거제의 이 산방산도 나름 멋있는 산이었고, 이 산방산은 한참 동안은 해안도로를 달리는 나에게 하나의 지표 역할을 했다.

 

[청마 기념관] 옆에는 오래된 팽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고, 또 주차장엔 나이 드신 남자 분이 운동 기구엔가 걸터앉아 있었는데, 내가 구경을 마치고 나올 때 까지도 앉아 있었다. [청마 기념관]에 내 눈길을 확 사로잡는 별다른 것은 없었지만, 한 때 그의 시를 암송하기도 한 나로서는 감회가 깊었다. 기념관 옆에는 생가를 초가로 복원해 놓기도 했다.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그렇다면 왜 유치환의 생가는 통영에도 있고, 거제에도 있는가? 나는 생가가 두 곳이나 되는 것을 보고 순간적으로 생가가 살던 집을 가리키는 것인가, 하는 착각을 하기도 했다. 생가가 두 곳이라는 것은 어쨌든 성립할 수 없는 것이므로 하나는 분명 잘못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옛날 일이라 문서가 제대로 남아 있지는 않지만 "1908년 거제시 둔덕면에서 출생해 1910년 통영으로 이사한 것"(토털로그 블로그)이 학계의 정설인 듯하다. 다만 청마 출생 당시는 거제가 통영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유치환이 통영 출신이라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긴 하지만 통영에 있는 유치환의 생가는 그가 출생한 곳이 아니라,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기 때문에 명칭을 바꾸는 것이 맞을 듯하다(주1). 그리고, 유치환 또한 그의 형 유치진에 이어 친일 논란으로 다소 곤혹을 치르고 있는 듯한데, 일제 강점이라는 아픈 역사는 아직도 그 상흔을 남기고 있다(방하리라는 명칭을 가진 곳은 전국에 세 군데 정도 있다. 이곳 거제시 둔덕면 방하리, 그리고 경북 의성군 단촌면 방하리, 강원 춘천시 남산면 방하리, 이렇게 세 곳이다. 나는 예전에 북한강 남이섬 옆의 방하리를 찾은 적이 있는데, 그 마을의 이름을 빙하리로 잘못 읽고, 당시 내 마음 처음 꽁꽁 얼어붙은 그런 곳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어두운 내 마음을 달랠 결 산길이라도 좀 걷고 싶었으나 내가 들어간 곳은 길이 이내 끊어졌고, 마을에서는 개짖는 소리만 요란했다). 

 

거제도를 따라 달리고 있지만 내가 어디 쯤에 있는지 또 바다 건너편으로 보이는 것은 통영인지 아니면 섬인지 섬이라면 무슨 섬인지 궁금증이 일어서 내비의 축적을 조절하여 확인을 해보니 화도와 한산도였다. 한산도는 내 생각과는 달리 상당히 큰 섬이었다. 하둔리에서 1018번 도로를 벗어나 해안으로 들어서자 어구리가 나왔고 어구항에는 한산도행 카페리도 있었다. 한산도로 건너갈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으나 카페리가 한산도로 막 출발하는 것을 보고는 한 시간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을 접었다(이 때가 10시 1분 경이었다). 어구리에서 법동리로 이어지는 해안도로를 따라 달렸던 것 같은데 피로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수국이 도로 양옆을 장식하고 있는 가운데 차를 몰아나가자 멀리 섬을 연결하는 다리가 하나 보였다. 그리고 보니 여기도 그 이름이 이상야릇한 '산달도'이다. 나는 일단 차를 몰고 다리를 건넜다. 하지만 건너자 말자 공사중이라 어디로 갈지 헛갈렸다. 좌측이 막힌 듯해 우측으로 가려하니 통행 불가라고 해 좌측으로 차를 돌렸다. 차로 섬을 한 바퀴 돌 생각이었는데 졸음이 쏟아졌다. 어디 한적한 곳으로 들어가 잠시 눈을 붙이고 싶었으나 일주 도로 외에는 도로가 잘 보이지 않고, 차도 별로 다니지 않아, 중간에 좀 널찍하고 그늘진 곳에 차를 주차하고 눈을 감았다. 하지만 잘 다니지 않던 차들이 주차를 하자 이내 한 대 두 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지나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십 분 정도 누워있던 나는 자는 것을 포기하고 섬을 한 바퀴 돌았는데 산후(산달 후?)항에 이르자 공사 때문에 더 나아갈 수가 없어서 다시 돌아나와야 했다. 별다른 구경거리는 없었으나 그래도 한 번 들렀다는 것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이 때에도 한산도로 가볼까 하는 생각이 다시 한 번 일어났으나, 12시는 점심 시간이라 출발하는 배가 없었다. 

 

 

 

 

주1) 박광수가 [문화일보] 2019년 5월 10일자 기사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시인의 출생지인 경남 거제시 둔덕면 방하리 507의 5번지의 옛 지번(地番)은 경남 통영군 통영면 동부동 5통 16호이다. 학계(學界)에서는 이미 여러 연구와 조사를 거쳐 그 이전부터 ‘거제도 둔덕골’을 시인의 출생지로 인정했으니, 애당초부터 학술 논쟁도 아닌 법정 다툼으로 비화할 일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유족의 증언과 확인도 있었으니 새삼 논란이 될 만한 일도 아니었다.

유치환이 자신이 ‘자랐던 집’을 “한반도의 남쪽 끝머리에 있는 바닷가 통영(지금의 충무시)”이라고 말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세 살 무렵인 유아 시절에 거제도를 떠났고 상대적으로 성장한 곳에 대한 기억과 애착이 더 컸기 때문이리라.(수필집 ‘구름에 그린다’에 수록된 ‘나의 시 나의 인생’)

 

 

[참고]

유치환의 유족들과 거제는 1908년 거제시 둔덕면에서 출생해 1910년 통영으로 이사한 것으로 거제 출생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게다가 청마의 출생 당시는 거제가 통영에 포함되어 있었죠. 이와 관련하여 통영시를 상대로 "통영시 청마문학관 안내판에 적힌 부친 출생지를 삭제해달라"며 소송을 걸기도 했습니다. 

 

[유치환 생가 논란]

 "청마 유치환의 출생지가 거제시 둔덕면이라고 단정할 공적 기록이나 객관적 근거가 없다." "거제냐 통영이냐"를 놓고 유족들과 통영시 사이에 벌어졌던 청마 유치환의 출생지 논란이 통영시의 승리로 일단락됐다.

서울지법 민사합의27부(재판장 고의환 부장판사)는 16일 유모씨(74) 등 유치환의 딸 3명이 "통영시의 청마문학관 안내판 문구 가운데 "청마가 내가 태어난 곳은 통영이라고 밝혔다"를 삭제하고 인격권 등을 침해한 대가로 3500만원을 지급하라"며 통영시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1908년에 태어난 청마가 1910년부터 통영시 동호동에 거주했던 것은 분명하나 그 이전의 행적이나 출생지를 알 수 있는 공적인 기록은 없다"며 "유족과 친척들의 증언이나 시인과 평론가들의 의견만으로 청마의 출생지가 거제시 둔덕면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청마가 자작시 해설집 "구름에 그린다"에서 스스로 통영시에서 출생했다고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고 그밖의 여러 기록에서도 청마가 통영시에서 태어나 자란 것으로 기술돼 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또 "청마가 스스로 통영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실을 떳떳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청마의 출생지가 통영시가 아니라 거제시라고 하더라도 청마의 인격권을 침해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법원은 지난 4월 청마의 유족들이 "청마문학관의 안내판에 기재된 출생지 표시 부분을 삭제하라"며 통영시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1908년 통영시 태평동 552번지에서 출생"이라고 된 부분을 "1908년 출생, 유년시절을 통영에서 보냄"이라는 취지로 수정하라"고 강제조정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통영시는 이 결정에 이의를 제기, "청마는 자작시 해설집에서 내가 난 곳은 통영이라 밝혔다"라는 부분을 안내판에 집어넣었고 유족들은 다시 소송을 제기했다.

통영시와 거제시는 2000년 통영시 정량동과 거제시 둔덕면에 각각 청마문학관을 짓고 서로 청마가 자기 행정구역에서 출생했다고 주장해왔다.

 

서울)청마 유치환 출생지 논란 통영시 승리로 일단락

입력 2003. 07. 16. 10:47 수정 2003. 07. 16. 10:47 (뉴시스/ 이정환)

 

 

 

(2013년엔가 통영을 찾은 것 조사) (2014년) 대명코노 소노캄 2월(해금강, 외도) . /16년 2월 9일 전후 (제부) [제부가 준 삼성 카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