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청도, 울산, 창원, 통영, 그리고 거제 2박 3일 간의 나들이(210622-24)[둘째 날 3]

길철현 2021. 7. 5. 22:53

그럴 계획은 아니었지만 거제의 저수지들이 너무나 예뻐 나의 여정은 또 다시 저수지 순례가 되고 있었다. 1018번 도로를 버리고 노랑과 분홍 등 원색 건물들이 돋보이는 동부면의 중심지를 지나 차는 동부저수지로 향하고 있었다.

동부저수지(이번에는 동명이호다)는 몇 달 전쯤인가 인터넷에서 한 번 접했던 기억이 있다. 예전에 한 번 찾은 적이 있는 충남 서천군의 동부저수지(봉선저수지)를 검색했다가 거제도에도 동명의 저수지가 있는데, 이 저수지가 크고 아름답다고 나와 있어서, 이 번 거제 여행에서 이곳만은 꼭 찾아보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오르막을 오르자 내 눈에 들어온 동부저수지는 생각만큼 크지는 않았으나 오리배가 떠다니고 그 끝이 산에 가려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 저수지였다. 물이 맑은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었다. S자 모양의 이 저수지는 어떻게 보면 초평저수지를 약간 줄여놓은 그런 느낌이기도 했다. 정신 없이 사진을 몇 장 찍고 데크 길을 좀 걸으려다가 날이 무덥고 해서 구천호로 발길을 옮겼다. 

 

1987년 준공된 구천저수지는 거제의 식수원 역할을 하는 곳이다. 상수원 보호구역이 흔히 그러하듯 물은 맑고 깨끗하지만 철망 펜스 때문에 사진을 찍기는 쉽지 않고, 둘레길 같은 것도 조성이 되어 있지 않았다. 상당한 규모의 이 호수를 차로 한 바퀴 돌면서 두어 군데 사진에 담아 보았다. 상류에 암벽이 멋진 곳이 눈에 들어왔지만 차를 세울 곳이 마땅치 않아 그냥 지나칠 수 밖에 없었고, 출입문이 열려 있는 곳에는 "무단 출입시 고발 조치함"이라는 무시무시한 경고문이 적혀 있었다.

 

구천저수지를 지나 1018번 도로를 타고 달리는데 [문동폭포]를 알리는 이정표가 있어서 호기심을 자극했다. 나는 그 폭포가 인근에 있는 폭포인가 하고 그냥 좀 더 달려나가다가, 다시 한 번 이 이정표를 마주하고는 이 폭포도 한 번 찾아가보기로 했다. 거리가 가까워짐에 따라 폭포 아래에 저수지도 하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어 일석이조였다. 문동저수지는 만수 면적이 9헥타르 정도 되는 그러니까 거제저수지 정도 크기의 제법 규모가 있는 저수지로 물 빛깔이 아름답고 무엇보다 저수지 상부 언덕 위에 있는 전원주택들도 예뻤다(이 주택들이 들어서기 위해 나무들을 베어내야 했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리고, 저수지 중간 쯤에 위치한 그 이름도 고풍스러운 호반식당이 이 저수지의 풍광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이 식당 좌측 비석에는 호반상영이라는 말이 적혀 있는데, 이 '상영' 어려운 단어는 '술을 마시면서 시가를 읊거나 흥겹게 노래하는 것'이라고 한다. 

 

거제의 유일한 폭포인 문동폭포는 문동저수지 바로 위쪽에 있었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십 분 남짓 계곡을 구경하며 잘 닦여진 숲속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니 20여미터 높이의 암벽을 타고 폭포가 흘러내린다. 직폭이 아니고,  비가 많이 오지 않아 수량도 별로 없어 특별히 절경이라고 할 순 없었으나 거제에서 유일한 폭포를 찾았다는 것에 방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돌아나오는 길에 문동저수지를 원경으로 카메라에 한 번 담고, 또 전원주택단지에 올라가 사진을 찍으려고 골목으로 들어갔더니 차가 한 대 이미 주차해 있어서 들어가기가 애매해 돌아나오는데 좀 애를 먹었다. 내리막에서 사진을 찍으려는데 뒤에서 차가 나와서 급하게 몇 장 찍고 자리를 떴다(폭포 관련 사진은 블로그 내 [문동폭포]를 찾아볼 것). 

 

저수지가 자꾸 나를 끌어 당겨(그래도 문동저수지 옆 이름 없는 소류지는 패스했다) 다음으로 양정저수지로 향했다. 좁은 도로를 따라 그곳으로 향하는데 눈앞에 [윤슬유치원]이 나타났다. 윤슬, 물 위에 햇빛이나 달빛이 비치어 반짝이는 것을 가리키는 이 단어가 따로 있는 줄 몰랐는데, 올해 4월 옥정호에 들렀다가 안내판에 적힌 글귀를 보고 그제서야 알 게 되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풍광 중의 하나를 한 단어로 묶을 수 있다는 것이 주는 느낌은 사실 묘했다.

주변의 고층아파트 등이 거제 시내로 들어섰다는 걸 짐작하게 해주었는데, 사실 문동저수지나 문동폭포도 행정구역 상 거제시 문동동에 속했다. 그런데, 양정저수지는 거제에도 평범한 저수지가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거제 시내에 있는 이 저수지는 국도14호선이 그 위로 관통하고 있는데다 물도 그렇게 맑지 않아서 거제의 다른 저수지들과는 달리 큰 울림은 없었다.

 

차를 돌려 다시 동부면으로 돌아가서, 해안도로 일주를 이어나갈 생각이었다. 올 때는 미처 사진에 담지 못했지만 청사초롱마을 도로변에는 흥미로운 조각상들이 있어서 사진에 담아 보았다. 

동부저수지를 지날 때 이 저수지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 S자가 끝나는 곳에 위치한 제방쪽으로 향했다. 이 제방으로 가기 위해서는 낡은 다리를 건너야 했는데 통행금지 푯말이나 그런 것이 있지는 않았으나 좁고 다소 위험스러워 보여서 공터에 차를 주차하고 걸어서 올라갔다. 올라가는 길에 근처를 산책하는 부녀를 보았다. 아빠와 단 둘이 나들이를 나온 대여섯 살 가량의 여자 어린애의 머리 속에는 어떤 생각들이 지나고 있을까 궁금했는데, 자신처럼 작고 예쁜 가방을 맨 아이는 이내 피곤해졌는지 아빠에게 안아달라고 그랬던 듯하다. 

새로 만든 도로를 따라 제방으로 올라갈 수 있었으나, 나는 수풀 사이로 난 희미한 길을 좇아 제방을 곧바로 올라갔다. 뱀에 대한 두려움으로 신경을 다소 곤두 세워야 했고, 그건 내려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쪽은 찾는 사람이 없는지 제방에 풀이 무성했지만 물은 정말로 눈이 시리도록 깨끗했다. 푸른 하늘, 푸른 숲, 푸른 물 모두 다 푸르지만 다 다른 푸른 빛이다. 이 쪽도 새단장을 하고 있는데, 공사가 다 끝나 사람들의 발길이 좀 더 닿았으면. 내려오는 길에는 두 쌍의 남녀가 다리를 건너고 있어서 카메라에 담아 보려 했으나 이내 시야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다시 동부면 중심가를 지나 좌회전 1018번 지방도로로 갈아타고 해안 일주를 재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