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호수행

210727 저수지 탐방

길철현 2021. 7. 28. 08:19

동생이 내려와 있어 여유로운 날들이다. 날이 무덥고 코로나의 기세도 대단해 멀리 떠나지는 못하지만 나들이의 연속이다. 오늘의 목적지는 이창동 감독의 2018년도 영화 [버닝]의 무대였던 상천저수지(경남 거창군 위천면)로 잡았다. 그전에 큰 맘먹고 카메라를 새로 구입하기로 하고 산격동에 있는 [종합유통단지] 전자관으로 향했다. 하지만 내가 구입하기로 마음을 먹은 소니 RX100VII은 1층의 카메라 가게 어디에도 없었다. 요즈음 워낙 휴대폰의 카메라가 좋아져서 하이엔드 어쩌고 해도 똑딱이 카메라가 잘 나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의 경우 사진을 많이 찍기 때문에--그것도 차를 타고 이동 중에 찍는 경우가 많아--휴대폰은 여러 모로 불편해서 몇 번의 망설임 끝에 방문한 것인데, 구입한 지 5년이 되어 여러 가지 자잘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RX100IV를 좀 더 써야 할 운명인 모양이다. 

 

북대구IC로 향하다가 벌써 2시가 넘은 시각이라 먼저 서변동에서 민생고를 해결하기로 했다. 돈가스가 먹고 싶었는데 골목으로 들어서자마자, "돈가"라는 간판이 보여 운이 좋다고 생각했지만, 스자는 없는 고깃집이었다. 골목길을 돌면서 간판을 살펴보아도 돈가스 집은 눈에 띄지 않았고, 거기다 이곳은 변두리 지역임에도 주차할 공간도 만만치 않았다. 한참을 돌다가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울까 하다가 좀 외딴 골목으로 들어서자 메밀국수 하는 집이 보였고 주차 공간도 넉넉해, 요 며칠 국수를 너무 많이 먹어 그렇게 내키진 않았음에도, 메밀칼국수로 늦은 점심을 때웠다. 식당에는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손님들이 꽤 있었다.  

이창동의 [버닝]은 되풀이 해서 볼수록 이전에 보지 못했던 부분들이 드러나고, 작가가 말하는 바의 다층성 속에서 헤엄을 치는 재미가 쏠쏠한 작품이지만, 그와 함께 영화에 나오는 장소들도 나의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한다. 저수지 탐방이 나의 최애 취미 중 하나인 현재 이 영화에 나오는 저수지가 나에게 손가락을 뻗어 잡아당기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하리라. 영화 속에서 종수(유아인)는 연기처럼 사라지고만 고향 친구 해미(전종서)를 벤(스티븐 연)이 살해했다고 의심하고 그의 뒤를 추적하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벤은 나와 같은 취미인지 우두커니 서서 저수지를 바라본다. 

버닝

영화에 나온 이 저수지가 아름다워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니 영화의 배경이 되는 경기도 북부가 아닐까 하는 예상과는 달리 앞에서 밝힌 대로 대구에서 1시간 반 가량이면 도착할 수 있는 상천저수지였다. 북대구IC로 들어갔다가 금호JC에서 광주대구고속도로를 타고 거창IC에서 빠져나와 24번 국도를 타고 달리다(3번 국도와 중복되는 구간?) 우회전하여 37번 국도로 들어서니 마리면, 월화, 장풍 등 재미있는 이름을 지닌 곳들을 지나 위천면에서 좌회전을 했다. 이 길은 그러고 보니 거창의 명소인 수승대에 올 때 달렸던 길이었고, 위천면에서 직진해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수승대였다. 상천저수지 부근에 꽤 큰 저수지가 하나 내비에 떠 내려오는 길에 찾기로 했다. 

 

나를 먼저 맞은 것은 바위들이 꽤 멋진 금원산(1353m)이었다. 이 산은 이전에는 들어본 적이 없는 산인데 남쪽으로 기백산과 붙어 있으며 크게 보면 덕유산 줄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물론 정상 부분은 내가 서 있는 도로에서는 안 보였지만(저수지로 올라가니 정상부인지는 몰라도 산이 상당히 높아 보였다) 기백산과 함께 이 산도 언젠가 한 번 기회가 닿는다면 올라가보고 싶다. 

 

(노환으로 고생하는 어머니를 돌보는 것 외에 내 삶은 여행기 등 글을 쓰고, 저수지 탐방이나 등산 등 여행을 즐기고, 또 꾸준히 탁구를 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여행기를 쓰는 작업이 이상하게도 진도를 못 나가고 있는데 힘차게 밀고 나가야 할 것이다.) 

멀리 저수지 제방이 보이기 시작했다. 

카카오맵과 네이버지도 모두 저수지로 가는 길이 두 개가 있는 것으로 나오는데 일반적으로는 내가 간 길을 따라가지 않을까 한다. 카카오맵에는 또 이상하게도 저수지 물 위로 길이 나 있는 것처럼 표시하고 있는데 이것은 예전의 모습인지는 몰라도 현재는 전혀 그렇지 않다. 어쨌거나 영화에서 벤은 포르셰를 타고 종수는 봉고 트럭으로 그 뒤를 쫓다가, 갑자기 종수가 앞서 가게 되어 농기계 옆 빈 곳에 자신의 차를 숨기기도 한다. 그런데, 저수지에 다 와갈 무렵 도로는 비포장으로 바뀌었고 도로 사정도 차를 끌고 올라갔다가는 차에 생채기를 낼 듯해 공터에 차를 세우고 걸어 올라갔다. 

점터 채석장, 지금은 폐쇄된 상태이다.

이창동 감독이 어떻게 이 저수지를 영화의 배경으로 삼게 되었는지는 직접 물어보지 않은 다음에야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만수 면적이 10헥타르 정도인 이 저수지는 물은 좀 빠진 상태이지만 물이 정말로 맑고, 주변 산세와 잘 어울려 마음의 평온을 가져다 주었다. 내가 찾았을 때는 제방에 누수 탐지선을 매립하는 공사가 한창이었는데, 한낮의 더위 때문인지 작업을 하는 분은 한 분도 보이지 않았다.  

 

상천저수지에서 나온 나는 규모가 좀 있는 서덕지와 덕거지(상천2저수지) 중 어느 곳을 먼저 찾는 것이 동선이 좋을까 고민하다가 덕거지부터 찾기로 하고 그곳으로 향했는데, 내비에 길이 제대로 표시되어 있지 않아 저수지가 매립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했다. 덕거지는 농촌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류지로 물 빛깔이 탁했다.

 

아래 다리를 건너 서덕지로 향했는데, 그 전에 서덕 공원에 있는 연못부터 들렀다. 

영화의 촬영지였다는 이 넓은 서덕 들판의 연초록빛이 눈을 시원하게 한다. 

그리고 좀 더 나아가자 서덕지이다. 상천저수지보다 조금 작은 이 서덕지도 관리를 조금만 더 잘한다면 상천저수지에 버금갈 정도로 괜찮은 저수지가 될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저녁에 탁구를 치려면 너무 늦지 않게 도착해야 해서 고령쪽의 저수지 하나를 확인하는 것으로 오늘의 여정을 마치기로 했다. 내비는 왔던 길로 돌아가라고 했지만 나는 위의 사진에 나오는 서덕 들판 중앙으로 난 농로를 달렸다. 다시 거창IC로 진입하여 차를 몰았는데 기름이 다 되었다. 거창(한)휴게소에서 기름을 넣으려고 주유소에 갔더니만 앞차가 너무 뒤쪽으로 차를 세운데다가 주유기의 줄이 짧아서 기름을 넣을 수가 없어서, 앞차가 기름을 다 넣고 나간 후에야 기름을 넣을 수 있었다. 앞차의 잘못도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줄을 너무 짧게 한 것이 문제라고 봐야 할 듯하다. 어쨌거나 좀 황당했다.

 

휴게소에서 나오면서 내비에 목적지를 쳐야 했는데 내가 가고자 하는 저수지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아서 그 저수지 위쪽에 공장(성윤)이 하나 있는 것을 떠올리고는 대충 마음에 드는 이름을 하나 골랐다. 그런데 나중에 도착하고 보니 운 좋게도 그 저수지 위에 있는 공장이었다.  

 

고령IC를 빠져나온 다음 26번 국도를 타고 달리다 기산교차로에서 나오니 수자골못이 바로 위쪽에 있어 차를 몰고 가보았으나 못이 있어야 할 곳에는 공장이 들어서 있고 개만 요란하게 짖어대었다. 공장 뒤로 난 길을 따라 좀 더 걸어가 보았지만 저수지는 보이지 않는 것이 저수지를 매립하고 이 공장이 들어선 듯했다. 

 

그 다음 기산지를 찾아 내가 기산지로 알고 있는 저수지가 기산지가 맞는 지를 확인했다. 네이버지도에서는 윗저수지에 향기지라는 이름을 부여하고 있었으며, 기산지에서는 저 멀리 가야산이 그 자태를 드러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날도 이미 많이 어두워지고 해서 성산로를 달려 마지막으로 기족리의 안동골(안등소류지)을 찾았다. 예전부터 한 번 찾고 싶었던 곳인데 양어장이라 낚시금지라는 표지판과 함께 수초가 가득 덮혀 있는 소류지였다.  

동고령IC로 진입한 다음 화원옥포IC로 나와, [돈까스클럽]에서 스테이크덮밥으로 저녁을 때우고 탁구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