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 이야기/고흐 시편
고호의 귀 -- 원재길
길철현
2022. 3. 16. 07:08
물토을 메고 파레트를 흔들며 그림 속으로
들판 한가운데로 걸어간다
불이 붙고 있다
구름은 공기에 취해 팔월의 햇살에 취해
어지럽게 거푸 공중제비를 넘고
바람은 불길을 빨아들인다 부드럽게
들판이 끓는다
건초더미가 끓는다
붉은 차양 지붕이 끓고
나무의 물관 속에 든 물이 끓고
황토길과 구릉이 어지러워
날 붙들어 줘 신음하며 끓는다
가슴 살 그을린 여자들을 이끌고 고갱이
출애급! 외치며 달아난다 끝났어
너하고는, 너의 혼돈과는 사, 상종 않는다
어제의 벗이여 안녕 그는
들판을 더욱 불붙게 만들고
붓을 휘돌리고 마침내
면도날로 마구 긋는다 구름은
활딱 깨어나려다 치명상을 입는다
흰 가루를 게운다
나무는 토막으로 부러져서
끓는 물을 땅 위에 쏟고
건초더미는 무너져서 전속력으로 굴러가고
황토길은 속이 뒤집히고
구릉은 주저앉는다
그는 말했다 뒤틀림으로써
중심을 잡는다
칼로 도려냄으로써 내 혼백엔
차가운 살이 돋는다
그림 밖으로 달려 나오다가
나는 보았다
흙 속에 피범벅으로 묻힌 채로
정과 열의 가파른 끓는 가쁜 숨소리를 온
청력을 다해 듣고 있는
그의 달아난 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