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 이야기/고흐 시편
여름 -- 노란 밀밭과 사이프러스 나무, 고호 1889년 -- 이제하
길철현
2022. 3. 16. 09:00
피크닉 배낭에 잔뜩 도구들을 챙겨 넣고서
들로 나갔다.
대형 나일론 망사채로 바람을 걸르고,
대기 네 귀퉁이에 못을 박고,
땅을 파고,
민주니 공산이니 아이비엠이니 하는
사상들을 우선,
한 구덩이에 쓸어넣고 태워버렸다.
<대낮의 불꽃>은 청렬하다.
점심은 통멧돼지 구이로 해얀다고
어린 딸은 끝내 보채기 시작했으나
우리는 파종부터 했다. 뿌리를 내리기만 하면
<잠자는 공주의 숲>보다 더 삼엄한, 저
성채를 단숨에
자욱한 가시로 휘덮어 버리는
타조 알만큼 굵디굵은 그런 이상한
선인장들의 씨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