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이저수지 부근(둘째 날 4)(함양, 전주, 구이저수지, 금산사)[20220402-03]
달콤한 낮잠을 즐기고 나니 다시 한 번 허기가 몰려왔다. 나는 갈비탕이나 먹을까 하고 다시 한 번 모악산관광단지로 향했다. 애매한 시간이라 식당에는 아무도 없었고, 메뉴판을 보니 우족탕이 있어서 순간적으로 난 꼬리곰탕과 혼돈해 그것을 시켰다. 많이 걸은 뒤라 공복감도 상당해 특으로 시켰다. 음식이 나온 뒤에야 난 나의 착각을 알아차렸고, 우족탕은 식감이 내 취향은 아니었다. 거기다 특으로 시킨 것도 무리수였다. 양이 너무 많았다. 그래도 남길 수는 없어서 끈적끈적한 덩어리를 와구와구 씹으면서 함께 시킨 콜라를 비웠다.
오기 전 지도에서 살펴본 바로는 구이저수지와 모악산 사이에 소류지들이 여럿 있었다. 온 김에 이 저수지들도 찾아보기로 했다. 그 첫 번째 저수지가 구이저수지를 찾기 전에 먼저 들른 공수제였다. 두 번째로 찾은 소류지는 [체알미지](치알방죽)였다. 건물 뒤에 숨어 있어서 사라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그 다음 [한자실지](한재실소류지)는 도로에서 곧바로 들어가려다가 돌아나와야만 했다. 제방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개와 거위를 기르는 곳이 있어서 그 옆 높은 곳으로 가는데 둘 다 요란하게 짖어(?)대었다. 제방은 사로 때문에 건너가기가 어려웠다. 항가신기길에 차를 세워 두고 무덤 옆으로 해서 제방으로 접근했다.
그 다음 [무지지](당내소류지)로 향했는데, 비포장 구간도 있고, 한 곳에서는 차가 도로에 서 있어서 27번 국도 반대쪽으로 건너갔다가 다시 넘어와야 했다. 이 소류지에는 낚시객들이 몇 명 눈에 띄었다.
교회 옆에 위치한 [잿들지](골아실방축)는 부근의 소류지들 중 물빛이 가장 좋았다. 하지만 사로 때문에 제방에 올라가지 못하고 옆에서 사진을 찍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전주예술중고등학교 부근에 있는 [뒷동지]는 너무 작은 데다가 들어가는 곳도 찾기 힘들어 그냥 지나쳤다. [고라실지](웃들방축)는 내비상에는 두 개의 저수지가 있는 것으로 나와 있으나 하나는 매립되었는지 하나만 보였다. 아래나 옆에서는 접근이 어렵고 주차장이 있는 윗부분에서 내려오니 저수지로 갈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상학지](상학방죽)도 매립 직전의 상태인 듯 물이 얼마 남아있지 않았다.
이 소류지들은 별다른 특색이 있거나 이목을 끌지는 않았으나 [상학지]를 제외하고는 이름들이 하나같이 고유한 우리 명칭인지 이상야릇하다. 그 유래를 살펴보면 다 뜻이 있겠지만 찾을 길이 없다.
상학지를 끝으로 구이면을 뒤로 하고 [금산사]로 향했다. [금산사]는 호남고속도로(25번)를 타고 지날 때마다 한 번 들러보고 싶었으나 기회가 닿지 않아서 이번에 한 번 찾아가보기로 한 것이었다. 바쁜 일이 없으니 하루 정도 더 묵으며 김제의 벽골제나 능제 등을 찾을까 아니면 집으로 돌아갈까 내 마음은 흔들리고 있었다. 27번 국도를 타고 북으로, 그 다음21번 국도, 712번 지방도를 타고 금산사로 향하니 중간에 [귀신사]가 나왔다(모악산 남쪽으로 돌아서 갔더라도 크게 시간 차이는 나지 않을 정도로 구이저수지와 금산사는 모악산의 중간 부분 반대편 거의 같은 위도에 있었다). 이 웃기는 이름은 예상대로 '믿음으로 돌아간다'는 歸信이었다. 이보다 앞서 712번 지방도로 들어섰을 때에는 '독배'라는 마을도 지났는데, 이 마을 이름은 부근의 독배산에서 왔다고 한다. 독배라는 말은 정확한 유래를 찾기는 어려우나 얼핏 본 바에 따르면 '(장)독을 닮은 바위'를 뜻한다. 사람들이 예전에 지명이나 기관 명칭을 정할 때 그 뜻에 치중한 나머지 음가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더 잘 알려진 다른 어휘와 충돌을 일으키는 경우를 여행하다보면 종종 보게 된다. 유홍준도 이 현상에 주목을 해 자신의 책에 소개한 바 있고, 그 중에서도 초등학교 이름 중 이상한 것을 따로 모은 부분은 큰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이번 여행에서도 나는 난산, 독배, 귀신이라는 세 특이한 이름을 만났다. 하지만 그 뜻을 풀어보면 다 나름 의미가 있다. 내 경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보성군에서 만난 천치 마을이다. 이 이름은 '하늘에 닿을 높은 고개'라는 의미지만 다른 뜻이 먼저 떠오르기 마련이다. 그리고, 진도에 갔을 때 안내판에서 본 인지/오류라는 지명도 실소를 자아내게 했다. 이 밖에도 행정구역이나 다른 이름과 합쳐져서 재미있는 이름이 되는 경우도 있다. 안하리(임실군 지사면), 마치리(완주군 상관면)가 그 예이다. 가보지는 못했지만 포항 대보리에 있는 저수지는 대보지가 되고 만다. 카카오맵과 네이버지도 모두 대보저수지라고 소개하고 있어 참사는 면했다고 해야할까?
종교에 대한 나의 요즈음의 생각은 스피노자의 말 '조직화된 종교란 실제로는 조직화된 사기 집단에 지나지 않는다'로 요약된다. 물론 이 말은 종교 자체가 아니라 종교적 시스템을 비판하는 것이지만, 시스템을 떠난 종교를 상정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 종교 일반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강하다. 그래도 기독교보다는 불교에 대한 반감이 강하지는 않은 편인데,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문화재 관람료'를 놓고 볼 때 그 내막에 복잡한 사정이 있다 하더라도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좀 극단적으로 비유를 하자면 극장 앞을 지나가려면 영화 관람료를 내야 한다는 식이라, 적어도 명칭만이라도 바꿔야 할 것이다(작년 8월에 희방사에 갔다가 시비가 붙은 적이 있다. 아직 글로 쓰지 못했는데 조만간 그때 여행기를 적으면서 한 번 더 되짚어 보아야겠다).
그렇긴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나는 전통 사찰이나 교회 건물들은 또 좋아하는 편이다. 특히 교회 건물들은 내 여행에 좋은 이정표 노릇을 하기도 하고 또 특색 있게 지은 건물들도 많아 관심이 많이 간다. 이름 높은 절답게 휴일을 맞아 찾은 사람들이 많았으나 내가 찾은 때(다섯 시 반 정도)에는 대체로 방문을 마치고 내려오고 있었다. 원래 입장료와 주차비가 있을 터인데 시간이 늦어서인지 매표소에 아무도 없어서 나는 그냥 차를 몰고 거의 절 마당까지 들어갔다. 왼편에 목련이 활짝 핀(그 아래 자목련은 듬성듬성 피어 있었다) 보제루를 지나 대적광전 앞마당으로 들어서자 전통사찰의 장엄한 건물들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른편에 있는 미륵전이 연륜을 느끼게 해주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 건물은 인조 때 지은 것으로 국보였다. [육각다층석탑]도 다른 곳에서는 보지 못한 형식이라 시선이 갔다. 미륵전을 위시하여 이 절에는 국보가 한 점, 보물이 열 점이나 있어서 그야말로 문화유산의 보고였다. 나는 그 중에 여덟 점을 사진에 담았다. 대웅전에 해당하는 대적광전도 보물이었으나 화재로 소실되어 1990년에 복원된 것이라 했다(좀 더 많은 사진은 [금산사] 참조할 것).
시간도 많이 되었고 피곤하기도 해서 나는 이곳저곳을 다니며 사진을 찍고 서둘러 빠져나왔다.
금산사에 들르는 길에 그 부근에 상당히 큰 저수지가 있다는 것을 내비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실제로 가보니 이 [금평저수지]는 크고 물도 맑을 뿐만 아니라 데크길도 상당히 길게 조성되어 있는 듯했는데 시간도 많이 늦었고 지친 데다가 날도 추워서 상부의 데크길을 조금 걷다가 돌아서고 말았다. 제방에서라도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차를 세울 곳이 마땅치 않아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다음 기회에 제대로 탐방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저수지 상부에 새로 지은 큰 사찰이 있어서 그것도 내 시선을 끌었는데, 내력을 읽어보니 [대순진리회]의 '상생청소년수련원'이었다. 또 흥미롭게도 부근에는 증산교 본부도 있다는 것도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게 되었다.
아쉬움이 남는 대로 이번 여행은 이쯤에서 마무리를 하기로 하고 712번 지방도, 호남고속도로, 새만금포항고속도로(20번), 대전통영고속도로(35번), 광주대구고속도로(12)를 타고 휴식시간을 포함하여 2시간 반 정도만에 대구로 총알처럼(과속을 했다는 말은 아님) 귀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