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좌충우돌 백령도(첫째 날 2)[20220228-0302](백령도를 향하여)

길철현 2022. 4. 19. 18:37

다음날 아침 다섯 시가 조금 넘어서 잠이 깼다. 요통도 좀 괜찮아진 듯했다.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인천항연안여객터미널]로 전화를 걸어보았더니 강풍으로 배가 뜰 수 없다는 전날의 메시지가 그대로 반복되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일단은 인천으로 가보기로 하고 속옷과 카메라 등을 배낭에 챙겨 넣은 뒤 집을 나섰다. 차를 가지고 갈까 하는 생각도 했으나, 주차할 곳을 찾지 못하면 낭패라는 우려로 지하철을 타고 여객터미널에서 가까운 인천역까지 가서 택시를 타기로 했다.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정황상 아파트에서 도보로 이십여 분 거리에 있는 월계역에서 6시 6분 차를 탔던 듯하다.

 

머리를 기댈 수 있는 문 옆 자리에 앉아 [만들어진 테러범, 김현희]라는 책을 읽어나갔다. 병원에서 어머니를 간병하다가 나는 대선을 앞두고 두 유력 후보에 대한 나의 실망감 등을 가벼운 마음으로 적어보려고 했는데, 글은 해방 후의 대선을 더듬어 보는 긴 글이 되고 말았다. 그러다가, 1987년 13대 대선을 앞두고 발생한 KAL기 실종(폭파) 사건을 둘러싼 온갖 의혹들에 대한 궁금증으로 유튜브를 시청하고, 기사들을 이것저것 살펴보았지만 답답한 마음은 풀리지가 않았다. 정부의 발표대로 북한 공작원에 의한 폭파 사건인지, 그것이 아니라면 전두환 정권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벌인 자작극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단순한 사고를 정부에서 교묘하게 이용한 것인지, 앞의 두 경우는 정말 상상하기도 싫었고, 세 번째 경우는 음독자살한 김승일로 알려진 남자와, 또 죽지 않고 살아난 김현희(마유미라는 위조여권을 지니고 있었던)로 인해  그 가능성이 희박했다. 지하철에서 내가 읽고 있던 부분은 필진 중의 한 명인 탈북자가 김현희의 글에 나오는 모순점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는 부분이었으나, 북한의 실정을 모르는 나로서는 와닿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책에서는 이 사건을 30년간이나 추적한 박강성주의 글도 실려 있었으며, 그녀는 결론적으로 아직도 "잘 모르겠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30년이나 이 사건을 추적한 사람도 잘 모르겠다고 말하고 있는 판국에 며칠 이 사건을 살펴보고 결론을 내린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리라.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당시 정권이 이 사건을 대선에 이용한다는 생각에 집착한 나머지 수사가 성급하고 허점투성이로 행해졌고, 그래서 죽은 당사자들은 물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유족들의 가슴에 다시 한 번 의혹과 분노만을 안겼다는 점이다. 

 

책이 지루하기도 했지만 딱딱한 지하철 좌석에 앉아 있자니 허리 통증이 다시 시작되었다. 점점 더 심해지는 통증 때문에 더 이상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나머지 구간은 서서 가야만 했다. 그리고, 인천연안여객터미널에 다시 전화를 했더니 배가 정상 운행한다는 메시지가 들려왔다. 출발 시각이 8시 반이니까 넉넉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월계역에서 종착역인 인천역까지는 아무리 가도 끝이 안 났고, 다리가 아파서 다시 자리에 잠시 앉았다가 요통 때문에 일어나는 일을 반복했다. 이른 시각이라 빈 자리가 많았고 인천으로 들어서면서부터는 시외곽으로 나가는 길이라 자리에 여유가 있긴 했지만 일어서 있을 때에는 내 자리에 배낭을 놓은 것이 눈치가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쨌거나 영원히 도달할 것 같지 않던 인천역에 도착한 다음(이 때 시각은 여덟 시가 다 되었다) 내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 여객터미널이 가까울 것으로 짐작되는 출구로 나왔는데, 택시가 별로 다니지 않는 길이었다. 조급한 마음에 카카오택시를 불렀는데 오는데 십 분 이상 걸린다고 나왔다. 버스라도 타야 하는 것인가 하는데 빈 택시가 한 대 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손을 들어 힘껏 택시를 불러 세웠고, 택시는 내 부름에 화답했다. 지도상으로 얼마 안 되어 보이는 거리였는데도 십오 분 이상 가야한다고 했다고 초조해 하는 내 모습에 기사분도 빨리 차를 몰았다. 터미널에 도착한 시각은 여덟 시 십칠 분인가 그랬다. 서둘러 표를 구하고 승선해야 했다. 매표소에는 두 명인가 밖에 없어서 나는 금방 표를 구입하고는 행선지에 유의하면서 재빨리 배에 탔다. 

 

배에 타고 보니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게 떠올랐다. 거기다 내가 타고 갈 배도 카메라에 담지 않았다. 시간이 촉박해서 그랬지만 타고 보니 출항까지는 십 분 가까이 시간 여유가 있었다. 아쉬운 대로 나는 내 소형카메라(RX100IV)로 배 내부와 항구에 정박해 있는 다른 배를 찍었다. 다소 얼떨떨한 가운데 먼 미지의 섬으로 떠난다는 설레임과 요통에 대한 두려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앞쪽으로 인천대교가 그 장대한 모습을 드러냈다(배 안에서 창을 통해 찍은 사진들이라 흐릿하다). 교량 길이가 18.38킬로미터에 달하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긴 다리. 재작년 11월에 저 다리를 건너 영종도로 또 거기서 용유도로 놀러갔었지. 불행 중 다행으로 여객선의 좌석은 뒤로 약간 젖힐 수 있어서 요통은 그럭저럭 견딜만 했다. 

멀리 보이는 저 섬이 영흥도인지? 자월도인지? 

이 섬은 또 어디인지? 중간에 너울성 파도가 심하니 조심하라는 주의 방송이 나오기도 할 정도로 파도가 다소 거칠었다. 배멀미도 걱정스러운 것 중의 하나였으나 다행히도 울릉도에 갈 때의 악몽을 되풀이하지는 않았다. 

아래 사진에 나오는 섬은 인천항에서 한 시간 정도 나온 지점에서 찍은 것이니 덕적도인 듯하다.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소청도, 그리고 대청도. 이 때 시각은 12시 7분. 3시간 40분 가까이 배를 탔다. 

소청도에 내리는 사람들.

대청도 선착장.

아래 사진부터 백령도를 찍은 것인 듯하다. 

12시 57분. 네 시간 반만에 드디어 백령도에 하선. 최전방답게 군인들이 많다. 

매점에서 빵이라도 하나 먹을까 하다가 베지밀로 허기를 달래며 터미널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