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백령도(첫째 날 3)[20220228-0302](백령면에서)
한 시경에 용기포(신)항 여객터미널을 나선 나는 일단 항구 주변의 절벽이 시선을 끌어 사진을 몇 장 찍었다. '따오기가 흰 날개를 펼치고 공중을 나는 모습처럼 생겼다하여' 백령도(白翎島)라 부른다는데, 섬을 알리는 흰색의 큰 입간판이 그중 한 곳에 세워져있었다. 이곳의 경치가 좋아서 혹시 여기가 두무진인가 하는 생각도 순간적으로 품었으나 명승으로 이름이 날 정도의 경치는 아니어서 이내 버리고 말았다.
[백령도는 우리나라 최서북단에 위치한 섬이고 북한이 코앞인 군사지역이라 위성지도도 없고, 로드뷰(거리뷰)도 볼 수 없다. 아쉬운 대로 일반지도를 잘 활용해야 할 듯하다. 그런데, 이런 제약을 받지 않는 구글을 보니 위성지도가 나왔다.] 용기포신항을 벗어난 나는 백령면을 향하여 무작정 걸어나갔다. 2월의 마지막 날, 봄 기운이 완연하다고 말하긴 일렀지만 얇은 파카지만 그래도 파카를 입고 있으니 춥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항구를 벗어나자 섬은 모든 것이 수직으로 솟아있는 듯하던 울릉도와는 대조적으로 넓고 한가한 시골 풍경이었다. 사거리에서 만난 전시용(?) 장갑차들만이 이곳이 전방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었다.
[심청각]이라는 안내판이 나와서 다소 우스웠다. 허구의 세계가 현실 속에 들어와 사실인 듯 자리를 차지하는 현상. 그런데, 나는 이런저런 이유로 이 심청각을 섬에 머무는 동안 세 번이나 찾았다. [끝섬전망대]를 알리는 이정표도 있었으나, 거리도 멀고 끝섬이 용기포신항에서 본 산이 솟아있는 곳을 가리키는 듯한데 뭐 그렇게 볼 것이 있을 듯하지는 않아 그냥 지나쳤다.
백령면내로 들어서자 초입에 [파리 바게뜨]와 [카페 베네], [롯데리아] 등이 보여 이곳이 그렇게 한가한 곳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일단은 아침 식사도 못했으니 허기를 채우는 것이 급선무라 근처 식당으로 들어가 [갈치구이]를 시켰는데 만 오천 원이나 했다. 육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섬이라 물가가 조금은 더 비싼 듯했다. 상당히 큰 갈치가 나왔으나 맛있게 먹지는 못했다. 그래도 허기를 달랬으니 다시 움직여야 하는데 앉았다 일어나자 다시 요통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백령도에 일반의원은 없고 백령병원만 있었다. 식사를 한 곳 근처였고, 백령면내로 들어오는 길에도 보았던 터라 진료를 받으러 올라갔다. 이때는 코로나 오미크론 변이의 확산으로 우리나라에서는 확진자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전세계 확진자 1위를 기록하기도 해(그러고보니 배에서 내릴 때 발열검사를 했구나), 이 외딴 섬에서도 한 분이 방역복을 입고 있다가 내가 정형외과에 왔다고 하자 정형외과는 없다고 했다. 다른 과에서라도 진통제 주사를 좀 맞았으면 될텐데, 나는 그냥 나오고 말았다.
아픈 허리를 이끌고 나는 백령면내를 어슬렁어슬렁 거닐며 사진을 찍었다. [백령 한의원]이 보여 가까이 가보았으나 폐업한 지가 꽤 된 듯했다.
그렇게 어슬렁거리며 거리를 거닐다 마사지 가게를 발견하고는 마사지라도 받으면 통증에 도움이 될까해서 나는 가격이 꽤 비쌌는데도 2시간을 끊어 마사지를 받았다. 중국분인 가게 주인은 허리가 아프다는 설명을 들은 뒤 아픈 부위를 계속 주물러 주었으나, 통증이 점점 더 심해졌다. 마사지를 받고 나온 다음 일단 숙소를 정해 휴식을 취하는 것이 좋을 듯하여 좀 고민을 하다가 [옹진모텔]이 조용할 듯하여 그곳으로 들어갔다. 숙소가 아주 깔끔하지는 않았으나 시끄럽지가 않아서 좋았다. 나는 약 처방을 받은 것이 남아 있다는 걸 떠올리고는 약을 먹고, 허리 부위에 다시 파스를 붙인 뒤 자리에 누웠다. 애시당초 무리한 여행을 떠난 탓이었으니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는 노릇이이었다. 통증에 시달리면서 텔레비전을 좀 보다가, 어느 결에 잠이 잠시 들었다가, 그렇게 두세 시간을 깨다가 자다가를 되풀이했다.
잠에서 완전히 깬 시각은 아홉 시 반 경. 잠시 텔레비전을 더 보다가, 통증이 좀 완화된 듯했고 배도 출출하여 뭐라도 좀 먹어야 해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양말을 신고 옷을 입는 것이 너무나도 힘겨웠다. 앉아서는 도저히 양말을 신을 수가 없어서 누워서 신어야만 했는데 자세를 조금만 바꿔도 통증이 심했다. 아프더라도 걸으면 통증이 완화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엉거주춤한 자세로 밖으로 나갔다. 편의점이 일찍 문을 닫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편의점에 들러 영업시간을 물어보았더니 24시간이라도 했다. 그렇다면 미리 사둘 필요는 없어서 올 때 들르겠다고 하고 나왔다. 골목길을 따라 걷다가 심청각으로 이어지는 오르막길을 따라 언덕을 올라갔다.
심청각 앞바다 저 건너편은 북한일 텐데, 경비정인지 고기잡이 배인지 불빛이 두어 개 빛날 뿐이었다. 아니 아래 사진이 바다를 향해 찍은 것인지도 사실은 잘 모르겠다.
한 시간 정도 걷다가 다른 편의점에 들러 먹을 것을 좀 사가지고 와서 속을 채운 다음 텔레비전을 시청하다가, 통증에 시달리면서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