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하나
요즈음은 꿈에 예전만큼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서인지 그 내용이 잘 기억이 나지 않고 파편적이다. 그래도 어제 꿈은 좀 또렷한 편이긴 한데, 여섯 시간 이상이나 지나 제대로 적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다시 고등학생이라도 된 양 수학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이 꿈과 관련해서 떠오르는 연상은 열흘 전쯤 차를 타고 가는 길에 막내 여동생이 큰 여동생의 아들인 조카에게 고등학생인 자신의 딸의 수학 과외를 부탁하는 장면이다. 기초가 안 돼 있다고 했던가? 그리고 현재 사는 집의 이사를 둘러싸고 큰 여동생과 나와의 갈등도 중요하게 작용하는 듯하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일반병원에 더 있을 수가 없어서 어머니를 집에서 모셔야 하는 상황인데 이 문제도 한몫을 하는 듯하다). 시험 시작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친구들은 문제를 읽고 부지런히 답을 외우고 있었다. 나는 문제가 그대로 나오는데 한 번만 보면 알 수 있지 하는 자신감으로 약간 건성으로 문제를 읽고 있었다(이건 고등학교 때 학생들의 수학 성적이 워낙 안 나오니까 선생님이 교과서의 문제를 그대로 출제를 했던 것과 관련이 있다. 학생들이 문제를 풀어보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답을 외우는 것이 횡행했던 서글픈 현실).
이윽고 시험 시간이 되어 문제를 받아들었다. 분명히 본 문제들은 맞는데 순서를 뒤섞어 놓아 답을 알 수가 없었다. 다른 친구들이 왜 그리도 열심히 문제를 읽고 답을 외우고 있었는지가 그제야 이해가 되었지만 때늦은 후회였다. 좀 더 정신을 집중하면 답이 기억날까 머리를 쥐어짰지만 답은 오리무중이었다. 이상하지만 공부가 하나도 안 된 상태라(학업을 그 정도까지 게을리하는 학생은 아니었는데) 풀어보려 해도 도무지 풀리지가 않았다. 시간은 점점 흘러가 종료가 임박했는데도 답을 쓴 것은 십 분의 일도 안 되었다. 커닝이라도 해야 할 판인데, 선생님은 벌써 나의 의도를 눈치챈 듯했다. 한편으로는 과감하게 포기해버려 하는 생각도 없지는 않았지만, 2,30점이라는 점수가 용납이 잘 되지 않았다. 금시라도 종료의 종이 울릴 듯하고 초초감과 불안감이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닫는 순간, 나는 꿈속에서도 이건 현실일 수가 없어, 라고 되내며 눈을 번쩍 떴다.
만 쉰 다섯 살의 나이에도 이런 꿈을 꾼다는 것이 잘 믿기진 않지만 이 꿈을 산출해 낸 이가 다른 누구도 아닌 나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시험을 보는 꿈은 사람들이 흔히 꾸는 꿈 중의 하나인데, 나의 경우에는 몽정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여러 번 있었다. 그래도, 최근에는 이런 류의 꿈을 꾼 적이 없었는데. 20대 초반에 쓴 [몽정]이라는 시?를 보면 일종의 반복강박처럼 되풀이되어 왔다는 걸 잘 알 수 있다.
시험 종료 시간은 다 되었는데
답은 아직 반도 못 썼는데
컨닝이라도 해야만 하겠는데
종료의 종은 사정없이 울리는데
뒤에서 답안지를 걷기 시작했는데
아직도 반 밖에 답을 못 썼는데
반 아이들은 머리에 손을 얹었는데
답안지 거두는 애는 재촉하는데
선생의 눈초리는 안경 너머로 날카로운데
금시라도 불호령이 떨어질 듯한데
이대로 정말 이대로는 낼 수 없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