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영산면을 향하여 4(20220630)/ 연지, 석빙고, 만년교

길철현 2022. 7. 4. 20:25

[영산계성로]를 계속 달려나가자 영산면 중심가로 들어서기 직전 우측에 소류지가 또 하나 눈에 들어왔다. 상부에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으려다가 제방에서의 조망이 훨씬 더 좋을 듯하여 [서리새동네길] 달려 길 끝까지 갔더니 아래에 보이는 소로가 나왔고, 이 길로 걸어나가자 바로 제방으로 이어졌다. 헤매지 않고 한 번에 길을 찾을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는데, 제방 위에 서서 사진을 몇 장 찍고 돌아 나와 영산중학교 후문 쪽으로 차를 밀어넣고 있으니 들어오는 차가 있어서(차가 한 대밖에 지날 수 없는 좁은 길이었다) 더욱 기분이 좋았다. 

 

직사각형의 이 소류지는 상부 쪽에 영축산(영취산) 줄기가 있어서 풍광이 돋보였다. 

처음엔 이곳으로 해서 제방에 접근할 생각을 갖고 있었다,

영산면 중심가로 들어선 나는 내비로 목욕탕을 검색하여 그쪽으로 달려갔다. 냉온탕을 반복하듯, 바깥의 더운 공기와 차 안의 에어컨 공기를 반복하는 가운데 온 몸은 땀에 젖었다 말랐다 하면서 차츰 무거워졌다. 그러나, 목욕탕은 [목욕합니다]라는 안내판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늦어서인지 이미 문을 닫고 만 상태였다. 

 

영산면은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영산현의 본현에 속해 문화재가 많고, 1914년 창녕군과 영산군이 통합하여 창녕군에 속하게 될 때까지 영산군의 중심지라서 면 치고는 규모도 크고 인구도 많다. 영산면 중심가로 들어선 나의 첫 인상도 사람이 많고 활기가 넘치는 듯했다. 

그래서, 난 영산면으로 들어오면서 본 연지로 발길을 돌렸다. [로터리길] 빈 공간에 차를 주차하고는 둘레길로 올라섰는데, 연지는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아도 면 중심지에 있다는 사실과, 작은 저수지로는 뜻 밖에도 안에 섬을 다섯 개나 거느리고 있어서(처음엔 정확히 몇 개인지도 몰랐지만)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거기다 동쪽에 위치한 영축산(영취산)이 풍광을 돋보이게 했고, 인접한 아파트와 아기자기한 건물들도 저수지와 잘 조화를 이루었다. 다만 수질이 썩 좋지 않은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나는 서에서 동쪽 방향으로 천천히 저수지를 한 바퀴 돌았다. 

연지 못 안에 있는 다섯 개의 섬 중 큰 섬에 있는 [항미정]의 유래를 설명한 안내문은 띄어쓰기는 차치하고라도 맞춤법이 틀린 곳이 많아서 이제는 새 것으로 교체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면서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수원에 서호와 항미정이 있다는 걸 알게 되어서 한 번 찾아가보고 싶은 욕구가 솟았다. 항미정의 유래는 이 안내문이 설명하는 것보다는 소동파가 중국 항주의 서호(西湖)를 일컬어 "항주(抗州)의 미목(眉目)"과 같다고 읊은 것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더 높은 듯하다. 

항미정과 항미정으로 들어가는 다리(가교)

다리는 다섯 개의 섬 중 두 개의 섬을 잇고 있으며 들어갔다가 다시 돌아나와야 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저수지를 다리로 절단하지 않은 것이 나로서는 잘한 선택으로 생각되었다. 나는 한 바퀴를 다 돌고 난 다음 다음과 같은 소개의 글을 썼다. 

 

연지는 영산천 위에 놓인 만년교와 함께 영산면을 대표할 만한 명소로 봄이면 저수지 둘레에 피는 수양 벚꽃이 특히 유명하다. 조선 시대에 조성된 유서 깊은 이 저수지에는 밀양의 위량못(위양지)처럼 다섯 개의 섬이 있으며 그 중 가장 큰 섬에는 항미정이라는 정자가 놓여 있다. 영축산을 배경으로 가볍게 둘레길을 한 바퀴를 돌다가 저수지가 보이는 카페에서 차나 커피와 함께 여유를 즐기는 것도 좋을 듯하다. 다만 수질 관리를 얼마나 더 잘 하느냐 하는 것이 큰 과제로 남아 있다. 

 

연지에 들르기 전에 영산면 안내 지도를 보다가 [구계저수지]라는 꽤 규모가 있는 저수지가 눈에 들어와 그곳으로 향하다가, 영산면의 두 보물 [석빙고]와 [만년교]를 먼저 보고 가야겠다는 쪽으로 생각을 바꿔 차를 돌렸다. 날도 저물어 가고 있어서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파장 무렵인 [영산시장] 비릿한 생선 냄새가 코를 찔렀다.

창녕읍의 [석빙고]와 함께 이곳의 석빙고도 보물인데 내부를 볼 수 없으니 요식 행위로 그냥 한 번 들러보았다. 오히려 그 옆에 있는 [석빙고]라는 식당에 눈길이 갔다. 

석빙고 내부. 인터넷

1780년도에 건립된 [만년교]는 아치형의 곡선이 아름다워 놀랐고, 또 그 위를 지금도 걸어서 건널 수 있어서 더 놀랐다. 시간이 없어서 오래 머물 수는 없었으나 부근의 [남산호국공원] 또한 한 번 찾을 만한 곳인 듯했다.

물에 비친 그림자로 만년교의 아치가 원을 이루고 있다. 인터넷
중간의 글자가 소실된 것인가 했으나 다리 이름이 원래 [원교]로 두 자이다.

날도 많이 저물고 해서 서둘러 나는 차를 [구계저수지]로 몰았다. 영축산과 함박산 사이의 계곡에 위치한 이 저수지는  특이하게도 상단, 하단 두 개의 저수지로 이루어져 있는데, 하단 저수지는 들어갈 수가 없어서 [다옴] 카페에서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상단 저수지 안내문에 의하면 1946년에 조성된 유서깊은 곳으로 만수 면적은 딱 10헥타르이다. 내가 이 저수지를 찾은 날에는 장마에 대비해 물을 빼느라 저수지가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수문을 열어 물이 암반을 타고 흘러가는 소리가 다소 요란하게 들려왔다). 낚시를 하고 있던 분은 내가 사진을 찍자 자신의 차를 찍은 것이냐며 의심의 화살을 쏘기도 했다. 

[구계저수지]에서 나온 시각이 7시 20분 경. 출출한 배를 채우고 대구로 돌아가야 했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둘리식당]이 맛집이라고 나와서 그곳으로 향했다. 낙지볶음 등은 2인분 이상 주문이 가능했기 때문에 [김치찌개]를 시켰다. 전문점이 아니다 보니 깊은 맛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반찬의 가짓수와 고기의 양이 내 입을 흡족하게 했다. 식사를 하면서 사장님과 연지와 625 당시의 전투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시간이 많이 늦어진 관계로 영산IC를 타고 남대구IC까지 직행, 월배 이마트에 들러서 병원 간병에 필요한 생필품을 몇 가지 구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