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 및 감상/김광규
김광규 - 그대의 두 발
길철현
2023. 8. 24. 20:56
영화나 연극이나 오페라 보면서
두세 시간 객석에 앉았도라면
참으로 오래간만에 양쪽 발도
보행의 노고를 벗어나
모처럼 안식을 누린다
적어도 예술을 감상하는 동안이라도
마음 놓고 쉬게 하자
쉴 틈 없이 신발 신겨 부려먹으면서
착한 두 발 주물러주지는 못할망정
육신의 프롤레타리아
눈길조차 주지 않고
업신여기지 말자
흔히 손보다 앞서 나가면서도
악수한번 못 해보고
언제나 당나귀처럼 순종하는
두 발 씻겨주지는 못할망정
그냥 내버려두기라도 하자
다행하게도 발을 다치지 않은
오늘 같은 날은
"그저께 보낸 메일". 문학과지성사. 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