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 및 감상/김광규

김광규 - 시인이 살던 동네

길철현 2023. 8. 29. 04:45

나뭇가지와 잎사귀 뒤흔들며

지나가는 바람 소리

제 목소리로 바꿔보려고

뒷동산 갈잎나무들 얼마나 오랫동안 

수런거렸을까

귓전 스쳐가는 그 소리

자기 말로 적어보려고

얼마나 오랫동안 그 사람은

잠 못 이루고 몸 뒤척이며

귀 기울였을까

아무도 하지 않는

쓸데없는 짓 평생

되풀이하다가 떠나간

자리에 오늘은 빛바랜 낙엽들

굴러다니고 구겨진 낙서 몇 장

드문드문 행인들이 밟고 가는 뒷골목

소식 끊어진 지 이미 오래된 

어느 시인이 살던 동네

 

"그저께 보낸 메일". 문학과지성사. 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