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 및 감상/김광규

김광규 - 그 짧은 글

길철현 2023. 8. 29. 07:18

시는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이라 했지*

하지만 이것은 너무 단호한 시학 아닌가

드넓은 산하 무수한 잡초들도

저마다 이름이 있기 마련

의미 없는 존재가 어디 있겠나

온 세상 모든 사물에 스며들어

혼자서 귀 기울이고 중얼거리며

그 속에 숨은 뜻 가까스로 불러내는

그런 친구가 곧 시인 아닌가

비록 나무 한 그루 자라지 않는 

메마른 사막에 감춰진 수맥이라도

촉촉하고 부드럽게 살려내는

그 짧은 글이 바로 시 아닌가

어려운 시학 잘 모른다 해도

 

* 예컨대 아치볼드 매클리시의 '시학'에 나오듯 

 

"그저께 보낸 메일". 문학과지성사. 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