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죽은 자는 말이 없고

길철현 2024. 9. 10. 06:49

비 오는 날 한강에 나가보았어

젖는 데에는 이골이 날 때도 되었건만

달려드는 비를 이겨내지 못하고

차 안에서 잔뜩 몸을 웅크린 채

분주히 왔다갔다를 반복하는 와이퍼 사이로

물 위에 물이 떨어져 젖어드는 걸

넋 놓고 바라보았지

빗줄기 잠시 호흡을 늦추자

어디선가 날아든 한 떼의 비둘기들

젖은 깃털로 서둘러 하루를 쪼다가

일제히 후두두 솟아오르더군

저만치 홀로 버려진 채

온몸으로 비를 받고 있는 산책로처럼

죽은 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강물은 어딜 그리 바삐 흘러가는지

차들은 물보라를 튀기며 또 어디로 가는지

 

                                   (20000919)

                                   (2000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