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랑 -- 두견
울어 피를 뱉고 뱉은피 도루삼켜
평생을 원한과슬픔에 지친 적은새
너는 너른세상에 서름을 피로 새기러오고
네눈물은 수천 세월을 끊임없이 흐려놓았다
여기는 먼남쪽땅 너 쫓겨 숨음직한 외딴곳
달빛 너무도 황홀하여 후젓한 이새벽을
송기한 네울음 천길바다밑 고기를 놀래이고
하늘가 어린별들 버르르 떨리겠고나
몇 해라 이삼경에 빙빙 도--는 눈물을
슷지는 못하고 고힌그대로 흘리웠느니
서럽고 외롭고 여윈 이몸은
퍼붓는 네 술잔에 그만 지늘꼈느니
무섬증 드는 이새벽가지 울리는 저승의노래
저기 성밑을 돌아나가는 죽음의 자랑찬소리여
달빛 오히려 마음어둘 저 흰등 흐느껴가신다
오래 시들어 파리한마음 마조 가고지워라
비탄의넋이 붉은마음만 낱낱 시들피나니
짙은봄 옥속 춘향이 아니 죽였을라듸야
옛날 왕궁을 나신 나히어린 임금이
산골에 홀히 우시다 너를 따라가시었느니
고금도 마조보이는 남쪽바닷가 한많은 귀향길
천리망아지 얼렁소리 쇤듯 멈추고
선비 여윈얼굴 푸른물에 띄웠을제
네 한된울음 죽엄을 호려 불렀으리라
너 아니울어도 이세상 서럽고 쓰린것을
이른봄 수풀이 초록빛들어 풀 내음새 그윽하고
가는 대닢에 초생달 매달려 애틋한 밝은어둠을
너 몹시 안타가워 포실거리며 훗훗 목메었느니
아니 울고는 하마 지고없으리 오 ! 불행의넋이여
우지진 진달래 와직지우는 이삼경의 네 울음
희미한 줄산이 살풋 물러서고
조고만 시골이 흥청 깨여진다.
<1949년, 시집 <영랑시선>>
(1935년 <영랑시집>)
[감상]
김소월의 "접동새"가 지역 설화를 직접적으로 이용하고, 그리고, 이 시보다 뒤에 나온 서정주의 "귀촉도"가 중국 설화를 원용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김영랑의 이 "두견"은 두견이 혹은 소쩍새의 울음이 불러일으킨 심상, 즉 당대의 비참한 현실(당연히 그것은 일제에 의해 국권을 빼앗긴 현실로 이어진다)을 직정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두견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더 나아가 춘향, 단종('나히어린 임금'), 귀양길에 오른 선비 등을 등장시키고 있는 것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 이 시는 90년이라는 시간 동안 한글 표기와 어휘, 띄어쓰기가 많이 변해 해석에 상당한 어려움을 초래하고 있음도 볼 수 있다.
[어휘 풀이] (한사람 블로그 참조)
후젓한 : 호젓한
송기한 : 소름돋게하는
삼경 : 밤 열한 시에서 한 시
슷지는: 씻지는
지늘꼈느니 : '지늘'은 '비늘'이나 '그늘', 또는 '지느러미' 등과 같은 말줄기로, 몸에 끼는 '그림자(취함, 먹먹함)' 같은 상태를
말하는 듯.
이새벽가지 울리는: 이 새벽 가지 울리는
흰등 : 달빛에 비친 바다?
가고지워라 : 가고 싶어라
시들피나니 : 시들시들하게 하느니
홀히 : 홀로
얼렁소리 : 고삐줄 흔드는 소리. 얼렁질하는 소리.
(얼렁질 : 실 끝에 작은 돌을 매어 서로 걸고 당겨서 어느 실이 더 질긴가를 겨룸. 또는 그런 장난.)
쇤듯 :
호려 : 홀려
포실거리며 :두견새 우는 소리의 의성어 (?)
훗훗 : 바람이나 입김 따위가 훈훈하게 거듭 안겨 오는 모양. 또는 열기 따위가 후끈하게 거듭 안겨 오는 모양.
와직 : (북한어) 잘 마르지 아니한 나뭇가지 따위가 세게 타들어 가는 소리. 또는 그 모양. (?)
줄산 : 줄줄이 이어진 산
(한사람) 한국시: 김영랑(2) "오월의 시"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