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으로/언어철학

조너선 컬러. <소쉬르>. 이종인. 시공사(1998)[Jonathan Culler. Ferdinand de Saussure. Cornell(1986) 6

길철현 2025. 5. 8. 13:05

3. 소쉬르 이론의 위치

 
83) 소쉬르 사상의 중요성 세 갈래
1. 기존의 언어학과 소쉬르의 관계
2. 소쉬르 언어 이론과 언어학 바깥 주요 사상과의 관계
3. 소쉬르가 현대 언어학에 끼친 영향과 후배 언어학자의 소쉬르 수용
 
소쉬르 이전의 언어학
 
84) 19세기 언어학 연구사 
1. 1816년에 나온 프란츠 보프의 <산스크리트의 동사 변화 체계에 대하여>로부터 시작되는 비교언어학 또는 비교문헌학의 시기.
2. 1870년부터인데, 이 단계에 들어와 비교문헌학은 더욱 역사적 성격을 띠게 되었고 일부 학자들은 언어의 본질과 언어학적 방법에 대해 의문을 던지기 시작. 
85) 17세기 18세기 언어학 -- 언어 연구가 인간의 생각과 마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가정
이 시기 언어 연구의 두 가지 다른 형태
1. 포르 루아얄(Port Royal) 문법
17세기 언어학. 언어를 생각의 그림 혹은 이미지로 보고, 언어 연구를 통해 보편적 논리 이성의 법칙을 찾으려고 시도. 이 언어학의 주요 목적은 품사와 문법의 범주를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것. 이 문법은 동사를 확언의 가장 대표격으로 인정했고, 가장 보편적인 동사는 be 동사라고 보았다. (예문 Peter lives -- Peter is living) 이런 류의 문법은 전적으로 비시간적인(시간이 완전히 배제된), 또는 공시적인 것이다.
<Port Royal Grammar>     
A core argument of Arnauld and Lancelot's general and rational grammar is that language reveals human thought structures which are based on the logic of predication. The notion is that all thought structures are based on logic and refrain from outside judgment. All languages are similar because there is only one logic. Their connection between logic and grammar has much to with the idea of the vocabulary concluding the logic of a statement, that arguments within arguments lead to an unsaid logical deduction. (wikipedia)
2. 18세기의 후계자들은 시간적 차원이 배제된 것에 우려를 표명. 인간의 생각을 이해하려면, 논리적 문법을 연구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생각(idea)의 형성과 발전을 논의하여야 한다. 로크(John Locke)의 추종자들에게는 이런 접근 방법이 아주 중요.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려면 먼저 생각이 감각으로부터 어떻게 발달되는 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 18세기의 석학이며 언어학자인 콩디야크(Condillac)는 <인간 지식의 기원에 대한 소고>에서 사고(숙고 reflection)는 감각에서 파생되며, 그러한 파생 메커니즘은 기호의 사용을 통해 형성되는 "생각의 묶음"(linking of ideas)이라고 주장했다. 콩디야크의 주장이 지향하는 바는 생각(thought)은 자연적인 기원이 있으며, 사고와 추상적 개념(reflection and abstract notions)이 존재한다는 것이 설명될 수 있는 어떤 것이라는 걸 보여줌으로써, 언어는 생각의 그림(17세기 입장)이라는 주장을 넘어서서, 추상적 생각(ideas)이 기호가 창출되는 과정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을 옹호하기 위해, 콩디야크는 규약적 기호인 언어가 원시적이고 비사고적인(unreflective) 경험으로부터 일어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과정이 있었음을 보여주어야 했다. 그는 언어의 기원 문제에 몰두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로크의 관념 연합론 : 모든 지식은 감각과 반성(reflection)에 의해 획득한 관념들이 여러 계기들에 의해 결합됨으로써 형성된다는 주장]
[추상적 사고가 감각으로부터, 또 원시적이고 비사고적인 경험으로부터 나온 기호(언어)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언어의 기원을 감각에서 찾고 있다?] [기호가 자의적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함.]
87) 언어의 기원은 18세기 사상의 중심적 문제가 됨. 
이 문제는 그런데 역사적 문제라기보다는 철학적 문제로 다루어졌다는 걸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들은 언어의 본질, 그리고 더 나아가서 생각(thoought)의 본질을 규명하기 위해서 언어의 기원에 매달리게 되었다. 어떤 것의 기원을 설명함으로써 그것의 본질을 설명했다. 따라서 18세기 언어학은 철학적 어원학이라고 해야 할 것에 특히 집중하게 되었다. 즉 몸짓, 동작, 감각 등에 어원이 있다고 상상하면서 기호와 추상적 개념을 설명하려 했다. 가령 콩디야크는 로크의 영향을 받아 전치사가 방향을 나타내는 몸짓에서 왔다고 주장.
88) 18세기 언어학의 입장
1. 언어 연구는 재현(representation)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성립한다. 왜냐하면 단어(words)는 중요한(that they are of interest) 인간적 경험의 기본적인 범주를 재현하는 기호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어는 그런 범주에 따라서 그룹을 이룬다고 보았다. 재현 혹은 의미의 통일성은 이 단어들을 한데 모으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다. (?)

2. (인간의) 생각을 밝혀 내기 위해, 분석가들은 기호에 동기 부여를 하려고 했다. 일례로 baron(남작)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음운학적 연쇄[소리]와 의미의 자의적인 결합이 아니라, 원시적인 어근, 즉 그 자체로 모든 연관된 기호의 자연적인 기본이 되는 원시적인  어근으로부터 가정된 파생물이 그 단어에 동기 부여를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단어의 어원에 이토록 집착하는 것은 우리 언어의 단어가 자의적인 기호가 아니라 합리적인 바탕을 가지고 있고, 원시적인 기호와의 유사성(resemblance)에 의해 동기 부여된다고 파악했기 때문이다.

3. [17세기의 비시간적인 접근과는 달리] 시간 개념을 도입했는데, 역사적 접근(historical project)에 대한 관심보다는 설명을 위한 허구로 도입한 것이었다. 그렇긴 해도 이러한 도입은 언어의 진화에 대한 좀 더 정확한 역사적 연구의 길을 열었다. 그런데, 이 역사적 연구는 철학적 어원론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철학적인 계획을 전면 유보시켰다. 비록 허구이긴 하지만 역사를 도입함으로써 18세기 언어학자들은 아주 취약한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

4. 언어와 마음의 관계는 원자론적으로(개별적으로) 파악되었다. 기호가 마음과 정신적 적용의 본질을 예증하는 것은, 기호가 개별적으로 혹은 개별적인 그룹으로 채택될 때였다. 이 경우 언어와 마음의 연결은 17세기 철학적 문법의 논리적 구조를 통해서도 아니고, 소쉬르가 강조하듯, 언어, 혹은 언어적 체계의 개념을 통해서도 아니고, 개개의 어근이 재현하는 자연적 개념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90) 19세기 언어학은 이 네 조항을 모두 거부하려 했다. 
 - 한스 아르슬레프(Hans Aarsleff)

언어학에서 새로운 전기가 마련된 것은 18세기의 철학적, 선험적(priori) 방법이 포기되고, 19세기의 역사적, 후체험적(posteriori) 방법이 채택되면서부터임은 널리 인정되고 있다. 18세기 언어학은 정신적 범주로 시작하여 보편 문법 내에서처럼, 언어 내에서 그 실례를 찾아 내려고 앴으며, 언어의 기원에 대한 추측을 어원학의 기초로 삼았다. 반면 19세기 언어학은 사실, 증거, 예증만을 찾으려 함으로써, 언어 연구와 마음의 연구를 완전히 분리시켰다. 

[18세기 언어와 마음이 합리적으로 연결]

91) 19세기 언어학 연구의 목표 

언어와 마음 사이의 연결을 거부함으로써 단어를 더 이상 기호 혹은 재현으로 보지 않게 되었다. 단어는 언어들 사이의 관련성을 확립하기 위해 다른 형태들과 비교되어야 할 하나의 형태, 혹은 그 역사적 진화 과정을 추적해야 하는 하나의 형태가 되었다. 철학적 어원학이라는 허구적 역사는 폐기되고, 그 자이에 실증주의적 역사가 들어서게 되었다. 이와 함께 역사를 이용하여 기호에 동기 부여를 하려는 시도 또한 폐기되었다. 간단히 말해, 19세기 언어학 연구의 목표는 더 이상 그 합리적인 바탕을 찾아야만 하는 재현으로서의 기호가 아니라 다른 형태와의 유사성이나 역사적 연결 고리가 예증되어야 하는 하나의 형태였다. 

- 소쉬르의 접근 방식 : 19세기 언어학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보다 정교하고 다른 방식이긴 하지만) 18세기 언어학의 관심사로 되돌아감

1. 소쉬르는 기호의 문제로 되돌아가, 다시 한 번 언어란 재현의 질서(an order of representation)라고 생각했다. 언어 형태를 기호로 취급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달리 규정할 방도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기호의 문제를 자신의 방법론적인 질의의 맥락에 놓음으로써, 18세기 전임자들의 원자론은 피했다. 기호는 다른 기호와의 관계에 의해서만 구성되기 때문에, 재현으로써 개별적 기호를 연구하는 계획은 폐기되어야만 했다. 

2. 언어의 연구와 마음의 연구 사이의 관계를 암묵적으로 재정립. 18세기의 언어학이 그랬던 것처럼 언어의 연구가 인간의 마음에 대해 드러내는 것은 일련의 원시적인(근원적인) 개념이나 자연적인 생각이 아니라, 사물들이 변별되는 일반적인 구조와 차별화 작용이다. 그래서 소쉬르는 의미는 용어 그 자체의 고유한 특성이 아니라 용어와 용어 사이의 차이에 기초한 "판별적"(diacritical) 또는 차별적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언어학에만 통용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변별을 통해 의미를 창조하는 일반적인 인간적 과정을 통찰한 것이다. 

93) 19세기 "비교 문법" 혹은 비교 문헌학의 발달

산스크리트(어)가 유럽에 알려지면서 유럽 언어학자들은 산스크리트와 초기 유럽어, 가령 그리스어와 라틴어 사이에 놀라운 유사성이 있음을 발견. 이들 세 언어 사이에 동사의 어근이나 문법 형태의 유사성이 너무나 빈번하게 발생하기 때문에, 18세기 후반의 언어학자들은 이 세 언어가 공통 어원을 갖고 있다고 주장. 

95) 언어학의 관심이 어근에서 굴절 체계(inflectional patterns)로 바뀌었다는 것은 언어관이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언어는 단순히 재현이 아니었다. 언어가 재현하는 합리성에 따라 질서 지워진 일련의 형태들(재현적 의미를 가지는 일련의 형태들)도 아니고, 생각과 마음 자체의 과정을 포착하려는 형태도 아니었다. [언어 연구를 통해 합리적인 질서, 생각이나 마음의 과정을 파악할 수 있다는 18세기 생각에서 벗어남.] 언어는 스스로의 법칙에 의해 좌우되고, 자율적인 형태적 패턴을 지닌 형태의 체계로 파악되었다. 근본 개념이나 경험의 범주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어근의 측면이 아니라, 단어가 연결되고 차별하되는 문법적 요소의 형태적 패턴의 측면에서 언어들을 비교한다는 생각은 형태적이고 자율적인 체계로써의 언어라는 개념을 향한 큰 진전이다. 

-- 미셸 푸코

언어는 생명체, 부, 가치, 사건과 인간의 역사 등과 동일한 층위에서 지식의 하나의 대상이 되었다. . . . 언어를 안다는 것이 지식 그 자체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것은 단순히 일반적인 방법론을 적용하여 이해할 수 있는 객관적인 하나의 학문 분야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말과 사물>)

("소리의 법칙"을 정립 - 그림(Grimm)의 법칙) 

96) 비교 문법학자에 대한 소쉬르의 비판

그들은 자신들이 연구하는 대상의 본질을 규명하려 애쓰지 않았고 그들이 발견한 관계(상응 체계)가 갖는 중요성이 무엇인지를 묻지도 않았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언어학을 설립하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98) 19세기의 비교 문법은 비교 해부학적 방법을 차용. 이러한 언어학은 다윈적 진화 모델보다는 라마르크적 진화론을 채택했고, 그 결과 언어의 변화에는 목적이 있고 또 변화에 적응하는 것도 의도가 있다는 해석 쪽으로 기울어졌다. 더 나아가 공시적 사실(문법 체계에 의해 변화된 형태가 이용되는 것)과 통시적 사실(소리의 변화 그 자체)을 혼동했다. [예 foot - fe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