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철학으로/고대 그리스

호메로스(호머) - 일리아드 [Homer - Iliad]

by 길철현 2019. 2. 10.

*Homer, Iliad (Penguin) tr. E. V. Rieu 991222


원래 십오일 예정으로 출발했는데, 중간에 무기력증이 찾아오는 바람에 예정의 두 배의 시간이 걸려서야 마쳤다. 좀 더 힘껏 도전하겠다는 정신이 없어서는 자꾸만 미루게 되고 그만큼 느려지게 되고 말 것이다. 물론 빠르다는 것이 좋다고만은 할 수 없다는 걸 부인할 수 없으며, 우리가 어떤 세계관으로 살아가느냐의 문제이겠지만, 나의 선택은, 끊임없는 추구와,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 이 두 세계관의 갈등의 와중에서, 전자로 기운다.

 

서양 문학의 고전 중의 한 작품을 늦게나마 읽은 것이 뿌듯하다는 것이 우선의 느낌이다(버지니아 울프는 '그리스 작품을 번역으로 읽는 것은 무용하다'라고 일침을 놓긴 했지만). <일리아드>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트로이와 그리스군과의 십 년 간에 걸친 전쟁 중에서, 전쟁의 막바지에서 아가멤논과 아킬레스와 불화, 그리고 트로이의 용장 헥터의 죽음과 장례의 약 오십일간을 다룬 서사시이다.

그 플롯을 잠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King Agamemnon the imperial overlord of Greece(or Achaea, as Homer calls it) has, with his brother Menelaus of Sparta, induced the princes who owe him allegiance to join forces with him against King Priam of Troy, because Paris, one of Priam's sons, has run away with Menelaus' wife, the beautiful Helen of Argos. The Achaen forces have for nine years been encamped beside their ships on the shore near Troy, but without bringing the matter to a conclusion, though they have captured and looted a number of towns in Trojan territory, under the dashing leadership of Achilles son of Peleus, Prince of the Myrmidons, the most redoubtable and the most unruly of Agamemnon's royal supporters. The success of these raiding parties leads to a feud between Achilles and his Commander-in-Chief. Agamemnon has been allotted the girl Chryseis as his prize, and he refuses to give her up to her father, a local priest of Apollo, when he comes to the camp with ransom for her release. The priest prays to his god; a plague ensues; and Agamemnon is forced by the strength of public feeling to give up the girl and so propitiate the angry god. But he recoups himself by confiscating one of Achilles' own prizes, a girl named Briseis. Achilles in high dudgeon refuses to fight any more and withdraws the Myrmidon force from the battlefield. After an abortive truce, intended to allow Menelaus and Paris to settle their quarrel by single combat, the two armies meet, and as a result of Achilles' absence from the field the Achaens, who have hitherto kept the Trojan forces penned up in Troy or close to their own city walls, are slowly but surely put on the defensive. They are even forced to make a trench and a wall round their ships and huts. But these defences are eventually stormed by Hector the Trojan Commander-in-Chief, who succeeds in setting fire to one of the Achean ships. At this point Achilles, who has remained obdurate to all entreaties, yields to the extent of permitting his squire and closest friend Patroclus to lead the Myrmidon force to the

 

이 작품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호머가 이 작품을 기술해나간 방식이다. 가상의 이 트로이 전쟁의 내용은 그의 청중들에게 이미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허두에서 그가 밝히고 있는 것처럼, 이 작품을 하나의 주제 의식을 가지고 전개해 나갔다는 점이다. (The Wrath of Achilles is my theme-p23) 즉 트로이 전쟁을 기술하되 그가 역사적인 사실을 기술하듯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을 부각시켜 재구성해보겠다는 의도이다. 이런 점이 이 작품이 갖는 픽션으로서의 성격을 두드러지게 한다는 점을 우선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도 그리스 신화를 읽었을 때 받은 느낌, 인간이 자신의 감정에 지극히 충실하다는 느낌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아가멤논이 자신의 여자를 빼앗기자, 아킬레스의 여인을 빼앗고, 거기에 분개해서 아킬레스는 전투를 거부하고, 더 나아가 전 트로이 전쟁의 동기가 파리스가 메넬라우스의 아내 헬레나를 빼앗은 것이라는 점 등은 현재의 우리로서는 한편으로는 이해하기 힘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의 본성의 그런 감정의 휘말림에, 그 근본에는 또 다른 무엇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좌우됨을 되새개 보게 된다. Rieu는 이 작품을 번역하면서 인간이 3천년을 지내오면서 별로 변한 것이 없다고 하지만, 그 말에 한편으로는 동의를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동의를 하기가 힘들었다. 인간의 표층은 급변하고 있지만, 심층은 변화가 거의 없는 것이라고 말해버릴 수도 있으리라.

호머의 이 작품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많은 생각이 떠올랐는데, 우선 생각나는대로 적어 나가보면, 첫째, 신과 인간의 관계이다. 인간은 신의 손에 조종되는 꼭두각시 같은 존재이고, 신 또한 선악의 구분이 불분명하며, 더 나아가 신도 전지전능하다든가, 자유로운 존재로 비춰지지 않는다. 애시당초 트로이 전쟁의 시발이 <불화> 여신의 농간과, 헤라, 아테네, 아프로디테 여신의 허영심에 의한 것이며, 인간의 승리와 패배는 신의 주재에 달려있을 따름이라는 생각에서 호머는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헥터가 글라우쿠스(Glaucus)에게 하는 말에는 그런 생각이 잘 나타나 있다.

 

But we are all puppets in the hands of aegis-bearing Zeus. In a moment, Zeus can make a brave man run away and lose a battle; and the next day the same god will spur him on to fight.

 

인간이 지닐 수 있는 최대한의 자율은 이 정해진 운명을 의연하게 맞아들이는 것뿐이다. 인간의 그러한 모습은 헥터와 그의 아내 안드로메케와의 대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129 참조)

인간이 부조리한 운명에 맞서 신에 대항하겠다는 생각을 갖지 않는 것은 인간 자신의 나약함과 부족함을 받아들인 결과이겠으나 이 부분에서 호머와 현대인의 사고는 상당한 차이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그 다음은 선악 개념이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나의 속단일 수도 있으나, 어쨌든 "정의"라는 관념, ""이라는 관념에 인간은 고뇌하기보다는 자신의 감정에 보다 더 충실한 모습을 보여준다. 아가멤논이 자신이 전리품으로 얻은 여인을 놓아주지 않아 전 그리스 진영이 곤욕을 치른 일이라든지, 아킬레스가 자신의 여인을 빼앗겼기 때문에 전투에서 물러난 것이라든지, 또 자신의 친구 패트리클로스가 죽자, 헥터를 죽여, 그 시신을 개처럼 취급한 것이라든지, 영웅들의 이러한 모습은, 체력에서는 초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만, 감정의 측면에서는 보통 사람의 그것을 벗어나지 못하거나, 아니면 더 미숙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우리가 볼 때는 모순적으로 보인다. (예전에 초서의 <Troilus and Creseida?>를 읽을 때에도, 그 당시 사람들의 감정 과잉이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인간의 감정 표현이 정도가 시대를 두고 볼 때 변해왔음을 조금은 이해할 것도 같다.)

작품의 상당히 많은 부분은 전투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누가 누구를 죽이는가, 신이 누구의 기운을 북돋아 주었는가 하는 것이라, 읽기가 수월치 만은 않았으며, 작품의 명성에 걸맞는 감동이랄까 그런 것은 없었다. 그러나, 몇천년을 거슬러 올라가 인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으며, 또 그 당시 인간들과 우리는 얼마나 거리를 두고 있는가 등을 살펴볼 수 있었던 것은 상당히 유익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Rieu<Odessey>가 인생의 낭만적 관점을 보여주는 행복한 결말로 끝을 맺은 반면, <Iliad>는 진정한 비극이며, 그리스인들은 이 <일리아드>를 호머의 가장 걸작으로 생각했는데, 자신도 그 생각에 동의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 작품이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의 제시를 통해 인간 삶의 그 면면을 제시해내었다는 점'에서는 Rieu의 말에 동의할 수 있으나, 호머가 그려보이는 세계가 앞에서도 말했듯이 공감이 가면서도, 시간이라는 거리를 뛰어넘기 힘든 점도 있다는 걸 말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