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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 및 감상/한국현대시12

정호승 - 선암사 선암사 정호승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 앞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 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 주고 새들이 가슴속으로 날아와 종을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 이 시는 전체적인 흐름이 좋고, 특히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 주고'라는 표현이 좋다. 2024. 1. 23.
정호승 - 선암사 낙엽들은 해우소로 간다 선암사 낙엽들은 해우소로 간다 정호승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낙엽이 떨어질 때를 아는 사람을 사랑하라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낙엽이 왜 낮은 데로 떨어지는지를 아는 사람을 사랑하라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한 잎 낙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라 시월의 붉은 달이 지고 창밖에 따스한 불빛이 그리운 날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한 잎 낙엽으로 썩을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라 한 잎 낙엽으로 썩어 다시 봄을 기다리는 사람을 사랑하라 해마다 선암사 낙엽들은 해우소로 간다. "여행". 창비. 2013. [감상] 자기를 낮추고, 또 낮은 곳에 있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잘 풀어내고 있다. 다만 낙엽의 사전적인 정의는 이미 떨어진 잎, 혹은 떨어지는 현상을 가리키기 때문에 '낙엽이.. 2024. 1. 23.
안도현 - 익산고도리석불입상 안도현 - 익산고도리석불입상 내 애인은 바위 속에 누워 있었지 두 손 가슴에 모으고 눈을 감고 있었지 누군가 정으로 바위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 들렸지 내 애인은 문을 밀고 바깥으로 걸어나왔지 바위 속은 환했지만 바깥은 어두웠지 내 애인은 옛날부터 나를 알아보지 못했지 "북향". 문학동네. 2017. - 마지막 행이 시를 미궁으로 몰고 간다. 이 시는 이성복의 '남해금산'을 연상하게 한다. 2023. 12. 25.
이병초 - 나비의 꿈 왕궁리 오측석탑에서 이병초 - 나비의 꿈 왕궁리 오측석탑에서 잔디밭에 떠오른 흰나비를 바라보는 네 눈빛은 오늘도 깔끄막이다 그늘 속인데도 날은 무덥고 뙤약볕을 지키고 서있는 네 표정엔 바람 한 점 묻지 않았다 미륵산에 등을 보인 석탑의 시간이 허허롭기만 했으랴 백성을 먹여 살린 만경들판의 숨소리가 왕궁리에만 닿았으랴 고조선 준왕의 목소리 너머 반짝이는 춘포항의 황포 돛대며 꿈을 못 이룬 마동의 숨결이 죽창 든 농민군의 함성소리만 못했으랴 오래 된 기억에 마음 설레는 황홀한 갈증을 놔먹이며 수천 년 세월을 잊었으리 소정방 부대와 김유신 김춘추 부대에 떼죽음 당한 백제 유민들의 원혼을 몸에 두르고 석탑은 찬찬히 본적지도 지웠으리 지울수록 뼈에 사무치는 평등세상이, 마한과 백제의 무너진 꿈이 두어 점 흰나비로 떠올랐으리 깔끄막 .. 2023. 12.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