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철학으로/박이문11

나의 삶 나의 길 -- 박이문 어려서 나는 새를 무척 좋아했다. 여름이면 보리밭을 누비고 다니며 밭고랑 둥우리에 있는 종달새 새끼를, 눈 쌓인 겨울이면 뜰 앞 짚가리에서 모이를 쪼고 있는 방울새를 잡아 새장 속에 키우며 기뻐했다. 가슴이 흰 엷은 잿빛 종달새와 노랗고 검은 방울새는, 흔히 보는 참새와는 달리, 각기 고귀(高貴)하고 우아(優雅)해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개도 무척 좋아했다. 학교에서 돌아와 개와 더불어 뒷동산이나 들을 뛰어다녔다. 가식(假飾) 없는 개의 두터운 정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어느 여름날, 그 개가 동네 사람들에게 끌려가게 되던 날 나는 막 울었다. 서울에 와서 나는 문학에 눈을 떴다. 별로 읽은 책도 없고, 읽었다 해도 제대로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작가는 특수한 인간처럼 우러러 보였다. 무슨 소리인지도 .. 2022. 2. 12.
길 -- 박이문 뱃길, 철길, 고속도로(高速道路), 산길, 들길, 이 모든 길들은 그냥 자연 현상(自然現象)이 아니라, 우리에게 무엇을 뜻하는 인간의 언어(言語)다. 언어는 인간만의 속성(屬性)이다. 그러기에, 인간만의 세계(世界)에 길이 있고, 길이 있는 곳에서 인간이 탄생(誕生)한다. ​ 길은 부름이다. 길이란 언어는 부름을 뜻한다. 언덕 너머 마을이 산길로 나를 부른다. 가로수(街路樹)로 그늘진 신작로가 도시(都市)로 나를 부른다. 기적(汽笛) 소리가 저녁 하늘을 흔드는 나루터에서, 혹은 시골 역에서 나는 이국(異國)의 부름을 듣는다. 그래서, 길의 부름은 희망(希望)이기도 하며, 기다림이기도 하다. ​ 눈앞에 곧장 뻗은 고속 도로가 산을 뚫고 들을 지나 아득한 지평선(地平線)으로 넘어간다. 푸른 산골짜기로 꼬불꼬.. 2022. 2. 12.
박이문. 문학과 철학 이야기. 살림. 2005(07) [후기] 작년에 작고한 박이문의 책을 오랜만에 읽는다. 명료하기 때문에 오히려 역설적으로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박이문의 글은 일단은 친근해서 좋다. 모든 것의 구분과 경계를 허무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력을 생각해 볼 때, 문학과 철학을 굳이 엄밀하게 구분할 필요가 없을.. 2018. 5. 3.
박이문 - 인식과 실존(문지) [1995년] ****인식과 실존---박이문(문학과 지성사) 내 인생의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보여준 동시에 내 공부가 얼마나 부족한가를 깨닫게 해준 책이다. 무엇을 하든지 인생을 걸고 해볼 가치가 없다면. 철학서적을 많이 읽어야 한다. 그리고 문학 비평에 있어서는 실증주의(?), 구조주의, 현상.. 2016. 11.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