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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으로/박이문

박이문. 문학과 철학 이야기. 살림. 2005(07)

by 길철현 2018. 5. 3.

[후기]

작년에 작고한 박이문의 책을 오랜만에 읽는다. 명료하기 때문에 오히려 역설적으로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박이문의 글은 일단은 친근해서 좋다.


모든 것의 구분과 경계를 허무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력을 생각해 볼 때, 문학과 철학을 굳이 엄밀하게 구분할 필요가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철학 텍스트에서 어떤 정서적 감동보다는 세계와 인생에 대한 객관적 진리를 기대하는 데 반해 문학 텍스트에서는 그것보다 어떤 종류의 재미나 감동을 받고자 한다. 또한 철학적 텍스트는 그 내용의 진위 혹은 논지의 논리성에 의해서 평가되는 데 반해 문학 텍스트는 흔히 그것의 언어적 묘미와 그 이야기가 동반하는 감동에 의해서 평가된다.' 필자의 지적처럼, 철학이 '객관적 진리'를 추구하는 면이 강하고, 문학이 '주관적 * 정서적 진리'를 추구하는 면이 강하다는 점에서는 방향성의 차이를 찾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이후 문학이 궁극적으로는 시적 진리를 추구한다고 이야기하는 부분은 많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시론'이다.


시는 언어로 시작되고 언어로 끝난다. 바꿔 말하자면 시도 일종의 언어표현*양식에 불과하다. 그러나 시는 근본적으로 역설적인 언어이다. 왜냐하면 시는 궁극적으로 언어를 통해서 언어로부터 해방되려는, 언어를 씀으로써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언어가 되려는 불가능하고 모순된 노력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60)


'언어를 통해서 언어로부터 해방되려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시도를 지속할 수밖에 없는 것이 시인의 운명이라면 왜 우리는 그 시도를 지속할 수밖에 없는가? 그것은 언어가 지닌 양면성 때문일 것이다. 언어는 우리에게 축복인 동시에 저주이다(언어는 인간이라는 동물의 가장 위대한 창조물이요, 인간생활에 가장 중요하고 가장 위대한 도구요 힘이며, 인간의 가장 찬란한 승리의 훈장과도 같다. 그러나 이와 정반대로, 언어는 동물로서의 인간의 가장 치명적이며 근본적인 저주이기도 하다.


언어를 창조함으로써 인간이 자연에서 소외된, 즉 자연과 거리를 갖게 되어 구체적 존재인 자연 속에서가 아니라 추상적 세계인 의미의 세계에 살게 된 사실이 인간 불안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며, 인간이 궁극적으로 동경하고 모색하는 열반의 극락세계란 다름 아닌 언어로부터 해방된, 즉 의미의 세계에서 실체의 세계로 귀의한 상태를 의미함에 지나지 않는다(59). 다시 말해서 시적 언어를 통해 우리가 지향하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현재의 상태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몸부림이고, 그 과정을 통해 우리의 상황을 보다 잘 이해하게 되고, 또 그 몸부림이 빚어내는 무늬가 우리에게 감동, 혹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필자는 사르트르의 즉자-대자 이론을 빌어와 미학이 추구하는 바, 그 이상을 설명하고 있는데, 이 부분은 그렇게 와닿지는 않는다.


 




[인용]

(8) 칸트 - 명제 구분: 정언적(assertoric), 절대적(apodictic), 개연적(problematic)

(11) 우리는 철학 텍스트에서 어떤 정서적 감동보다는 세계와 인생에 대한 객관적 진리를 기대하는 데 반해 문학 텍스트에서는 그것보다 어떤 종류의 재미나 감동을 받고자 한다. 또한 철학적 텍스트는 그 내용의 진위 혹은 논지의 논리성에 의해서 평가되는 데 반해 문학 텍스트는 흔히 그것의 언어적 묘미와 그 이야기가 동반하는 감동에 의해서 평가된다.

(13) 문학 - 세계와 인간을 보는 우리들의 시각을 넓혀줌.

(16) 문학의 철학적 가능성 -1) 문학작품 속에 들어 있는 철학적 이야기 2)문학의 옷(형식)을 입은 철학 3)예술작품 자체가 철학적인 경우. 뒤샹, 판화가 에셔.

(32) 문학언어의 의의는 지식에 관한 것, 객관적인 현실을 기술하는 데 있지 않고 언어를 통해서 한 작가가 자신이 체험한 세계를 표현함으로써 이를 독자와 더불어 공유한다는 데 있다. 바꿔 말해, 문학언어는 객관적 사실의 기록이 아니고, 작가가 구현한 작품 속의 현실과 인생에 대한 느낌이나 태도와 연관된 평가언어이다.

(37) 사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어떤 뜻을 전달하기 위해서 우리가 쓰고 있는 한국어*영어 등과 같은 자연언어 혹은 신호*기호와 같은 인위언어를 써야만 하듯이 예술가는 그가 뜻하는 바를 전달하려고 자연언어 이외에도 음*색*물체 등과 같은 매개물을 사용해야만 한다. 따라서 의미전달을 위한 매개물로서의 예술은 넓은 의미에서 하나의 언어이다.

[언어와 기호의 관계에서 박이문은 언어를 보다 넓은 개념으로 보고 있다. 기호학에서는 오히려 기호를 더 넓은 개념으로 보고 있는데, 방향성에 따라서 다를 것이다.]

(45) 언어와 사실과의 일치는 다름이 아니라 한 일정 사회 내에서 그 사회에서의 언어가 옳게 사용됐음을 의미할 뿐이다. 따라서 진리는 옳게 사용된 언어로 표현된 진술에 지나지 않는다.

(47) 언어표현은 객관화의 과정이다. 나는 내 체험을 언어로 표현함으로써 그 체험을 나 자신의 의식의 대상으로 객관화할 수 있다. 내 의식의 대상이 된 내 체험도 사실상 나 자신의 의식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대상화된 내 의식의 내용인 나 자신의 체험은 또 하나의 내 주체로서의 의식에 대해서는 하나의 객체가 된다. 시간적으로 볼 때 객체로서의 의식이 과거에 속한다면 주체로서의 의식은 현재에 속한다.

(48) 자의식, 자기지시, 자기반성

(49) 참된 작가에겐 가능하면 가능할수록 그가 객관화하는 체험의 내용이 독창적이며 특수한 것이어야 한다.

(50) 과학이나 철학에 있어서의 언어는 가능한 한도내에서 순전히 의미적 기능을 가진 표현수단으로만 국한하려고 하는 데 반해서 문학에 있어서의 언어는 의미적 기능을 포괄한 수사적 기능을 가진 표현수단으로 사용된다.

(58) 언어의 발명은 인간에게 동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힘을 갖게 하였다. 언어를 통해서 인간은 사물과 거리를 갖고, 객관적으로 그것을 인식하고 지배할 수 있다. 언어를 통해 객관적인 사물들은 의미로서 상징화된다. 때문에 인간은 사물과 부딪치지 않고도 사물 자체가 아닌 사물의 상징인 언어의 믜미와 관계를 가질 수 있다.

(59) 언어는 인간이라는 동물의 가장 위대한 창조물이요, 인간생활에 가장 중요하고 가장 위대한 도구요 힘이며, 인간의 가장 찬란한 승리의 훈장과도 같다. 그러나 이와 정반대로, 언어는 동물로서의 인간의 가장 치명적이며 근본적인 저주이기도 하다.

언어를 창조함으로써 인간이 자연에서 소외된, 즉 자연과 거리를 갖게 되어 구체적 존재인 자연 속에서가 아니라 추상적 세계인 의미의 세계에 살게 된 사실이 인간 불안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며, 인간이 궁극적으로 동경하고 모색하는 열반의 극락세계란 다름 아닌 언어로부터 해방된, 즉 의미의 세계에서 실체의 세계로 귀의한 상태를 의미함에 지나지 않는다.

(62) 폴 발레리 -산문- 종보, 시- 무용.

(67) 시는 추상화하기 이전에 한 유기체로서의 완전한 존재에 대한 인간 본연의 향수

(67) 도교가 함의하는 존재론 역시 일종의 언어철학이며 동시에 시론. (일원론적 형이상학)

(69) 시 - 기벽성을 보편성으로

(70) 언어를 통해서 언어를 파괴하고 다시 살리는 언어적 표현

(87) 썰매를 타고 눈 쌓인 비탈길을 미끄러져 내려올 때의 신나는 즐거움은 즉자와 대자 사이의 순간적인 균형을 실현하는 우리의 의식으로부터 온다고 한다.

나는 내 짝이 내 사랑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자기에 대한 내 사랑을 시인해 주는 주체이기를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