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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일본 규슈 여행

일본 규슈, 나 홀로 6박 7일(32) - 아소산 : 미나미다케, 다카다케, 나카다케 3(20231031)

by 길철현 2024. 2. 28.

 

 

돌과 흙, 듬성듬성 난 풀 사이로 등산로가 있긴 있는 모양이지만 다른 곳과 잘 구분이 가지 않아 노란 화살표를 놓치지 않고 따라가는 것이 중요했다. 얼마 올라가지 않아 위에서 여자 한 분이 내려오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영어로 '정상까지 얼마나 걸리냐'라고 물어보았는데, 의사소통이 쉽지 않았다. 겨우 내 말을 알아들은 그녀가 '2시간'이라고 말해서, 좀 서두른다면 정상까지 갔다 올 수도 있을 듯했다.   

중턱 쯤에서 바라본 스하센리가하마와 그 주변. 여기서 보니 내가 있던 중앙의 언덕에서 산으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뚜렷하다.
이곳에서 길을 놓쳐 좀 고생을 했다. 옆의 바위를 잡고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왔다. 그런데, 바위들이 푸석푸석한 것이 힘없이 부서져 내려 믿고 잡을 수가 없었다.

 

이 오르막을 십 분 정도 올라갔을까 이번에는 남자 한 명이 내려오고 있어서 그에게 다시 한번 물어보았다. 그는  '정상까지 1시간 30분 정도면 충분하다'고 했다.  

이정표인 듯했으나 '길 없음' 표시. 아랫부분에 영어로 조그맣게 'dead end'라고 적혀 있다.

 

30분 조금 넘게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자, 능선이 펼쳐졌고, 그 왼쪽으로는 나카다케 분화구가 보였다. 

나카다케 분화구와 그 너머로 보이는 기시마다케.

 

 

능선에 오르자 동쪽에 보이는 산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중앙에 뾰족하게 솟아오른 거대한 봉우리가 정말 특이했다. [이 산은 아소오악 중의 하나로 나카다케 분화구로 올라오는 길에 보았던 네코다케이다. 그쪽에서 볼 때와는 최고봉인 이 텐구봉(天狗峰 천구봉)의 모습이 사뭇 다르다.]

 

이때쯤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이 등산로가 최고봉인 다카다케로 이어진다는 걸 알게 되었던 듯하다. 다카다케로 가려면 왼쪽 등산로로 나아가야 했지만, 오른편 바위 아래쪽에 미나미다케(南岳 남악, 1496m)라고 씌어 있었다. 올라갔다 오는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을 듯하여 내친김에 그 봉우리도 올라갔다. 

 

정상에서 여러 방향으로 사진을 찍었다. 

중앙 높은 곳이 다카다케 정상 부근인 듯하다.
갑자기 화산이 폭발한다면?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또 그 생각을 완전히 떨쳐낼 수가 없었다.

 

다시 평탄하고 황량한 능선길을 따라 계속 나아갔다. 

 

일본 블로그. 이해를 돕기 위한 등산지도. 내가 걸어간 길과 거의 일치한다.
다시 나타난 오르막.
북쪽 방향.
일단 최고봉인 다카다케부터 올랐다가 나카다케는 시간을 봐서 오르든지 아니면 패스를 하든지 하기로 했다.
찍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힘겹게 찰칵.

 

네 시경에 다카다케 정상에 도착했다. 2시 반에 등산로로 들어섰으니 한 시간 반 정도 걸린 셈이었다. 초반 30분을 제외하면 대체로 능선을 따라 걷는 평탄한 길이었다. 등산로는 동쪽으로 계속 뻗어 있었고 별생각 없이 더 걸어 나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나 이제 발길을 돌려야 할 때였다. 

 

시간이 좀 여유가 있어서 나카다케에도 들렀다.

 

유황 냄새가 이곳에서 오히려 더 심한 듯했다. 

 

 

 

하산하는 데에는 한 시간 조금 넘게 걸렸다. 하지만 주차장까지 가려면 또 30분 이상을 걸어야 했다. 그런데, 마침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면서 멋진 풍광을 보여주었다. (카메라 배터리가 다 되어서 휴대폰으로 촬영) 

 

 

 

주차장에 도착할 무렵에는 날이 순식간에 어두워지고 말았다. 사람들은 모두 내려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직원분이 나에게 일본어로 뭐라고 뭐라고 말하고 있었다.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으나 '구루마'라는 말은 들렸다. 아마도 '주차장에 있는 차가 내 차인 지'를 묻는 듯했다. 

 

이날의 아소산 행은 뜻하지 않게 최고봉인 다카다케까지 올라갔다 오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외계 행성인 것 같은 황량한 지형을 마음껏 즐긴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아소로 들어오면서부터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던 장대한 고원지대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할 듯하다. 이 고원지대는 북쪽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남쪽에도 있었고, 능선으로 올라서자 이 아소 지역 전체를 빙 둘러싸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사를 좀 해보니 아소 지역 전체가 거대한 칼데라로 북에서 남으로는 25km, 동에서 서로는 18km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이다. 칼데라 지형은 호수를 이루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곳처럼 사람들이 주거하는 곳은 아주 보기 드문 경우라고 한다. 그러니까, 내가 본 고원지대는 이 거대한 칼데라의 테두리에 해당하는 외륜산(somma)이다. 아소산은 이 거대한 칼데라 중심부에 새롭게 형성된 이중화산들인 것이다. 

 

그렇다면 칼데라와 (분)화구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엄밀히 말하면 칼데라는 화구의 일종인데, 일반적으로는 크기로 구별한다. 큰 것은 칼데라 작은 것은 (분)화구. 우리나라의 경우 한라산의 백록담은 화구호이고 백두산 천지는 칼데라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