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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으로/고대 그리스

투키디데스 - 펠로포네소스 전쟁 [Thucydides, The Peloponnesian War]

by 길철현 2019. 2. 10.

*Thucydides, The Peloponnesian War, Rex Warner, tr., Penguin


<감상> 2001816

(철학 공부는 문학 공부와 함께 내가 평생을 두고 해나가야 할 숙제이지만, 철학 자체의 난해함과, 나의 우둔함과 게으름, 인내심의 부족 등으로 번번이 좌절되고 말았다. 여러 번의 실패 끝에 결코 물러날 수 없다는 각오로 출발한 것이 서구 문화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고대 그리스에 대한 공부였다. [그리스*로마 신화]를 다시 읽은 것을 출발로 볼 때, 벌써 2년이 다 되어 가지만, 그 동안 읽은 책은 호머의 [일리어드] * [오디세이], 헤로도토스의 [역사], 그리고 이번에 읽은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정도이다(플라톤의 저작을 몇 편 읽은 것도 쳐야겠지만). 더딘 진행이고, 거기다 모두 영문판으로 읽었기 때문에, 이해도에 있어서도 많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제 좀더 피치를 올려야 할 때가 된 듯 하다. “희랍극을 읽고, 그리스의 철학과 플라톤으로 다시 들어가도록 하자. 영어를 좀더 숙달하는 문제, 그리고 정해진 분량을 소화해나가는 문제(소화하지는 못한다 할 지라도, 삼키기는 해야 할 것이다)가 과제이다. 철학과 문학이 그리 먼 거리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둘 다 내가 안고 있는 인생의 문제와 밀착되어 있는 학문이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고대 지중해 인접국의 방대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긴 하지만, 그리스와 페르시아간의 전쟁--우리가 흔히 페르시아 전쟁이라고 부르는--을 그 중심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투키디데스의 이 책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제목이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듯이 펠로폰네소스 전쟁(B.C. 431--404)’, 즉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한 동맹국들과,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동맹국들과 식민국가들 간의 27년간에 걸친 싸움만을 다루고 있다. [역사]를 읽으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인류의 역사란 전쟁사라는 말을 다시 한번 되새김했다.

일설에 의하면 투키디데스가 헤로도토스가 [역사]의 일부를 직접 낭독하는 것을 듣고 감동한 나머지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럼에도 두 사람의 역사 기술 방식은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헤로도토스가 역사의 아버지로서 역사 서술의 길을 열었다면, 투키디데스는 헤로도토스의 신화적이고 설화적인 서술 방식에서 벗어나, 엄정하고 객관적인 태도를 취해서, 그의 뒤를 이은 역사 서술의 전범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그의 엄정한 태도는 그 자신이 스스로 밝힌 책의 집필 방향에서도 뚜렷이 드러난다.

 

. . . it may well be that my history will seem less easy to read because of the absence in it of a romantic element. It will be enough for me, however, if these words of mine are judged useful by those who want to understand clearly the events which happened in the past and which (human nature being what it is) will, at some time or other and in much the same ways, be repeated in the future. My work is not a piece of writing designed to meet the taste of an immediate public, but was done to last for ever. (24-5)

 

고대 그리스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와는 이천 몇백 년 이상의 시차가 있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생활과 사고를 이해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들이 철학*문학*미술 등에서 이룩한 업적은 아직도 우리의 경배의 대상이 되고 있듯이, 투키디데스의 이 책도 저자의 야심에 손색이 없으리만큼 그 기술 방식의 정확성과 논리 정연함이 놀라울 따름이다(솔직히 읽어내기 힘든 부분도 군데군데 있었지만, 다 읽고 난 지금은 이 책의 훌륭함에 대한 감탄이 앞선다). 이 책의 훌륭함은 27년간의 전쟁 기간 중 전쟁의 시작부터 21년 동안의 전쟁의 경과(안타깝게도 이 책은 미완성이다)를 엄격한 객관적 사실에 근거하여 정확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뿐만 아니라, 그러한 기술이 인간 본성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공감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그 자신이 아테네의 장군으로 직접 전투에 참가하기도 했다는 점을 두고 볼 때, 또 그의 아테네를 향하는 애국심을 생각해 볼 때, 그가 이렇게 객관적인 태도를 잃지 않았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페르시아 전쟁이 당시 지중해 연안의 최강국이었던 페르시아의 세력 확장을 위한 침략 전쟁이었던 것과는 달리, 펠레폰네소스 전쟁은 해상권을 장악한 아테네와, 아테네의 세력의 확대를 막으려는 스파르타 간의 알력으로 발발된 전쟁이었다. 역사학도가 아닌 나에게 있어서 더욱 흥미가 갔던 것은 전쟁의 경과보다는 소설처럼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는 인물들이었다. 아테네의 유명한 정치가였던 페리클레스, 스파르타의 지장인 브라시다스(Brasidas), 아테네 패배의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던 시러큐스 원정을 반대했으면서도 군대를 지휘하지 않을 수 없었던 아테네의 장군 니키아스(Nicias), 그리고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오고가며 박쥐 같은 역할을 하는 Alcibiades. 그 밖에도 전쟁의 와중에 인간들이 보여주는 행동 양식은 인간의 본성과 삶을 다시 한번 고찰해 보게 해주었다. 특히 전염병에 휩싸인 아테네 사람들의 반응, 민주주의와 과두정치 사이에서 혼돈에 빠진 Corcyra 인들의 행동, Thrace인들의 야만적인 살육 등은 전쟁이나 정치적 혼란의 와중에서 지금도 되풀이되고 있다(Thrace인의 야만적인 살육은 문명 사회의 전쟁에서 그대로 자행된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이차 세계 대전에서의 나치의 유태인에 대한 만행은 이와 별반 차이가 없다고 생각된다).

 

. . . they resolved to spend their money quickly and to spend it on pleasure, since money and life alike seemed equally ephemeral. As for what is called honour, no one showed himself willing to abide by its laws, so doubtful was it whether one would survive to enjoy the name for it. It was generally agreed that what was both honourable and valuable was the pleasure of the moment and everything that might conceivably contribute to that pleasure. No fear of god or law of man had a restraining influence. As for the gods, it seemed to be the same thing whether one worshipped them or not, when one saw the good and the bad dying indiscriminately. As for offences against human law, no one expected to live long enough to be brought to trial and punished: instead everyone felt that already a far heavier sentence had been passed on him was hanging over him, and that before the time for its execution arrived it was only natural to get some pleasure out of life. (126-7) [전염병이 아테네를 휩쓸었을 때]

 

To fit in with the change of events, words, too, had to change their usual meanings. What used to be described as a thoughtless act of aggression was now regarded as the courage one would expect to find in a party member; to think of the future and wait was merely another way of saying one was a coward; any idea of moderation was just an attempt to disguise one's unmanly character; ability to understand a question from all sides meant that one was totally unfitted for action. Fanatical enthusiasm was the mark of a real man, and to plot against an enemy behind his back was perfectly legitimate self-defence. . . . (209) [혼란에 빠진 Corcyra 인들의 행동 양태]

 

The Thracians burst into Mycalessus, sacked the houses and temples, and butchered the inhabitants, sparing neither the young nor the old, but methodically killing everyone they met, women and children alike, and even the farm animals and every living thing they saw. For the Thracian race, like all the most bloodthirsty barbarians, are always particulary bloodthirsty when everything is going their own way. So now there was confusion on all sides and death in every shape and form. Among other things, they broke into a boys' school, the largest in the place, into which the children had just entered, and killed every one of them. Thus disaster fell upon the entire city, a disaster more complete than any, more sudden and more horrible. (449-50) [Thrace인들의 야만적인 살육]

 

얼마 전에 최인훈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읽다가 인류가 달착륙한 사실을 두고(이것도 지금에 와서는 몇십 년전의 과거의 일이 되었지만), ‘이만한 일을 사람이 할 수 있게 됐는데도 땅위에서는 사람끼리 피를 흘리는 일을 막지 못하다니하고 개탄인지 푸념인지를 늘어놓는 구절을 발견하고는, 우리 삶의 이중성 내지는 불가해함을 다시 한번 뼈가 시리게 절감했다. 인류는 망망대해를 고독하게 항해해 나오는 가운데 많은 것을 알게 되었지만, 또 많은 사실은 여전히 이해하기 힘든 것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인류가 알아낸 것이 곧바로 개인의 지식이 되는 것은 아니기에, 개개인은 나름대로의 개인적인 항해를 해야 한다. 투키디데스는 전쟁의 원인이나, 전쟁의 방지를 위한 방책 등을 갈파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가 보고 듣고 수집한 자료들을 토대로 당시까지 서방에서는 가장 큰 전쟁이라고 할 수 있는 전쟁을 그의 능력이 닿는 껏 최대한 엄정하고 객관적으로 서술해 내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인간 삶의 가장 치열하고 비극적인 모습들을 만나게 되며, 우리는 그러한 비극 앞에서 정말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곁가지적으로 하나 이 책을 읽고 나서 분명하게 알게 된 것은 아테네의 민주주의의 발달과 경제적인 번영이 아이러니컬하게도 노예 제도와 또 숱한 식민지를 기반으로 하여 이루어 진 것이라는 점이다. 서구의 근대 자본주의의 발달과 번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말을 할 수 있으리라.

 



 

#Introduction

*His subject is not only the conflict, both military and spiritual, between Athens and Sparta, but human nature itself, as it is expressed in political action. (5)

 

#본문

*The old form of government was hereditary monarchy with established rights and limitations; but as Hellas became more powerful and as the importance of acquiring money became more and more evident, tyrannies were established in nearly all the cities, revenues increased, shipbuilding flourished, and ambition turned towards seapower. (20)

*So from the end of the Perisian War till the beginning of the Peloponnesian War, though there were some intervals of peace, on the whole these two Powers were either fighting with each other or putting down revolts among their allies. They were consequently in a high state of military preparedness and had gained their military experience in the hard school of danger. (23)

*. . . it may well be that my history will seem less easy to read because of the absence in it of a romantic element. It will be enough for me, however, if these words of mine are judged useful by those who want to understand clearly the events which happened in the past and which (human nature being what it is) will, at some time or other and in much the same ways, be repeated in the future. My work is not a piece of writing designed to meet the taste of an immediate public, but was done to last for ever. (24-5)

*What made war inevitable was the growth of Athenian power and the fear which this caused in Sparta. (25)

*An Athenian is always an innovator, quick to form a resolution and quick at carrying it out. You, on the other hand, are good at keeping things as they are; you never originate an idea, and your action tends to stop short of its aim. Then again, Athenian daring will outrun its own resources; they will take risks against their better judgement, and still, in the midst of danger, remain confident. But your<Spartans--quoter> nature is always to do less than you could have done, to mistrust your own judgement, however sound it may be, and to assume that dangers will last for ever. Think of this, too: while you are hanging back, they never hesitate; while you stay at home, they are always abroad; for they think that the farther they go the more they will get, while you think that any movement may endanger what you have already. (51) [Corinthians' speech to Spartans]

*There is no need to suppose that human beings differ very much one from another: but it is true that the ones who come out on top are the ones who have been trained in the hardest school. (60) [Arhcidamus, the Spartan King]

*This expedition was the occasion for the first open quarrel between Athens and Sparta. The Spartans, failing to capture Ithome by assault, grew afraid of the enterprise and the unorthodoxy of the Athenians; they reflected, too, that they were of a different nationality and feared that, if they stayed on in the Peloponnese, they might listen to the people in Ithome and become the sponsors of some revolutionary policy. (69) [Ithome가 반란을 일으켜 아테네는 스파르타를 돕는다. 그런데, 아테네의 강대함에 놀란 스파르타가 아테네 군대를 돌려보내는데, 이 같은 사정을 꿰뚫어 본 아테네가 분개한다.]

*The actions of the Hellenes against each other and against foreign powers. . . all took place in a period of about fifty years between the retreat of Xerxex and the beginning of this present war. In these years the Athenians made their empire more and more strong, and greatly added to their own power at home. The Spartans, though they saw what was happening, did little or nothing to prevent it, and for most of the time remained inactive, being traditionally slow to go to war, unless they were forced into it, and also being prevented from taking action by wars in their own territory. So finally the point was reached when Athenian strength attained a peak plain for all to see and the Athenians began to encroach upon Spata's allies. It was at this point that Sparta felt the position to be no longer tolerable and decided by starting this present war to employ all her energies in attacking and, if possible, destroying the power of Athens. (77)

*People's feelings were generally very much on the side of the Spartans, especially as they proclaimed that their aim was the liberation of Hellas. States and individuals alike were enthusiastic to support them in every possible way, both in speech and action, and everyone thought that unless he took a personal share in things the whole effort was being handicapped. So bitter was the general feeling against Athens, whether from those who wished to escape from her rule or from those who feared that they would come under it. (102)

*One's sense of honour is the only thing that does not grow old, and the last pleasure, when one is worn out with age, is not, as the poet said, making money, but having the respect of one's fellow men. (122) [Pericles' speech at the funeral]

*. . . they resolved to spend their money quickly and to spend it on pleasure, since money and life alike seemed equally ephemeral. As for what is called honour, no one showed himself willing to abide by its laws, so doubtful was it whether one would survive to enjoy the name for it. It was generally agreed that what was both honourable and valuable was the pleasure of the moment and everything that might conceivably contribute to that pleasure. No fear of god or law of man had a restraining influence. As for the gods, it seemed to be the same thing whether one worshipped them or not, when one saw the good and the bad dying indiscriminately. As for offences against human law, no one expected to live long enough to be brought to trial and punished: instead everyone felt that already a far heavier sentence had been passed on him was hanging over him, and that before the time for its execution arrived it was only natural to get some pleasure out of life. (126-7) [전염병이 아테네를 휩쓸었을 때]

*After the second invasion of the Peloponnesians there had been a change in the spirit of the Athenians. Their land had been twice devastated, and they had to contend with the war and the plague at the same time. Now they began to blame Pericles for having persuaded them to go to war and to hold him responsible for all the misfortunes which had overtaken them; they became eager to make peace with Sparta and actually sent ambassadors there, who failed to achieve anything. They were then in a state of utter hopelessness, and all their angry feelings turned against Pericles. (129)

*'Our business, therefore, is not to injure ourselves by acting like a judge who strictly examines a criminal; instead we should be looking for a method by which, employing moderation in our punishments, we can in future secure for ourselves the full use of those cities which bring us important contributions. And we should recognize that the proper basis of our security is in good administaration rather than in the fear of legal penalties. (189) [반란을 일으킨 Mytilene의 처리를 두고, 강경한 입장을 취하는 Cleon에 반대해 온건한 입장을 취하는 Diodotus]

*To fit in with the change of events, words, too, had to change their usual meanings. What used to be described as a thoughtless act of aggression was now regarded as the courage one would expect to find in a party member; to think of the future and wait was merely another way of saying one was a coward; any idea of moderation was just an attempt to disguise one's unmanly character; ability to understand a question from all sides meant that one was totally unfitted for action. Fanatical enthusiasm was the mark of a real man, and to plot against an enemy behind his back was perfectly legitimate self-defence. . . . (209) [혼란에 빠진 Corcyra 인들의 행동 양태]

*That war is an evil is something which we all know, and it would be pointless to go on cataloguing all the disadvantages involved in it. No one is forced into war by ignorance, nor, if he thinks he will gain from it, is he kept out of it by fear. The fact is that one side thinks that the profits to be won outweigh the risks to be incurred, and the other side is ready to face danger rather than accept an immediate loss. If, however, on these very points both sides happen to be choosing the wrong moment for action, then there is something to be gained from attempts at mediation. (262) [Hermocrates, a Syracusan.]

*They made a proclamation to the effect that the helots should choose out of their own number those who claimed to have done the best service to Sparta on the battlefield, implying that they would be given their freedom. This was, however, a test conducted in the belief that the ones who showed most spirit and came forward first to claim their freedom would be the ones most likely to turn against Sparta. So about 2,000 were selected, who put garlands on their heads and went round the temples under the impression that they were being made free men. Soon afterwards, however, the Spartans did away with them, and no one ever knew exactly how each one of them was killed. (276) [위기에 처한 Sparta 인들이 노예를 계략으로 죽임]

*As it was, their<Athen's colonies--quotor> judgement was based on more on the wishful thinking than on a sound calculation of probabilities; for the usual thing among men is that when they want something they will, without any reflection, leave that to hope, while they will employ the full force of reason in rejecting what they find unpalatable. (292)

*Both sides, therefore, had cogent reasons for making peace, the Spartans, perhaps, most of all, since they were extremely anxious to get back the men who had been captured on the island<Pylos--quotor>. (317) [10th year of the war]

*It happened, too, that I was banished from my country for twenty years after my command at Amphipolis; I saw what was being done on both sides, particularly on the Peloponnesian side, because of my exile, and this leisure gave me rather exceptional facilities for looking into things. (324)

*. . . hope is by nature an expensive commodity. . . . (362) [Athenians to Melians who are colonians of Sparta]

*Our opinion of the gods and our knowledge of men lead us to conclude that it is a general and necessary law of nature to rule wherever one can. (363) [아테네가 멜로스를 위협하며]

*The Athenians therefore suffered great losses. They were deprived of the whole of their country; more than 20,000 slaves, the majority of whom were skilled workmen, had deserted, and all the sheep and farm animals were lost. As the cavalry rode out to Decelea every day to which they were put, or else were wounded by the enemy. Then the supplies of food from Euboea, which previously had been brought in by the quicker route overland from Oropus through Decelea, now, at great expense, had to go by sea round Sunium. Every single thing that the city needed had to be imported, so that instead of a city in became a fortress. . . . What wore them down more than anything else was the fact that they had two wars on their hands at once, and indeed they had got themselves into such a state of obstinate resolution that no one would have believed it possible if he had been told of it before it actually happened. (448) [Another war is the war with Syracuse]

*The Thracians burst into Mycalessus, sacked the houses and temples, and butchered the inhabitants, sparing neither the young nor the old, but methodically killing everyone they met, women and children alike, and even the farm animals and every living thing they saw. For the Thracian race, like all the most bloodthirsty barbarians, are always particulary bloodthirsty when everything is going their own way. So now there was confusion on all sides and death in every shape and form. Among other things, they broke into a boys' school, the largest in the place, into which the children had just entered, and killed every one of them. Thus disaster fell upon the entire city, a disaster more complete than any, more sudden and more horrible. (449-50) [Thrace인들의 야만적인 살육]

*No Hellenic army had ever suffered such a reverse. They had come to enslave others, and now they were going away frightened of being enslaved themselves; and instead of the prayers and paeans with which they had sailed out, the words to be heard now were directly contrary and boded evil as they started on their way back, sailors travelling on land, trusting in hoplites rather than in ships. Nevertheless, when they considered the greatness of the danger that still hung over them, all this seemed able to be borne. (481) [스파르타와 시라큐스 군대에 패배한 아테네 측]

*Next winter the whole of Hellas, after the great disaster in Sicily, turned immediately against Athens. (490)

*Nevertheless the Assembly and the Council chosen by lot still continued to hold meetings. However, they took no decisions that were not approved by the party of the revolution; in fact all the speakers came from this party, and what they were going to say had been considered by the party beforehand. People were afraid when they saw their numbers, and no one now dared to speak in opposition to them. If anyone did venture to do so, some appropriate method was soon found for having him killed, and no one tried to investigate such crimes or take action against those suspected of them. (525) [Oligarchial coup d'etat in Athens]

 

<펠로폰네소스 전쟁> 브리태니커

── 戰爭

 

Peloponnesian War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의 양대 세력인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서로 패권을 다툰 전쟁(BC 431~404).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제각기 동맹을 이끌었는데, 이 두 동맹에는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이 거의 포함되어 있었다. 전쟁은 사실상 그리스 세계 전체를 휩쓸었고, 동시대의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이 전쟁을 그때까지 벌어진 전쟁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전쟁으로 보았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대한 투키디데스의 기록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역사서의 하나로 꼽힌다.

 

아테네 동맹은 사실상 에게 해 북해안동해안 주변에 있는 섬나라와 연안국가를 대부분 포함하는 하나의 제국이었다. 스파르타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와 그리스 중부 내륙지방에 있는 대부분의 주요강국을 비롯해 해양 강국인 코린트를 포함하는 독립국가동맹의 지도자였다. 따라서 해군은 아테네 쪽이 강했고 육군은 스파르타 쪽이 강했다. 아테네인들은 제국 각지에서 정기적으로 바치는 공물로 막대한 전쟁자금을 비축했기 때문에, 재정적으로 적들보다 훨씬 나은 대비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펠로폰네소스 대전이 일어나기 전에도 서로 싸웠지만(이것을 제1차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라고도 함), BC 445년 이른바 30년조약이라는 휴전협정을 맺었다. 그후 몇 년 동안 불안한 평화가 유지되다가 BC 433년에 양측을 다시 적대행위로 몰아넣은 사건이 일어났다. 아테네가 전략적 요충에 위치한 코르키라(코린트의 식민지)와 동맹을 맺은 것이다. 그결과 싸움이 벌어졌고 아테네는 30년조약을 명백히 위반하는 조치를 취했다. 스파르타와 그 동맹국들은 아테네의 침략 행위를 비난하고 전쟁을 일으키겠다고 위협했다.

 

아테네의 실력자인 페리클레스의 선동에 따라, 아테네는 양보를 거부했고 분쟁 해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도 모두 실패로 끝났다. 마침내 BC 431년 봄, 스파르타의 동맹국인 테베가 아테네의 동맹국인 플라타이아이를 공격함으로써 전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 전쟁은 6년 동안의 중간 휴전기를 경계로 하여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눌 수 있다. 10년 동안 지속된 전반기는 아르키다모스가 이끄는 스파르타 동맹군이 아티카를 침공한 것으로 시작되었다. 페리클레스는 우세한 동맹군과 싸우기를 거부하고, 아테네 시를 굳게 수비하면서 우세한 해군력을 최대한으로 이용하여 적의 해안과 선박을 집요하게 공격하라고 아테네인들을 부추겼다. 그러나 몇 개월도 채 지나기 전에 페리클레스는 아테네 시를 휩쓴 전염병으로 죽었다. 민간인만이 아니라 군인의 대다수도 전염병에 희생되었다. 투키디데스는 전염병의 공격을 견디고 살아남아, 이 전염병이 아테네인의 사기에 미친 영향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한편 스파르타군은 그리스 서부에 있는 아테네의 기지들을 공격했지만 격퇴당했으며(BC 430~429) 바다에서도 패배했다. BC 428년 그들은 아테네의 속국으로서 반란 계획을 좌절시키고, 레스보스 섬의 수도인 미틸레네를 장악했다. 선동가 클레온의 부추김을 받은 아테네인들은 미틸레네 시의 남자들을 학살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노예로 만들기로 의결했지만, 이튿날에는 마음을 돌려 반란 지도자들만 처형했다. 아테네에 전염병이 만연하는 동안 스파르타가 주도한 공격은 BC 427년에 전략 요충지인 플라타이아이 시를 점령한 것을 제외하고 모두 실패로 끝났다.

 

그후 몇 년 동안은 아테네인들이 공세를 취했다. 그들은 시칠리아의 도시 시라쿠사를 공격하고, 그리스 서부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원정했다. BC 425년 스파르타의 상황은 암담해졌고 스파르타인들은 평화조약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델리움 전투의 영웅 브라시다스가 이끄는 스파르타군이 BC 424년에 칼키디키에서 중요한 승리를 거두자 아테네 속국들은 잇따라 반란을 일으켰다. BC 422년 암피폴리스에서 벌어진 결전에서 브라시다스와 아테네의 지도자 클레온이 모두 전사했다. 덕분에 클레온의 경쟁자인 니키아스가 평화조약을 맺자는 스파르타의 제안을 받아들이자고 아테네인들을 설득할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되었다.

 

니키아스 평화조약은 BC 421년부터 6년 동안 지속되었다. 이 시기에 각 도시는 작은 도시국가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애썼는데, 그 수단은 외교적 책략에서 소규모 군사작전으로 차츰 바뀌었다. 이 불안정한 평화는 BC 415년에 아테네군이 시칠리아 섬에 대공세를 퍼부어 결국 깨지고 말았다. 그후 11년의 기간이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후반기를 이룬다. 결정적인 사건은 아테네군이 시칠리아에서 당한 재난이었다. 시라쿠사는 스파르타군의 도움을 얻어 아네테의 봉쇄를 뚫을 수 있었다. 아테네군은 BC 413년에 증원된 뒤에도 다시 패배했다. 해군마저 참패를 당한 직후, 아테네군은 후퇴하다가 거의 전멸하고 말았다. BC 411년경에는 아테네 자체가 정치적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민주주의는 과두정치 지배자들에게 전복되었고, 과두 정치체제는 좀더 온건한 500인 정권으로 바뀌었다. BC 411년말에 재건된 아테네 해군은 몇 차례의 승리로 기력을 되찾아, 민주정치를 회복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민주정치 지도자들은 스파르타의 평화제의를 거부했고, 바다에서는 전쟁이 계속되었다. 스파르타 함대와 아테네 함대는 승리를 얻기 위해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 이 끝없는 전쟁이 결말난 것은 BC 405년이었다. 아테네 해군이 아이고스포타미에서 페르시아의 도움을 받은 스파르타 해군에 참패를 당한 것이다. 이듬해 아테네는 스파르타군의 봉쇄를 뚫지 못하고 굶주림에 시달리다가 조건부로 항복했다. 이로써 문화적으로 가장 진보한 그리스 도시국가는 마침내 쇠퇴하기 시작했다.

 

참고문헌

 

펠로폰네소스전쟁

 

 

펠로폰네소스전쟁사 전2: 투키디데스, 박광순 역, 범우사, 1993

역사 : 헤로도토스, 박광순 역, 범우사, 1991

플루타크영웅전 : 플루타르코스, 김영 역, 배재서관, 1986

펠로폰네소스전쟁과 아리스토파네스 경북대학교 논문집12 : 김진경, 경북대학교, 1968

The Origins of the Peloponnesian War : G. E. M. de Ste. Croix, 1972

Thucydides and the Outbreak of the Peloponnesian War, E. Badian, Conflict, Antithesis, and the Ancient Historian, pp. 46-91: June W. Allison,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