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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문학작품

트레이시 렛츠(Tracy Letts)의 『8월: 오세이지 카운티』

by 길철현 2020. 3. 28.

미국 희곡
2010. 6. 9
전준택 교수님

(다른 두 명의 학생과 공동 발표)


                                                   트레이시 렛츠의 『8월: 오세이지 카운티』


1. 들어가는 말
2007년에 공연된 트레이시 렛츠(Tracy Letts)의 『8월: 오세이지 카운티』(August: Osage County)는 현재 미국의 가족 관계의 실상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아버지의 실종과 자살로 아주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인 친척과 가족들이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서로 위로하고 감싸 안기보다는, 오히려 서로가 안고 있는 문제나 상처에 공격을 가하고, 또 감추고 싶은 비밀을 드러내는, 그래서 가족이 철저하게 해체되고 마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렛츠의 이 작품은 2008년 뉴욕 드라마 비평가 상, 퓰리처 상, 토니 상 등 드라마 부분 3대 주요 부분을 수상하며 평단으로부터 큰 호평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두었다. 이 작품이 이렇게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찰스 이셔우드(Charles Isherwood)가 지적한 것처럼, 가족의 해체라는 무거운 주제를 ‘전통적인 텔레비전 시트콤의 생기 넘치는 유머와 일일연속극의 사람을 빨아들이는 이야기의 추진력(『뉴욕 타임즈』리뷰)’이라는 인기 있는 방식과 효과적으로 융합해내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2. 구조
극은 프롤로그로 시작하여, 1막은 4장으로, 2막은 장의 구분 없이, 그리고 3막은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극은 시간적 순서로 전개되며, 베벌리의 실종과 죽음과 홀로 남겨진 바이올릿을 중심으로 모였다가 다시 떠나가는 가족들의 모습을 그린다. 프롤로그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베벌리는 미국 원주민인 조나를 가정부로 고용하는데, 그는 그녀에게 아내 바이올릿을 돌보는 임무를 맡긴다. 프롤로그에서 보이는 베벌리의 모습은 그가 자살을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는 점을 알게 한다. 프롤로그에서 조나를 첫 대면하는 바이올릿은 그녀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그런 그녀의 태도는 극이 진행되면서도 변하지 않다가 결말부분에서야 바뀌게 된다. 1막은 주로 베벌리의 실종 소식을 들은 가족들이 모두 모이는 모습을 그리는데, 특히 각각 나름의 불화를 겪고 있는 가족들은 그 사실을 숨긴 채 함께 지내게 된다. 각 가족들의 과거와 불화의 원인이 주로 설명되고, 그로 인해 현재 그들이 어떤 상황에서 지내고 있는지를 주로 1막에서 그리고 있는데, 2막은 시간상으로 1막으로부터 며칠이 지난 후로, 베벌리의 장례식을 치른 날 저녁에 온 가족이 함께 식사를 즐기지만 결국 바이올릿의 약물복용으로 인한 다툼으로 엉망이 된 채 끝이 난다. 2막에서는 주로 인물 개개인의 성격과 인물끼리의 관계가 점차 확실해 지고, 특히 3막에서 그 내막이 밝혀지는 리틀 찰스와 아이비, 진과 스티브의 관계가 서서히 드러난다. 그리고 2막에서 바이올릿은 모든 인물들을 공격하며 상처 주는 모습은 가시 같은 그녀의 성격을 보여주고, 그녀의 횡포를 참다못한 바바라는 바이올릿의 약을 빼앗고 통제를 가하며 이제부터 가족사는 자신이 접수하겠다고 선언하면서 2막은 끝이 난다. 3막은 바이올릿과 세 딸들, 매티 패와 리틀 찰tm, 바바라와 진 등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이 점차 심화되고, 또한 매티 패와 찰리, 바바라와 빌 등 부부간의 갈등도 점점 심해지는 모습을 그린다. 그리고 스티븐과 진이 함께 있다가 들통 난 사건, 리틀 찰스의 탄생 비밀이 밝혀지면서 가족들은 점점 더 서로에 의해 상처받고 상처 주게 되고, 특히 바이올릿의 거칠고 강하지만 한편으로는 외롭기도 한 모습이 바바라에게 그대로 보여 진다. 베벌리가 사실은 쪽지를 남기고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바바라 마저 바이올릿을 떠나게 되고, 결국 바이올릿은 모두가 떠난 집에 홀로 남겨져 그동안 무시했던 조나에게 기대며 막이 내린다. 프롤로그는 모든 일의 원인이 되는 베벌리의 자살을 미리 예견하며 주요한 역할을 하는 조나의 등장을 설명하며 1막과 2막을 통해 가족들 간의 갈등이 점차 심화되어가고 3막에서는 결국 모두 떠나면서 바이올릿과 조나만 남으면서 끝이 나는데, 각 막들에서는 결국 마지막에 모두가 떠나게 되는 원인과 과정을 차근차근 전개시키고, 시간이 지날수록 갈등이 심화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3. 인물
웨스턴 가족들은 베벌리, 바이올릿 웨스턴의 세 딸들과 그녀의 여동생 가족들을 포함하고, 그 외 인물들은 가정부인 조나, 캐런의 약혼자 스티브, 마을 보안관인 보안관 디언이다.

베벌리 웨스턴 - 69세로 시인이다. 한 때는 각종 수상경력이 화려한 인정받는 시인이었지만 『들종다리』(Meadowlark)라는 시집을 발간한 이후로 작품을 거의 쓰지 않는다. 프롤로그에서 단 한 번만 등장하는데, 가정부로 젊은 인디안 여성인 조나를 고용하여 바이올릿을 돌보도록 미리 조치하는 점, “인생은 너무 길다”(Life is very long 10)’라는 T.S 엘리엇의 말을 인용하는 모습, 아내와의 갈등을 한탄하며 술에 의존하는 그의 모습은 그의 자살에 설득력을 더해주는 배경이 된다. 그는 바이올릿의 동생인 매티 패와의 관계로 인해 리틀 찰스를 낳았지만 한 번도 바이올릿과 이 사실에 대해 얘기를 나눈 적이 없었는데, 바이올릿과의 갈등은 어찌 보면 이런 깊은 대화의 부재가 원인 중 하나가 되었을 수도 있다. 자살 직전에 찾아주는 딸들도 없이 약에 중독된 바이올릿과 단 둘이 지내다가 고독함을 견디지 못했고, 바이올릿에게 메모를 남기고 떠났으나 그녀에게서 연락이 없자 결국 자살하고 만다.

바이올릿 웨스턴 - 65세로 그녀는 구강암에 걸려 복용하던 약에 중독이 되어 극 전반적으로 약에 취한 모습이거나 과거에 약물에 중독된 적이 있다. 대체로 거칠고 공격적인 성격을 보인다. 어릴 때, 부모 밑에서 불우한 시절을 보냈는데, 동생 매티 패도 바이올릿과 마찬가지로 거칠고 공격적인 성격을 보이면서도 두 자매 사이의 나름의 돈독한 자매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아 둘의 성격은 불우한 어린 시절에서 기인한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세 딸 중 특히 첫째인 바바라에게 애착을 보이고 그녀에게 의지하려 하지만, 바이올릿의 늘 제멋대로이고 거칠며 지나친 경제관념을 보이는 모습에 질려 세 딸 모두 결국 그녀를 떠난다. 프롤로그에서 고용된 조나를 싫어하지만 결국 모두 떠난 마지막에는 조나에게 기대는데, 겉으로는 한없이 강해보이지만 사실은 누구보다도 의지할 사람이 필요한, 고독함을 느끼는 인물이다. 하지만 이렇게 내면의 한 구석에 외로움을 느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거칠고 가시 같은 성격은 인물들로 하여금 그녀의 곁에 남을 수 없게 밀쳐내고 만다.

바바라 포덤 - 웨스턴 집안의 장녀로 46세이고, 바이올릿이 가장 의지하는 딸로 스스로도 집안의 일을 통제하려하며 베벌리와 바이올릿의 모습을 가장 많이 닮았다. 프롤로그의 베벌리와 조나의 장면과, 3막 3장에서 바바라가 조나에게 긴 넋두리를 하기도 하고 위스키를 마시는 등 베벌리의 모습과 매우 닮아 있으며, 막상 스스로 자신이 책임자가 되어 집안을 돌보겠다고 선언했지만 3막 2장에서 남편 빌과 딸 진이 떠나자 혼나 남겨 진 모습은 마지막에 세 딸들에게 버림받은 외로운 바이올릿의 모습과 매우 닮았다. 바바라 역시 강인한 성격을 지녔으며 겉으로는 공격적으로 빌과 진을 나무랄 때도 있지만 속으로는 한없이 공허감과 고독함을 느끼는 여성이다. 홀로 남은 바이올릿을 돌보아야 한다는 의무감은 가지고 있지만 외도 중인 남편 빌과 일탈하는 어린 딸 등 자신의 가족문제로도 충분히 부담감을 가지고 있고 바이올릿의 모습에 질려 결국 떠나고 만다.

빌 포덤 - 바바라의 남편으로 49세이고, 학생과 외도중인 교사이다. 베벌리의 실종소식에 바바라와 한걸음에 달려왔지만 사실 바바라와 별거중이고, 바바라를 걱정하고 그녀에게 신경써주기는 하지만 일종의 의무감 때문이지 정말로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와 다시 잘 해볼 생각은 없다. 깐깐하고 거친 바바라와는 달리 진에게 쾌활하고 멋진 아빠역할을 하는데, 딸의 일탈적 행동을 지나칠 정도로 방임하는 것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진 포덤 - 이들의 14살짜리 딸로, 어린 나이이지만 담배도 피우고 때때로 마리화나도 피우는 등 일탈적인 행동을 하지만 가족들 중 아무도 그것에 대해 혼을 내거나 못하게 하는 사람은 없다. 부모의 갈등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사춘기의 소녀로 어쩌면 그녀의 일탈행동은 무의식중에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일 수도 있으며, 육식을 금하고 고전 영화를 좋아하는 것으로 보아 어리지만 나름의 규칙과 관심사가 뚜렷한 소녀이다.

아이비 웨스턴 - 베벌리와 바이올릿 부부의 둘째딸로, 44세이다. 자궁경부암으로 인해 자궁제거수술을 받았는데, 이 사실을 밝힐 때 더 이상 자매관계나 가족 간의 관심과 애정 등은 믿지 않는다며 냉소적인 모습을 보인다. 매티 패의 아들 리틀 찰tm와 만나고 있으며, 세 딸들 중 그나마 바이올릿을 돌보아 왔지만 바이올릿이 리틀 찰스와 자신이 이복남매라는 사실을 밝히자 역시 떠나고 만다. 장례식 복장으로 여성용 드레스보다는 정장을, 평소 화장도 잘 하지 않는 수수하고 털털한 인물이다.

캐런 웨스턴 - 막내딸로 40세이며 계속 독신으로 지내다가 스티브를 만나 약혼했다. 바이올릿이 바바라에게, 비벌리가 아이비에게 좀 더 애착을 지녔다면 캐런은 부모에게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았는데, 오히려 성격은 세 딸들 중에 가장 다정하고 온화하다. 하지만 약혼자인 스티브가 진을 희롱했다는 사실을 알고 결국 가장 먼저 집을 떠나게 된다.

매티 패 에이켄 - 바비올렛의 여동생으로 57세이고, 바이올릿과 마찬가지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서 인지 거칠고 공격적인 성격을 지닌다. 특히 자신의 친아들인 리틀 찰스에게 가장 혹독하게 대하는데, 나중에 그가 매티 패와 베벌리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난 후 그녀의 행동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바이올릿에게 남다른 애정을 지니고 있고, 남편 찰리와 극에 등장하는 모든 부부들과 마찬가지로 갈등을 겪는다.

찰리 에이켄 - 매티 패의 남편으로 60세이고, 농담도 잘하고 우울한 분위기를 밝게 해주는 쾌활한 사람이다. 바이올릿의 말에 따르면 그가 리틀 찰스의 탄생에 대해 모르는 듯 보이고(“Charlie shoulda known too, if he wasn't smoking all that grass” 133) 매티 패가 구박하는 것만큼 찰리는 아들을 사랑하고 보듬어주며 격려한다. 이들 가족의 모습은 오히려 강하게 키우려고 다그치는 매티 패가 일반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그런 호통에 기죽은 아들을 달래고 북돋워주는 찰리가 일반적인 어머니의 모습을 보인다고도 할 수 있다.

리틀 찰스 - 부부의 아들로, 37세이지만 매티 패에게 아직 어린애 취급을 당하고 있고, 그런 대우에 어울리게 어린애 같은 행동을 한다. 소심하고 용기가 없으며 무능력한 모습을 보이지만 아이비와 둘이 있을 때에는 한없이 부드러운 남자가 된다. 자신의 탄생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데, 친척인 아이비와 사랑에 빠진다는 것 뿐 아니라 형부와의 관계에서 태어난 아들이라는 사실 등 리틀 찰스의 존재는 근친상간이라는 소재를 부각시키는 역할을 한다.

조나 - 젊은 미국 원주민 여성으로 베벌리가 죽기 며칠 전에 고용한 가정부이다. 그녀는 베벌리가 자살을 결심한 후 홀로 남겨 질 바이올릿을 위해 준비한 마지막 배려로, 철저히 가족사에는 개입하지 않고 집안일만 도왔었다. 그녀는 가족에 대해 아무런 감정도 가지지 않고 그저 경제적 관계로만 존재했지만 진을 희롱하던 스티브를 공격하거나 마지막에 모두가 떠나고 바이올릿이 그녀에게 기대자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등, 베벌리와 바바라가 원했던 바이올릿을 돌보는 일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다. 미국 원주민으로써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가정부 일을 하면서 살아왔는데, 훌륭한 요리솜씨나 군더더기 없는 말, 늘 차분하고 신속한 행동 등이 모든 면에서 가정부로써 적합한 특징을 지녔는데, 그녀의 존재는 처음에는 철저히 가족에게서 소외된 단순한 가정부였지만, 바이올릿을 마지막까지 지키는 사람이 결국 낯선 인물인 조나라는 결말은 현대 사회에서 가족 간의 씁쓸한 관계를 부각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조나는 프롤로그에서는 제외하고 중간에는 눈에 띄는 역할을 하지는 않는데,  시작처럼 마지막도 조나와 바이올릿이 등장하지만 조나를 탐탁지 않게 여기던 프롤로그에서와는 달리 바이올릿은 결국 조나와 단둘이 남아 그녀에게 기대게 된다. 오세이지(Osage)가 미국 원주민 종족 중 하나의 이름이라는 점, 조나를 둘러싸고 극 중간 중간에 등장하는 인디언에 대한 언급은 미국 원주민인 조나의 존재가 극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고 할 수 있다. 원주민으로써 개척자인 유럽인들에게 땅을 빼앗기고 정복당한 약자의 입장이 인디언들이라면 그런 인디언들을 통제하고 대우해 주지 않는 것이 미국인들이라고 했을 때, 조나가 처음에는 바이올릿에 의해 무시당하고 그저 돈 때문에 일하는 고용인에 불과하다는 취급을 했지만 어느 새 조나는 가족의 사건에 조금씩 개입하게 되고 결국에는 모두 떠났을 때 남아 바이올릿을 지키게 됨으로써 과거의 인디언과 미국인들 사이의 관계를 전복시키는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스티브 - 캐런의 약혼자로, 이미 3번의 이혼 경력이 있는 쾌활한 남자이다. 하지만 처음 진을 마주한 순간부터 진에게 호감을 보이고 결국 진을 농락하려다 망신을 당하는데, 약혼녀의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약혼녀의 조카를 희롱하는 모습은 결혼 상대로써의 적합함에 의문이 들도록 만든다. 그런 스티브를 감싸는 캐런 또한 만약 둘이 결국 결혼한다면 현재 인물들이 겪고 있는 갈등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한다.   

보안관 디언 - 어렸을 때 바바라와 교재 했던 인물로 세 딸들이 모두 고향을 떠나 각각의 인생을 다른 지역에서 정착시킨 데 반해 그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 오클라호마에서 지내고 있는 토박이이다. 베벌리의 실종소식에 대한 경과, 그리고 그의 죽음과 그 후에 다른 단서들을 바바라와 가족들에게 전달하는 인물로, 고독한 바바라가 잠깐이나마 기댈 수 있는 인물이다.


4. 텐션 그래프


  
A - 베벌리의 죽음이 보안관에 의해 통보됨.
B - 집 전체에 조명이 켜지며 모든 인물들이 동시에 대화함.
C - 아이비와 리틀 찰스가 사귀고 있는 모습을 관객들이 보게 됨.
D - 리틀 찰스가 저녁식사 도중 매티 패의 냄비를 떨어뜨려 소동이 일어남.
E - 리틀 찰스가 아이비와의 관계를 고백할 뻔 함.
F - 아이비와 리틀 찰스가 이복남매라는 사실이 매티 패에 의해 밝혀짐.
G - 조나가 진을 희롱하고 있는 스티븐을 후라이 팬으로 공격하고 소동이 일어남.
H - 프롤로그와 비슷하게 바바라와 조나의 대화가 진행됨.
I - 아이비도 리틀 찰스가 이복남매라는 사실을 알고 떠나감.
J - 바바라가 베벌리가 떠나기 전 바이올릿에게 노트를 남긴 사실을 깨닫고 떠나감.
 

5. 주제
이 작품은 유진 오닐(Eugene O'Neill)의 『밤으로의 긴 여로』(Long Day's Journey into Night)나 샘 셰퍼드(Sam Shepard)의 『매장된 아이』(Buried Child)처럼 가족 관계의 실상을 집요하게 파헤치고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아버지의 실종과 자살, 즉 아버지의 부재를 그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또 작품의 결말 또한 철저하게 해체된 가족의 모습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차이점을 보인다. 그러나 렛츠는 이 비극적이고 무거운 내용을 빠른 전개나 코믹한 요소 등과 효과적으로 융합해 작품이 너무 암울해 지는 것을 적절히 방지하고 있다.
“가족 간의 재회란 문어가 들어있는 물탱크로 뛰어드는 것 같다”(7)는 작품의 앞부분에 인용된 로버트 펜 워런(Robert Penn Warren)의 『왕의 모든 남자들』(All King's Men)의 한 구절처럼, 아버지의 실종과 죽음을 계기로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이게 된 가족들 간의 대화는 작품이 전개되어 감에 따라 비등점을 넘어 폭발을 향해 치닫는다. 아버지의 실종으로 가족이라는 서로의 유대감을 재확인하고, 서로를 위로하고 의지하기 위해서 모인 자리가, 서로 간의 간극과 그 동안 숨겨져 왔던 가족 내의 비밀이나 상처 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계기가 되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가족들 간의 갈등과 불행의 중심에는 약물에 중독되어 상대방을 공격하는 언어를 거침없이 구사하고, 상대방이 숨기고 싶어 하는 치부들을 노골적으로 까발리는 바이올릿이 있는데, 그녀 또한 불운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또 남편과 여동생 사이의 불륜 관계라는 사실이 주는 상처를 평생 안고 살아야 했다는 점에서, 이 가족의 문제가 뿌리 깊은 것이고 풀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게 뒤엉킨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또 남편의 자살과 그로 인한 정신적 충격 또한 그녀의 말과 행동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사실 이 점은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해당된다).
바이올릿과 남편 베벌리가 안고 있었던 여러 문제들은 이 가족 구성원들에게 고스란히 넘어가 확산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 부부의 딸들 중에서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인물이면서, 동시에 바이올릿과 상당히 많이 닮은 바바라는 남편에게 버림을 받고, 또 자신의 딸과도 심한 갈등을 겪는데, 이것은 바이올릿이 겪는 상황을 변형된 방식으로 되풀이하는 형태이다. 더 나아가 막내 캐런이 선택한 남자 또한 미성년자를 유혹하는 파렴치한이라는 점이나, 이복남매 간으로 드러나는 아이비와 찰스의 근친상간이 부모 세대가 저지른 잘못된 행동과 그것의 은폐의 결과라는 점 등은 이 가족의 불행이 유전처럼 대물림되고 있는 것임을 보여준다.
렛츠가 이 작품에서 제시하는 가족 관계의 실상이라는 것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기대하듯 서로를 이해하고 감싸주는 그런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상처를 가하고 있는 관계라는 점은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이다. 그러나, 차양으로 가려진 이 집의  공간이 암시하듯, 밖에서 들여다보지 못하는 것을 내부로부터 조망해볼 때, 거기에는 우리가 부정하고 싶은 추악한 현실이 들어있다는 사실 또한 외면할 수 없다. 이 작품은 불행의 종합 선물 세트라고 할 정도로 온갖 종류의 갈등과 문제들을 풀어놓고, 그 결말은 “이렇게 세상은 끝이 나지”(This is the way the world ends 138)라는 조나의 마지막 말처럼 아무런 긍정적인 해결책이나 방편도 제시하지 않는다. 그렇긴 하지만 이 작품이 가진 힘은 우리가 외면하고 부인하고 싶은 가족 관계 실상의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려는 그 자체에 있다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