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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영국여행이야기

영국 여행 이야기, 어쩌다 보니 문학 기행(10)런던 타워(Tower of London)

by 길철현 2022. 10. 8.

이제 방향 감각도 좀 생기고 지하철을 타는 것도 어느 정도 자신이 생겼다(숙소로 돌아오는 길에는 Charing Cross 역에서 지도를 들고 있으니 직원이 도와줄까 하고 물었는데, 나는 괜찮다고 응수했다). Bow Road 역에서 디스트릭트 노선을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 Tower Hill 역에서 하차했다. 역에서 나오니까 바로 앞에서 웅장하고 오래된 성이 나를 압도했고, 도로와 성 사이에는 해자(물은 없었지만)가 파여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는 그 유명한 런던 브릿지(실제로는 타워 브릿지)가 눈 안에 들어왔다. 정확히 무슨 근거인지는 몰라도 런던의 심장부에 온 느낌이었다.

안내문엔 한국어도 있다
이곳에서는 고풍스러운 건물들 사이에 현대적 건물들도 눈에 띈다

이곳은 꼭 관람을 하고 또 사진도 박아두어야겠다는 생각에 옆에 있던 세 명의 여인에게 사진을 부탁했더니, 독사진을 찍고 나자 그 중 몸집이 꽤 있는 여성이 내 어깨에 손을 얹어서 같이 한 장을 더 찍었다. 어쩌면 그녀도 외국에서 온 여행객인지 모를 일이었다.

예상대로 입장료가 22파운드(3만 5천 원)로 상당히 비쌌지만 이곳을 안 들른다면 나중에 많은 아쉬움이 남을 듯했다. 그런데 입장료 외에 2.5파운드의 기부금(donation)을 따로 걷고 있었다. 비싼 입장료를 내는데도 따로 기부금을 내야 한다는 사실이 기분이 언짢아서 나는 입장료만 내었다. 돈을 투입구에다 넣는 방식이었는데 투입구를 잘 찾지 못한 것은 아무래도 기부금을 내지 않은 것이 좀 찔렸기 때문이리라.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들어가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런던 타워(Tower of London)는 흔히 '정복자 윌리엄'으로 불리는 윌리엄 1세가 1066년 영국을 정복한 후에 건설한 성으로 유서 깊은 유적지일 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었다. 우리의 경복궁이나 창덕궁보다도 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인 셈이다. 그리고 성 부근에는 내가 본 런던의 다른 지역과는 달리 현대적인 건물들이 많았다. 위로 갈 수록 더 넓어지는, 그러니까 건물이 위로 갈 수록 앞쪽으로 더 나온 건물도 있고, 강 건너편에 보이던 초현대식 건물, 약간 비대칭의 둥근 통 같기도 한 독특한 건물은 런던 시청인 것으로 드러났다.

런던 시청과 타워 브릿지, 인터넷에서 퍼옴

다리를 건너자 가방 검색까지 했다. 검색원은 내 앞의 사람 가방에서 스위스아미 나이프를 꺼내면서 이건 괜찮긴 한데, 비행기에서는 갖고 타지 말라는 뻔한 말을 했다.

성 안으로 들어서자 턱수염을 멋있게 아주 길게 기른 요맨 워더(Yeoman Warder)가 우렁찬 목소리로 설명을 하고 있었다. 원래 죄수들을 관리하던 요맨 워더는 현재는 가이드 일도 겸하고 있는 모양인데, 이 분은 사람을 끄는 카리스마가 있었고, 크고 높은 목소리로, 배우처럼 정확한 발음으로, 또 때로는 코메디언처럼 우스개 소리도 하면서 흥미롭게 진행을 이어나갔다. 워터게이트(Watergate)에서 시작을 했는데, 그 문을 통해 죄인들이 들어왔다고 했다. 헨리 8세의 아내이자 엘리자베스 1세의 어머니였던 앤 볼린(Anne Boleyn)은 근친상간, 간통 등의 죄명으로 처형되었다. 기도를 하는 가운데 목이 잘렸는데, 워낙 순식간에 날카롭게 잘려 목이 잘린 뒤에도 입술이 기도문을 외우고 있었다고 했다. 이외에도 두 명의 여왕이 처형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시녀 중의 한 명이 사실을 알고도 고하지 않아 처형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권력 투쟁의 와중에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그의 말을 다 이해한 것도 아니고, 또 다 기억하고 적어 둔 것도 아니라 부정확하다.)

미국에서 온 한 소년이 펜실베니아(Pennsylvania)에서 왔다고 하자, 윌리엄 펜(William Penn)에게 부채가 있었던 찰스 2세가 미국 땅의 상당 부분을 넘긴 이야기도 나왔던 듯하다. 교황의 어머니였던 분은 'No cross, No King'(십자가 없이는 왕도 없다)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죽었다는 데 어떤 맥락인지 알 수가 없다. 또 찰스 2세의 사생아로 명예 혁명 후 반란을 일으켰다가 처형을 당한 몬머스 공작(제임스 스캇 James Scott)은 처형 당시 목이 잘리지 않아 처형자가 톱질을 계속 해야 했다고 했던가? 피부, 힘줄, 뼈, 골수, 이제 다 잘라졌는가?(Are we there yet) 사실 잔인하고 끔찍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였지만 그는 유머를 섞어가며 유창하게 설명을 해 사람들의 박수를 이끌어 내었다. 그는 요맨 워더는 가족들과 함께 성 내에 거주하는데, 군대 경력이 20년 이상이고 특무상사(Sergeant Major) 이상이어야 지원을 할 수 있다는 말도 했다.

워터게이트에는 Traitor's Gate(반역자의 문)이라고 적혀 있는데 사진이 흔들려 초점이 맞지 않다

 

유창하게 설명 중인 요맨 워더
왕비의 집(The Queen's House)

이 날이 마침 일요일이라 예배를 보는 중이므로 교회 건물로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감옥으로 사용된 건물에 들어가서 좀 둘러보다가 다른 요맨 워더가 처형대 앞에서 설명하는 것을 다시 들었는데 그의 설명은 차분하고 자세한 대신에 앞 사람처럼 청중을 끌어들이는 흡인력은 덜했다. 

그 다음으로 왕가의 보석들이 전시된 '왕권 상징 보석관'(Crown Jewels)으로 가보았다. 이곳에는 다이아몬드, 금 술잔, 금관 등등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보석들이 가득 있었다. 이곳에서 나오자 서서히 피로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런던 타워의 중심부에 있는 건물이자, 정복자 윌리엄이 영국을 정복했을 당시에 건설하기 시작했던 화이트 타워는 가장 오래된 건물이기도 하다. 그 안으로 들어가 보니 각종 무기와 왕들이 입었던 갑옷, 오래된 책자 등이 있었다. 당시의 화장실 앞에는 똥이 성 밖으로 떨어지도록 설계되어 있었다는 설명도 적혀 있었다. 

시계가 있는 곳이 Crown Jewels
타워 바깥 풍경. 중앙에 보이는 건물은 10 Trinity Square라는 곳인데, 현재는 Four Seasons Hotel로 이용되고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헨리 8세의 갑옷
화장실
무슨 책일까?

아직도 볼 거리가 많았지만 좀 더 성벽을 따라 걷다가 이 정도면 충분히 봤다는 생각에 밖으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