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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여행(90년대이전)

제주 기행 (6) 90년 8월 14일 - 20일. 성장이냐, 방탕이냐? [다섯째 날 - 8월 18일]

by 길철현 2016. 9. 13.

 

도착적인 성욕 - 정상적인 욕구 - 은 식을 줄 몰랐다. 벽에다 귀를 대고 옆방에서 무슨 소리가 나지 않나 신경을 곧추 세웠다. (그러자) 들렸다. 신기하게도. 가느다란 신음 소리가. 그런데 이 날 아침에 우연히 같은 시각에 (옆방의) 이들과 여관방을 나서게 되었는데 둘 다 여자였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새벽 네 시. 나는 내가 일어나야 할 때가 되었다는 걸 꿈속에서 느끼고 있었다. 그 때, 전화벨이 울렸다.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래, 가야 한다. 무엇이 우리를 살게 해 줄 것인가? 그런 것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가? 태양은 우리 생명의 근원이 아닌가?

 

한데, 나는 내가 가야할 곳을 알지 못했다. 짐작은 갔지만 확실한 방향을 알지 못했다. 여관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는 건데, 다시 들어가긴 싫다. 맞으리라. 맞지 않다면, 예감이 빗나가고 만다면. 그것은 어긋남을 의미했다. 어긋감은 불일치, 불일치는 거의 무의미를 불러 일으키는 것.

 

어스럼속에 떠오르는 산봉우리. 지도에서 보아둔 위치, 그리고 그 밑의 몇 개의 불빛. 맞아, 그래도 아니면, 너는 놓치고 말리라. 아름다운 해돋이를 붉고 붉은 덩어리, 장미, 사랑, 생명, 생명의 충일을. 이른 새벽엔 아무도 없었다. 쏜살같이 지나가는 차들 외엔. 손을 들어도 응답이 없다. 운이 좋았다. 나에게, 내가 숙소로 정한 곳도 성산 일출봉과는 꽤 멀리 떨어져 도보로 30분 정도 걸렸다. 나의 짐작이 다행히 맞아 떨어졌다.

 

거의 계단으로 이어진 가파른 길을 올랐다. 꽤 많은 사람들이 일출을 맞으러 왔다. 108미터(180미터인데 백팔 번뇌에 헛갈린 것은 아닌지)의 나즈막한 화산 봉우리를 못 올라 이렇게 헐떡이다니, 1950미터 한라산도 올라놓고. 자리를 잡고 앉으니, 다들 자기 자리를 잡고 해가 떠오르는 동쪽 (나는 사람들이 바라보는 곳이 동쪽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고, 남쪽이라는 느낌이 강했다.)을 응시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수첩을 꺼내 열심히 메모를 하고 있었다. (그것이 내가 할 일이었는데.)

 

바닷바람이(물기를 잔뜩, 소금기도 조금 머금은) 얼굴에 와 부딪혔다. 이따금씩 작은 돌멩이, 돌멩이 파편들이 얼굴을 따갑게 때렸다.

 

미국 여자도 두어 명 보였다. 나는 그들에게 말을 걸고 싶었다. (왜냐하면) 나는 영어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를 보이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이렇게 사람들 얼굴 윤곽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날이 밝았는데도, 해는 콧배기도 내보이지 않았다. 잔뜩 구름낀 날씨, 급기야 빗방울이 흩날렸다. (실패, 실패 한 번의 실패.)

 

여섯 시를 지나고, 일곱 시. 한 두명 씩 산을 내려갔다. 성산포의 일출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아름다움, 생명력을 맛보지 못하고 돌아서는 길은 허전했으나 성산포의 전경 자체도 수려하였다. 기암들, 조랑말이 뛰노는 목초리, 깎아지른 듯한 외벽, 거세게, 노호하며 부서지는 파도.

 

해변가를 따라서 여관으로 왔다. 모래의 색깔이 다른 바다에서 본 것과는 달리 검었다. 조개껍질 따위를 주웠다 버리고, 또 줍고. 무지갯빛 꿈. 갑자기 눈이 따가워져 고개를 드니 해가, 해가 드높이 중천에서, 구름을 뚫고, 고개를 내밀었다.

 

혼자라는 것, 산다는 것, 혼자 산다는 것, 두려운가? 두려운가? 삶은 끝없는 무게인가?

 

****

 

일출은 내일로 기약하고 성산포를 떠났다. 여름에 바닷가에 왔으니 상주 해수욕장에서 조금밖에 못 즐긴 해수욕을, 이것이, 이것이 문제였다. 경험, 크낙한 경험, 따끔거리는 자지처럼.

 

어느 해수욕장에서 해수욕을 할까 망설이는 사이에 버스는 제주시로 들어서고, 용두암을 가는 버스를 찾아 헤매이고, 아무 버스나 타고 제주시를 벗어나고, 해수욕장을 하나 보았는데 망설이다 그만 못 내리고, 종점까지 갔다 다시 돌아오고.

 

이호 해수욕장에 도착한 것은 오후 한 시쯤이었다. 우산은 용케도 잃어버리지 않고 지니고 있었다. 사실 내가 망설인 것은, 해수욕장에 탈의실 시설과 샤워 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는지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규모는 작았지만, 그래도 있을 것은 다 있었다. 혼자 해수욕을 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이번 여행의 두 가지 중요한 경험 중의 하나가 이 때 발생했다. 아니, 가장 중요한 경험이고, 나 자신의 나약함, 인간 존재의 나약함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 이야기 하나만으로도 꽁트 내지는 단편 소설 분량의 이야기를 꾸려낼 수 있을 것 같다.

 

단체 관광객들은 절로 신이 나는 모양이었다. 서로에게 물을 뿌리고, 넘어뜨리고, 나에게 사진 찍기를 부탁하고.

 

천천히 깊은 곳으로 나아갔다. 파도가 있어서 평형을 하는 게 가장 편했다. 그것도 물결의 흐름을 제대로 타지 못하면 물먹기 십상이었다. 수영에 썩 자신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내 몸 하나는 물속에 빠뜨리지 않을 정도였기에 사람들이 노는 곳을 지나 더욱 더 깊은 곳으로 나갔다. 사실 바다에선 멀리 나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고, 만용에 가까운 모험심이 있어야 했다.

 

얼마쯤 나아갔을까? 내 앞에 그 해수욕장을 관리하는 사람 쯤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더 이상 나오지 말고 돌아가라고 했다. 얼마나 깊길래? 의아한 나는 발을 땅에 대어 보았다. 해변가로부터 삼사십미터는 족히 나왔지만 물 깊이는 내 입 근처밖에 되지 않았다. 키도 안 넘는데 돌아가라고, 참 이상한 아저씨야.

 

그 아저씨도 내가 물 속에 우뚝 서자 자신의 말이 쑥스러웠던지 별말 없이 딴 데로 갔다. 나중에 일이 생기고 나서야 왜 아저씨가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냥 해변으로 돌아가는 건 너무 싱거운 것 같아 옆쪽으로 헤엄쳐갔다. 그 쪽에는 웬 아이가 혼자서 튜브를 타고 있었다. 그 아이는 튜브를 타고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튜브 안에서 물자맥질 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 아이의 장난에 맞춰 나도 발로서만 떠있는 장난을 했다. 내가 헤엄쳐 간 그 쪽, 아이가 놀고 있던 곳은 물깊이가 내 키를 훨씬 넘었다. 장난을 좋아하는 내 성정이 그 아이를 부추겼는지도 모른다. 그 아이는 또, 누군가 어른이 옆에 있다는 사실에 마음을 놓았는지 모른다. 그 아이는 또, 누군가 어른이 옆에 있다는 사실에 마음을 놓았는지 모른다.

 

그 아이 곁을 떠나 해변으로 돌아나오려고 할 때, 그 아이가 이번에는 좀 오래 잠수를 했다. 그 순간 파도가 좀 세게 쳤고, 튜브는 아이의 손에 닿지 않는 곳까지 밀려가 버렸다.

 

'일났군'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사태를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재빨리 자유형으로 헤엄쳐가서 튜브를 잡았으면 되었을 지도 몰랐다. 그러나, 내가 어물어물하는 사이 튜브는 헤엄쳐서 잡을 수 없는 거리까지 가버렸다.

 

그 때까지도 나는 별로 그렇게 긴장이 되지 않았다. 아이에게 '아저씨가 어떻게 해볼테니까 당황하지 말아라'하고 말했을 정도니까. 나는 제일 처음 나올 때만 생각하고 조금만 더 해변 쪽으로 가면, 이 애의 키는 넘을 지라도 내 키는 안 넘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오산, 완전한 오산이었다.

 

부대에 있을 때 여름이면 일과 후 수영장엘 가곤 했었는데, 그 때 나는 어떻게 하면 사람을 구조할 수 있을까 하는 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나에겐 누군가를 붙잡고 헤엄친다는 건 불가능하게 보였다. 그 때, 부대 졸병 중 한 명이 사람이 물에 빠졌을 때 그리고 그 거리가 육지로부터 멀지 않을 때는 사람의 뒤로 가서 다리를 잡고 쭉 밀어주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시범을 보여주는데 그럴 듯해 보였다.

 

아이는 헤엄을 쳐서 앞으로 나갈 실력은 안 되었지만 물에 떠있을 줄은 알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아는 유일한 구조법을 써보았다.

 

물밑으로 들어가서 아이의 다리를 잡고, 한 번, 두 번, 세 번. 이젠 내 키가 닿지 않을까? 어림없는 이야기. 겁이 덜컥 났다. 이 아이가 이렇게 익사하기라도 한다면. . . . 물 속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니까 온 홈의 힘도 금방 빠져나가 나 혼자서도 헤엄쳐 나갈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사람 살려요!"

 

해변을 향해 고함을 쳤지만, 그런 순간까지도 나는 이상하게 쑥쓰러움을 느꼈다. 부끄러움을 느꼈다, 주변의 그 많은 사람들은 나의 고함에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힘이 없다. 나는 이 모든 일을 예상했는가? 힘이 없다. 갑자기 아이가 나에게 달려들었다.

 

안 돼, 안 돼, 비겁하지? 아니야, 그건 비법이 아니야, 네가 나를 잡게 둔다는 건 두 사람 다의 죽음을 의미할 수도 있어. 안 돼, 안 돼, 거짓말, 비겁이야. 너는 네 있는 힘을 다해서 아이를 구하려고 하지 않았어. 나도 살 수 없는데, 나도 살 수 없는데. 어떻게 아이까지 구한단 말이야. 비겁이 아니야, 네가 아이를 피한 건 현명한 처사야. 단 한 가지만 빼놓고. 그래, 난 아이에게 희망을 주지 않았어. 희망의 말을 던져 주지 못했어. 그냥 빠져 나오고 만 거야. 사람들을 불러 올테니까 기다리라던지 그런 말 한 마디도 안 하고 나온 것 말이야.

(덧붙임. 정확하게 기억이 날 수가 없지만 글에 적은 것보다 좀 더 자세한 인상들이 있다. 우선 초등학교 5,6학년 정도로 보이는 이 아이를 뒤에서 한두 번 밀어보았는데, 잔잔한 수영장과는 달리 파도가 이는 바다에서는 거의 얼마 이동하지 못했다. 그리고 발이 땅에 닿는지를 보기 위해 서보았더니 한 없이 아래로 내려가던 그 느낌. 죽음의 느낌. 그 다음 아이가 나를 붙잡으려 할 때 나는 아이를 밀치면서 물밑으로 잠수해 들어갔던 듯하다. 사람들이 해변에서 오는 것을 확인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내 목숨만 부지하려 나온 것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하더라도, 글에 적은 것처럼 침착한 대응은 아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얼마를 헤엄쳐 나왔을까? 아직도 발은 바닥에 닿지 안았고, 지친 나는 '이러다 나까지 죽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 때, 대형 튜브를 가지고 아이를 구하러 오는 두 명의 사람이 내 눈에 들어왔다. 조금전에 나에게 돌아가라고 했던 아저씨와 웬 청년이었다. 그는 꼬마가 있는 대로 헤엄쳐 가더니만 쉽게 꼬마를 구조했다.

 

헤엄쳐 나가고 있으니까, 튜브를 팔에 끼고 세 사람이 내 옆을 지나갔다. 그들은 나에게 튜브에 매달리라고 했다. 나는 자신에 대한 죄책감으로, 변명으로, 자기 합리화로 꼬마에게 '아저씨는 힘이 없어서 도저히 너를 못 구하겠더라'라면서 쓸데없는 말을 지껄여댔다. 구조원 아저씨는 꼬마에게 너는 이 아저씨 아니었으면 죽었을 거다'라고 아이를 꾸중하면서 나를 칭찬해 주었다.

 

꼬마는 얼이 빠졌는지 멍한 상태였다. 육지로 나온 후에도 아이는 결코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부모님께 뛰어간 후 나를 쳐다보는 눈빛도 꼭 나를 힐난하는 것만 같았다.

 

지친 몸을 주저앉히고 있던 나는 온 몸이 떨려옴을 느꼈다. 사람 목숨이란 그렇게 쉽게 가버릴 수도 있는 것이어니. 사람 목숨은 그렇게도 쉽게. 하지만 그렇게 쉽게 간 것은 아니었다. 그래, 사실 그 아인 살아났어. 나를 너무 자책할 필욘 없지 않을까? 내 나름대로 노력을 했고, 그 아인 내 때문에 살아나지 않았던가?

 

다시 물에 들어갈 순 없었다.

 

***

제주 시내엔 볼 만한 영화를 상연하는 곳이 없었다. 고작 '람바다' 시리즈 중의 한 편이나 하고. 만화방을 찾았다. 달리 돌아다니고 싶은 곳도 없고 해서, 시원한 곳에서 - 내가 들어간 곳에선 에어컨을 틀어주었다 - 고행석의 만화로 시간을 때웠다.

 

***

다시 성산포행 버스를 탔다. 내일 아침에는 해돋이를 볼 수 있을까? 나의 삶에도 구원이 찾아올까? 난 비겁한 놈이야, 아이 하나도 구해내지 못한. 요번에는 성산포 바로 밑에 있는 여관에 자릴 잡았다. 억제될 줄 모르던 나의 정욕이 이 날은 약간 고개를 수그러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