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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산문

똥 이야기

by 길철현 2023. 6. 14.

치매에 걸린 어머니는 소변은 못 가려도, 대변은 대체로 '배가 아프다'라는 말로 신호가 왔음을 알린다. 오늘은 엄마와 고스톱을 치고 있는 도중에 신호를 보냈다. 나는 얼른 화투를 물리고 내가 앉아 있던 의자형 변기의 덮개를 올리고 엄마를 옮겼다. 엄마는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대략 이틀에 한 번 정도 변을 보는데, 약간 변비가 있으신지 변을 볼 때마다 아프다,고 고함을 지른다(삼일치 정도가 모이면 그 양이 상상을 초월한다). 엄마를 변기에 앉히고 나는 거실에서 내 컴퓨터 방으로 와서 간단한 작업을 처리했다. 한 동안 고함을 지르던 엄마가 잠잠해져서 내가 "엄마 똥 다눴어요?"하니까, 엄마가 "똥은 무슨 똥, 똥이 안 나온다"라고 말했다. 엄마 엉덩이 뒤로 슬쩍 변기 안을 보니 상당한 양의 변을 본 상태였다. 내가 "엄마, 똥 많이 눴네요"하자, 엄마는 "똥 안 눴다카이"라고 응수했다. 내가 "엄마, 똥 눴으면 나한테 백만 원 줄래요?"하자, 엄마는 "그럼, 안 눴으면 니가 백만 원 줄기가?" "좋아요."

 

내가 엄마를 일으켜 휴지로 항문을 닦고, 엄마에게 대변을 보여주며, "엄마, 똥 눴잖아요"하니, 엄마는 "나는 똥 안 눴는데, 이건 내 똥 아니다"라고 우겼다. 백만 원 받으려고 국과수에 대변 유전자 검사를 하러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라 이쯤에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억울한 생각이 가시지 않아 잠시 후에 "엄마, 백만 원 안 줘요?"하니까, 엄마는 "왜?"라고 물었고, "엄마가 똥 눴으니까 백만 원 내야죠"하니까, "내가 똥 눴는데 왜 백만 원을 내야 하노? 말도 안 되는 이야기하지 마라." 그렇다. 아무래도 엄마를 이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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