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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으로/니체·푸코

니체 -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 니체전집 15. 책세상. 백승영. 1889. 2002(2011)

by 길철현 2024. 2. 18.

 

-- 읽고 나서

이 글은 니체의 일종의 자전이자, 자신의 작품에 대한 해명이다. 니체 사상의 지표가 되는 말들, 모든 가치의 전도, 디오니스적인 긍정, 힘에의 의지, 아모르 파티(운명애), 영원회귀 등은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데 귀기울일 필요가 있는 말이고, 우리를 삶의 구속으로부터 해방시켜 주기도 하지만, 때로 그의 말은 종잡기 힘든 역설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니체의 글은 우리의 생각이 기존의 도덕이나 편견에 사로잡혀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거듭 강조한다. 

 

 

-- 발췌

 

-- 서문

(326) 이 책으로 나는 인류에게 지금까지 주어진 그 어떤 선물보다 가장 큰 선물을 주었다. (차라투스트라)

(327) 인식하는 인간은 자신의 적을 사랑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벗을 미워할 줄도 알아야만 한다. 

 

--나는 왜 이렇게 현명한지.

334) 나는 내 자신을 떠많아, 내 스스로 다시 건강하게 만들었다 : 그럴 수 있었던 전제 조건은 -- 모든 생리학자가 인정할 것이지만 -- 사람들은 근본적으로는 건강하다는 사실이었다. 전형적인 병든 존재는 건강해질 수 없고, 자기 스스로 건강하게 만들기는 더욱 어렵다 ; 전형적인 건강한 존재가 그 반대인 반면에 말이다. 그에게는 심지어는 병들어 있는 것이 삶을 위한, 더 풍부한 삶을 위한 효과적인 자극제이다. 

340) 내가 보기에는 가장 거친 말, 가장 거친 편지가 침묵보다는 거의 항상 마음 씀씀이의 섬세함과 정중함이 결여되어 있다. 

343) 복수심과 뒷감정이 필연적으로 약함에 속하는 것처럼 공격적 파토스는 필연적으로 강함에 속한다. 

346) 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전체는 고독에 대한 송가이다. 또는 나를 이해할 수 있다면 순수에 대한 송가라고 할 수 있다. 

 

-- 나는 왜 이렇게 영리한지.

349) 나는 어떤 행동의 나쁜 결과나 귀결들을 가치 문제에서 철저히 배제하는 것을 선호한다. 나쁜 결과들을 보면 사람들은 자기가 한 그 행위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너무나 쉽사리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양심의 가책이란 내가 보기에는 일종의 '사악한 시선'인 것 같다. 실패한 것을 그것이 실패했다는 이유로 인해 더욱 중히 여긴다는 것 -- 오히려 이것이 내 도덕에 속한다. 

350) 무신론은 내게서는 즉각적으로 자명한 사실이다. 나는 너무 호기심이 많고, 의문이 많으며, 오만하여 조야한 대답에 만족하지 않는다. 신이란 하나의 조야한 대답이며, 우리 사유가들의 구미에는 맞지 않는다 -- 심지어 그것은 본질적으로는 우리에게 조야한 금지를 하는 것일 뿐이다: 너희는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금지를 말이다. 

362) 우리, 50년대의 눅눅한 공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우리는 '독일적'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필연적으로 염세주의자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도리 없이 혁명가일 수밖에 없다. 

363) 내가 바그너를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점은 무엇인가? 그가 독일인에게 응해주었다는 점 -- 그가 독일제국적으로 되었다는 점이다. . . .독일의 손이 닿는 한, 독일은 문화를 타락시킨다. 

369) 이웃 사랑, 다른 사람들과 다른 것들에 대한 사랑은 가장 강한 자아를 유지하기 위한 방어 조치일 수 있다. 

372) 나는 소위 말하는 '최고의' 인간들을 인간이라고 평가조차 않는다 -- 내가보기에 그들은 인류의 쓰레기이며, 병증과 복수욕에 불타는 본능들에서 생긴 나쁜 소산물이다: 그들은 삶에 복수를 하는, 순전히 재앙을 불러오며 근본적으로 치유 불가능한 자들이다. 

373) 나는 위대한 과제를 대하는 방법으로 유희보다 더 좋은 것을 알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위대함의 징표이자, 본질적인 전제 조건이다. 

 

-- 나는 왜 이렇게 좋은 책들을 쓰는지

375) 나 자신의 때도 아직은 오지 않았다. 몇몇 사람은 사후에야 태어나는 법이다. --언젠가는 내가 이해하는 삶과 가르침을 사람들에게 살도록 하고 가르치게 될 기관들이 필요할 것이다; 심지어는 "차라투스트라"를 해석해내는 일을 하는 교수직들이 만들어질지도 모른다. 

382) 기호의 속도를 포함해서 그 기호를 통한 파토스의 내적 긴장 상태를 전달하는 것--이것이 문체의 의미이다.

383) 나 이전에 사람들은 독일어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지 못했으며--언어를 가지고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지 못했다. --위대한 리듬 기법, 복합문의 위대한 문체가 숭고하고도 초인간적인 열정의 거대한 상승과 하락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점이 나에 의해 비로소 발견되었다. 

 

-- 비극의 탄생

391) 그리스도교는 아폴론적이지도 않고 디오니소스적이지도 않다; 그것은 모든 미적 가치를 부정한다--"비극의 탄생"이 인정하는 유일한 가치를 말이다: 그리스도교는 가장 심층적인 의미에서 허무적이다. 디오니소스적 상징 안에서는 긍정이 그 궁극적인 지점에까지 이르게 되는 반면에 말이다. 

393) 내가 다른 어떤 곳에서보다 그의 곁에서 더 따뜻하고 좋은 기분을 느끼는 헤라이클레이토스만큼은 약간의 의문점이 남아 있다. 디오니소스적 철학의 결정적인 면, 즉 유전과 파괴에 대한 긍정, 대립과 싸움에 대한 긍정, 생성, '존재' 개념에 대한 극단적인 거부까지--이런 점에서 나와 그 어떤 경우에서라도 가장 유사하다는 점을 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 반시대적 고찰

 

--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409) 내 눈이 홀로 온갖 책벌레들에 안녕을 고했다. 꾸미지 않고 말하자면: 문헌학에 안영을 고했다; 나는 '책'에서 구제되었으며, 몇 년간 더 이상 독서하지 않았다--이것이 내가 나 자신에게 베푼 최고의 은혜였다!

 

--아침놀

416) 만일 유기체의 내부에서 가장 비소한 기관이라도 자기 보존에, 자기의 힘의 보충에, 자기의 '이기주의'를 완벽하게 확실히 관철시키는 데 약간이라도 실패하고 있다면, 유기체 전체가 퇴화하기 때문이다. 

 

--즐거운 학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421) 결정적인 모든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장한다.

436) 그리고 만일 인간이 창조하는 자나 수수께끼를 푸는 자가 아니며, 우연을 구제하는 자가 아니라면, 어찌 나는 내가 인간이라는 점을 견뎌낼 것인가?

과거를 구제하고 일체의 "그랬었다"를 "나는 그렇게 되기를 원했다!"로 변형시키는 것--이것이 비로소 내게 구제인 것이다. 

 

--선악의 저편

438) 이 책은 본질적으로 현대성에 대한 비판이다.

440) 악마라는 것은 제7일째의 신의 한가로움에 불과한 것이다.

 

--도덕의 계보

441) 그리스도교는 보통 믿고 있는 것처럼 '정신'에서가 아니라, 원한 정신에서 탄생한 것이다--그것의 본성상 그리스도교는 하나의 반동이며, 고귀한 가치의 지배에 맞선 대봉기이다.

442) 양심은 더 이상 외부를 향해 폭발할 수 없게 된 다음에 자기를 향해 반전하는 잔인함의 본능이다. 

 

--우상의 황혼

 

-- 바그너의 경우

448) 독일 역사가들이 문화의 진행 과정과 문화의 가치에 대한 거시적 안목을 상실해버렸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그들 전부가 정치(또는 교회--)의 어릿광대라는 사실에 대해: 거시적 안목을 그들 스스로가 추방해버렸던 것이다.

449) 루터, 이 액운과도 같은 성직자는 교회를 재건했고, 이것보다 천 배나 더 나쁜 일인 그리스도교를 재건했다. 그것도 그리스도교가 몰락하던 그 순간에 말이다. . . . 그리스도교, 이 생의지에 대한 부정이 종교가 되어 버린 것! . . . 루터, 이 용인될 수 없는 성직자. 그는 자기가 '용인될 수 없다'는 이유 때문에 교회를 공격했고--결과적으로는!--교회를 재건했던 것이다. 

451)그들[독인인들]은 언제나 '무의식적인' 위조범에 불과한 자들만을 산출시켰다(--피히테, 셀링, 쇼펜하우어, 헤겔, 슐라이어마허는 칸트와 라이프니츠와 마찬가지로 위조범이라는 말에 어울린다. 이들 모두는 한갓 베일을 만드는 자들일 뿐인다.)

 

-- 왜 나는 하나의 운명인지

461) 선한 인간의 해악이야말로 가장 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