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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 및 감상/문예창작반(문창반)23

내 마음 공백이 될 때 -- 이내석(83) 내 마음 공백이 될 때 아이는 주고 다시 태어난다 탄생과 죽음의 순간 아이는 어둠을 찢고 찢어진 막 사이로 보이는 빛방울이 깨뜨려지는 바닷가로 나간다 '물결 잔잔하고 순풍이 불어오니 떠나기에 딱 좋은 걸 무엇을 향해서인지는 나도 몰라 바다가 부르는 소리를 좇아갈 뿐이야' 아이는 나미작하게 웅얼거리고 죽음의 씨앗을 실은 배를 밀어나간다 찢어진 돛을 단 배가 흘러간다 어머니의 젖은 옷고름을 뿌리친 채 배가 멀어져간다 [제1회 영문과 시낭송회](1985) 2022. 3. 7.
남도행 유감 -- 이영광(84) 남도행 그 길에 3월 때아닌 눈이 내리고 있드라 돌아보면 서울도 잠들고 있드라 모든 게 다 바람에 얼어 남고 소문처럼 등 뒤에 남고 그 사람 얼굴만 따라오드라 반나마 따라오다 돌아가고 말드라 두고두고 그리움은 모자라는가 남도행 그 길에는 노염도 잠들 겨를 없이 피가래만 뚝뚝 내리고 있드라 [제1회 영문과 시낭송회](1985) 2022. 3. 7.
겨울 이야기 -- 최성용(84) 상처입은 대기의 하혈같은 어둠이 한 조각의 담배 연기를 덮을 무렵 여윈 입김으로 창을 닦는다 투명하게 들여다보이는 창 안으로 하나 풀처럼 깨어있는 의식 X - ray에 투사된 나의 폐에서 낮과 밤에서 각혈을 한다. 손에서 떠난 구겨진 담배갑을 내려다 보다, 그리고 나는 빈손이므로 몸짓만으로 파닥인다 -- 날개는 잃어버린 장소에서 찾아야 함 공복의 위장으로 풀씨를 삼킨다 한 포기의 봄을 위하여, 나무처럼 깊숙한 뿌리를 가져다오 의식은 비껴가는 낮과 밤을 겨워한다. [제1회 영문과 시낭송회](1985) 2022. 3. 7.
북한강 -- 안유수(84) 3월 북한강 강물은 아직도 한기를 간직한 채 대성리를 돌아설 무렵 무거운 기침을 토한다 3월 북한강 기슭은 온통 농무로 가득 찬 채 나루터를 바라보는 늙은 사공은 눈을 감는다 3월 북한강 물밭은 아무도 그 물길을 모르는 듯 인적도 사라진 후 그 길 위로 질주하는 눈물 많은 강으로 대한다 3월 북한강물은 영원한 누구의 길이 되려는가. [제1회 영문과 시낭송회](1985) 2022. 3.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