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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 및 감상/이영광9

낙화 -- 이영광 사랑처럼 가파른 하락입니까 당신은 건재하고 우리 꿈은 평등합니다. 그리움을 확실한 고도에 나부끼게 하소서 한 순간 끝없이 머무는 빛을 보게하소서 제 눈뜨는 기다림은 당신이 내리는 모습과 흡사합니다. [내재율 1호](1985) 2022. 3. 17.
빙폭 1 -- 이영광 서 있는 물 물 아닌 물 매달려 거꾸로 벌받는 물, 무슨 죄 지으면 저렇게 투명한 알몸으로 서는가 출렁이던 푸른 살이 침묵의 흰 뼈가 되었으므로 폭포는 세상에 나가지 않는다 흘려 보낸 물살들이 멀리 함부로 썩어 아무것도 기르지 못하는 걸 폭포는 안다 2022. 2. 22.
나팔꽃 - 이영광 가시 난 대추나무를 친친 감고 올라간 나팔꽃 줄기, 그 대를 망설이면서도 징하게 닿고 싶던 그날의 몸살 같아 끝까지 올라갈 수 없어 그만 자기의 끝에서 망울지는 꽃 봉오리, 사랑이란 가시나무 한그루를 알몸으로 품는 일 아니겠느냐 입을 활짝 벌린 침묵 아니겠느냐 2022. 2. 21.
직선 위에서 떨다 - 이영광 고운사 가는 길 산철쭉 만발한 벼랑 끝을 외나무다리 하나 건너간다 수정할 수 없는 직선이다 너무 단호하여 나를 꿰뚫었던 길 이 먼 곳까지 꼿꼿이 물러나와 물 불어 계곡 험한 날 더 먼 곳으로 사람을 건네주고 있다 잡목 숲에 긁힌 한 인생을 엎드려 받아주고 있다 문득, 발 밑의 격랑을 보면 두려움 없는 삶도 스스로 떨지 않는 직선도 없었던 것 같다 오늘 아침에도 누군가 이 길을 부들부들 떨면서 지나갔던 거다 2022. 2.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