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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영국희곡

캐릴 처칠 [구운] (Caryl Churchill - Cloud Nine) [2015]

by 길철현 2016. 12. 17.

*Caryl Churchill (1938-)

[Cloud Nine]

핵심어 : 역할 전도. 이중 배역. 과거와 현재. 워크샵

 

캐릴 처칠의 이 작품에서 우선적으로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특히 1막의 경우, 성과 인종의 역할의 전도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빅토리아 시대의 제국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인 담론의 보지자인 Clive(식민지의 행정관, 총독)를 제외한 이 가족의 구성원들(BettyEdward)은 모두 성이 전도된 채 나온다. 거기다 흑인인 하인도 백인이 맡아서 한다. 이러한 전도된 역할을 통해 처칠은 한 인간의 정체성이 그 개개인이 갖고 있는 생물학적이고 고유한 본성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기준과 억압에 따라 형성되는 것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베티의 어머니인 모드는 대부분의 등장인물보다 더 완고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것은 잘 드러난다. 클라이브가 주장하는 제국주의적인 지배 담론은 다른 한편으로는 각 개개인의 성적인 억압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그러한 지배 담론이 (폭력을 통해) 표면적인 질서는 유지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위태롭기 짝이 없는 담론이라는 것이 등장인물들의 음성적인 행동에서 잘 드러난다. (탐험가 해리는 게이 동성애자이고, 가정교사 엘렌은 레즈비언이다. 거기다 클라이브의 아들은 자신의 여성성과 강요된 남성성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돈을 겪고 있다.) 이 위태로운 질서는 결국 클라이브의 죽음으로 붕괴되고 만다.

실제 시간에서는 백년이지만 극에서는 25년이 지난 2막에서는 1막에서의 배우들이 또 다른 배역을 맡음으로써 개개인의 정체성의 문제를 계속 파고들고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이 인물들은 1막에서처럼 지배 담론이 아니라 자신의 본성에 따른 삶을 추구하려고 애쓴다. (가장 큰 변화를 보이는 것은 가정의 천사역할을 했던 베티가 남편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직업을 가지게 되고 자위행위를 통해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2막은 여러 면에서 1막과 대조가 되는데, 국가와 여왕을 중심으로 제국주의 남성 지배 담론 아래 사람들이 맞춰 살던 것과는 달리(물론 다른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모두 제각각의 정체성을 추구하고 있다. (어린 캐시 역할을 어른 남성이 맡은 것이 이 작품의 희극성과 함께 문제의식을 고조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으리라. 린이 그것을 원하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작품은 중심적인 사건 없이 삽화적으로 전개가 된다.

캐릴 처칠은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이 정치, 경제, 문화적인 억압으로 인해 왜곡되는 것에서 벗어나 자연스럽게 발현될 수 있는 길을 아주 노골적이고 성적인 언어로 모색하고 있다. (인간의 성의 다양한 발현. 이성애적인 것만을 정상으로 보지 않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