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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영국희곡

마이클 프레인 - 코펜하겐 (Michael Frayn-Copenhagen) (1998) [2015]

by 길철현 2016. 12. 17.

[Copenhagen] (1998)

Heisenberg, Bohr, Margrethe. 양자역학. 상보성(Complementarity). 불확정성. 19419

 

1982년에 발표된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Noises Off]가 전통적인 코미디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며 극 자체가 주는 즐거움을 강조하였다면, 이 작품은 상당히 지적인 면이 강조되는, 그러면서 또 현대 과학의 주류를 전면적으로 다룬 그런 극이라는 점이 돋보인다. (이 작품에서 특히 눈에 띄는 점은 Stage Direction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 적어도 내가 본 판본으로는. 따라서 많은 부분을 연출자가 자유재량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 작품의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양자역학,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보어의 상보성의 원리, 그리고 특히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라는 말로 압축이 되는 20세기에 등장하여 지금까지 주류를 이루고 있는 과학을 극 자체를 통해 일상 언어로 비유적으로 소개함으로써 관객에게 이 이론에 대한 이해를 도울 뿐만 아니라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이 이론이 기본적으로도 소개되지 않고 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그런 것처럼 -- 다른 한편으로는 극의 구성 자체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 - 사물 혹은 대상에 대한 총체적이고 객관적인 파악은 관찰자의 존재로 인해 어느 정도의 확률 내지는 한도 내에서만 가능하다 -를 구현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이 작품에 드러나는 하이젠베르크의 행보 자체가 자신이 제시한 과학적 원리와 유사한 면도 있다.

프레인은 당사자들이 모두 죽고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더더욱 불가능해진 답변, ‘왜 하이젠베르크가 19419월에 코펜하겐 닐스 보어의 집을 찾아갔는가하는 문제를 계속 추궁해 들어간다. (이 작품은 실제의 역사적 인물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 드라마이지만, 다큐멘터리적으로 그 당시 어떤 일이 있었는가만을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상상력을 여러 가지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그렇긴 하지만 피터 셰퍼가 [아마데우스]에서 역사적 사실들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 지나치게 뒤튼 모습은 드러나지 않는다.) 프레인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모색하기 위해서 죽은 유령들을 불러서 그들이 현실적으로 받아야 하는 제약에서 좀 더 자유로운 상황에서 대화를 하게 한다. (많은 경우 배우들의 대사는 사실은 그들의 머릿속 생각이다.) 세 번 정도에 걸쳐 하이젠베르크와 보어의 만남은 반복되면서 그 답을 찾아보지만 그 답은 당연하게도 확정불가능하다. (하이젠베르크가 처한 입장이라는 것, 즉 자신의 국가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 자체도 답을 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그것을 누가 판단할 것인가?)

프레인은 이 극에서 답을 내리지는 않으면서도 하이젠베르크가 처한 입장에 공감을 표하고, 그의 태도에 대해서도 극중 인물인 마그레트처럼 날선 비판을 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 프레인은 이러한 불확정적인 상황 가운데에서도 언어에 대한 믿음은 견지하고 있는 듯하다. 이 말은 핀터의 극에서 보이는 종잡을 수 없는 불일치나 혼돈까지는 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해 볼 수 있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