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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재인폭포60

재인폭포 3 - 울음소리(19970517) K가 탄 자가용은 폭포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총을 든 군인 두 명에게 제지를 당했다. 무슨 잘못을 저지르기라도 했나 하고 순간적으로 K의 가슴이 덜커덩 내려앉았다. “왜 그러는데요?” “저,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폭포 보러 왔는데요.” “아, 재인폭포는 열두 시가 돼야 개방이 됩니다.” 군인의 말에 길옆 철조망 상단부에 붙어 있는 안내판을 보니까, 재인폭포가 있는 곳은 군 작전 지역이라, 7월과 8월에만 전면 개방을 하고, 그 밖에는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저녁까지, 그리고 국경일에만 개방을 한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일요일이라 아무도 지키고 있지 않았고 그래서 별생각 없이 들어갔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자가용의 계기판에 달린 시계는 열한 시 십사 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냥 되.. 2023. 8. 19.
재인폭포 2 - 첫 만남(19970223) W에게서 전화가 왔다.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K니?” 두 사람은 K의 중학교 동창이자, W의 고등학교, 대학교 동창인 J를 매개로 해서 알게 된 사이였다. 그런데 K는 몇 달 전에 자신의 집 근처에서 우연히 W를 다시 보게 되었던 것이다. ‘W가 어떻게 여기에?’ 순간적으로 K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K와 눈이 마주친 W는 다소 놀라면서도 동향의 친구를 만난 반가움을 그대로 드러내었다. 다니던 회사에서 발령이 나 K의 아파트 근처에 있는 아파트로 얼마 전에 이사를 왔는데, 그러지 않아도 한 번 전화를 하려고 했다는 것이었다. 두 사람의 뜻밖의 해우는 그날 밤늦은 시각까지 술자리로 이어졌다. 이날 아침 이른 시각에 W가 전화를 한 것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집에 혼자 있으니 놀러 오라’는 것이었다... 2023. 8. 18.
재인폭포 1 - 인연의 시작(19970101) 고등학교 동창인 C와 K가 신년을 맞아 나들이에 나섰다. 서른을 훌쩍 넘긴 두 사내가 이렇게 같이 나들이를 나서게 된 것은 결혼한 지 육 개월도 안 돼 파경에 이르게 된 C가, 아직 미혼인 데다가 혼자 사는 K의 아파트를 임시거처로 삼았기 때문이었다. 새해 첫날이라고는 하지만 ‘설날’이라는 명절이 한 달 뒤에 떡 버티고 서있어서, 사실 그냥 한가한 휴일에 지나지 않는 날. 별로 할 일도 없고 해서 차를 몰고 나서게 된 것이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뚜렷한 목적지도 없었다. 서울 부근을 드라이브 하다가 적당한 곳에서 식사나 하고 들어올 예정이었다. 그런데, 이 날의 날씨는 하늘이 하루 동안에 자신의 모든 모습을 보여주기로 작정이라도 했는지 예측불허 변화무쌍 그 자체였다. 서울에서 출발할 무렵 부슬부슬 내리던.. 2023. 8. 17.
재인폭포 0 - 프롤로그(20120824) ['재인폭포를 소개합니다'에 이어 예전에 써두었던 글을 다시 올려본다. 재인폭포에 대한 글쓰기는 진행형이지만, 이 글이 중심 부분이라는 건 분명하다.] 이 글은 무엇보다도 만남에 대한 이야기이다. 처음엔 낯설었던 어떤 곳이 그 원인은 잘 알 수 없으나 자주 접하는 사이에 친밀한 것으로, 나아가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그런 관계가 되고 만 한 장소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는 재인폭포를 만나면서부터 폭포에 대한 사랑을 키워왔고, 그 한 줌 망설임 없는,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추락 속에서, 그리고 그 추락이 빚어내는 울음 속에서 내 마음 깊은 곳의 손쓰기 힘든 어쩌면 작지만 깊은 생채기를 거듭 확인하고 또 위안을 받았다. 사실 ‘에필로그’ 이전의 글들은 실제 체험을 바탕으로--최소한의 변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2023. 8.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