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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 및 감상328

김광규 - 좀팽이처럼 좀팽이처럼 김광규 돈을 몇 푼 찾아가지고 은행을 나섰을 때 거리의 찬 바람이 머리카락을 흐트려놓았다 대출계 응접 코너에 앉아 있던 그 당당한 채무자의 모습 그의 땅을 밟지 않고는 신촌 일대를 지나갈 수 없었다 인조대리석이 반들반들하게 깔린 보도에는 껌자국이 지저분했고 길 밑으로는 전철이 달려갔다 그 아래로 지하수가 흐르고 그보다 더 깊은 곳에는 시뻘건 바위의 불길이 타고 있었다 지진이 없는 나라에 태어난 것만 해도 다행한 일이지 50억 인구가 살고 있는 이 땅덩어리의 한 귀퉁이 1,000만 시민이 들끓고 있는 서울의 한 조각 금고 속에 넣을 수 없는 이 땅을 그 부동산업자가 소유하고 있었다 마음대로 그가 양도하고 저당하고 매매하는 그 땅 위에서 나는 온종일 바둥거리며 일해서 푼돈을 벌고 좀팽이처럼 그것을.. 2024. 2. 8.
김광규 - 달팽이의 사랑 달팽이의 사랑 김광규 장독대 앞뜰 이끼 낀 시멘트 바닥에서 달팽이 두 마리 얼굴 비비고 있다 요란한 천둥 번개 장대 같은 빗줄기 뚫고 여기까지 기어오는데 얼마나 오래 걸렸을까 머리서 그리움에 몸이 달아 그들은 아마 뛰어왔을 것이다 들리지 않는 이름 서로 부르며 움직이지 않는 속도로 숨가쁘게 달려와 그들은 이제 몸을 맞대고 기나긴 사랑 속삭인다 짤막한 사랑 담아둘 집 한칸 마련하기 위하여 십 년을 버둥거린 나에게 날 때부터 집을 가진 달팽이의 사랑은 얼마나 멀고 긴 것일까 김광규. "좀팽이처럼". 문지. 1988(1989). 20-21 --- 연약한 생명체인 달팽이의 사랑을 흥미로운 상상력으로 포착하고 있다. 달팽이의 맹렬함을 노래한 톰 건의 '달팽이를 생각하며'와 비교하면서 읽으면 괜찮을 듯하다. 박형준.. 2024. 2. 6.
김광규 - 크낙산의 마음. 문지. 1986. 이 시집에서는 표제시인 '크낙산의 마음'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그의 시는 대체로 자연과의 조화를 잃어버린 현대적 삶의 공허성, 또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등이 주종을 이루는데, 이 시는 자연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위안과 활력을 얻는지를 세부 묘사를 통해 침착하게 제시하고 있다. 2024. 2. 4.
오생근 - 삶과 시적 인식. 김광규. "크낙산의 마음". 평문 오생근은 김광규의 시가 투명성 가운데 시인의 '시적 재능과 비판적 지성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말한다. 그의 시의 큰 주제는 '현대적 삶의 황폐함'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시인은 뛰어난 '사회학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현실을 '아이러니를 통해' 제시함으로써 '평면적인 산문성'에서 벗어난다고 지적하고 있다. - 발췌 119) 김광규의 시는 투명하다. 혼란스럽지 않은 시적 이미지가 그렇고, 정제된 언어의 표현이 그렇다. 그의 투명한 시를 들여다보면 어떤 지적 엄격성과 예술가적 의식의 명료성이 엿보인다. 이러한 투명성은 그의 시적 재능과 비판적 지성이 균형있게 조화를 이룬 결과일 것이다. 123) 현대적 삶의 황폐함 124) 사회학적 상상력 126) 사회적 현실에 대한 시인 특유의 아이러니를 통해, 그의 시는 .. 2024. 2. 4.